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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7/08/12 00:59:11
Name 진리탐구자
Subject [일반] 미국의 우상 - 헬렌켈러 비하인드 스토리









헬렌 켈러는 한 때 유럽의 로자 룩셈부르크와 비견될 정도로 유명했던 미국의 좌파 운동의 이론적/학문적 리더였으며, 장애인 차별 철폐 운동에 크게 기여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지금 현재 장애 극복 사례로만 남아 있으며, 이 때문에 노력할 경우에는 장애를 이겨내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인양 선전하는 데 좋은 도구로써 이용되었습니다. 이런 가치관에 근거해서 많은 비장애인들이 장애를 이겨내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간주하기도 하지요.
국가라는 것이 개인의 생애를 얼마나 왜곡할 수 있는지, '공적 진실'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해주는 사례일 것입니다. 여기 계신 PGR 회원분들의 생애는 어떤 식으로 기억될까요.

자유로운 코멘트는 환영입니다만, '사회주의는 그래도 좀...'이라든지, '자본주의는 역시 나쁘다'와 같은 논쟁 유발성 코멘트는 사절입니다. 사상의 자유는 당연히 인정이 되어야겠지만, 글쓴이가 감당할 수 없는 코멘트는 글쓴이를 힘들게 합니다. ^^

헬렌 켈러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그녀에 대한 전기인 <>에 잘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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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도, ‘세계위인전기’도 철저히 외면했다. 그녀의 신체적 장애만 부각시켰을 뿐 정작 장애를 극복한 그녀가 지키고 설파하고자 했던 이념은 깨끗이 지워버렸다. 미국에서조차 시각, 청각 장애를 이겨낸 여인으로만 알려져 있는 헬렌 켈러(1880∼1968). 그녀의 삶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1998년 전기 작가 도로시 허먼의 <헬렌 켈러-A Life>(미다스북스, 2001)가 출간되면서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정열적인 사회주의자로서 헬렌 켈러가 되살아난 것이다.


위인전 속의 헬렌 켈러와 세상 속의 그녀

조금은 낯설은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를 만나기 전에 먼저 기억을 되살려 어렸을 때 읽었던 '세계위인전기' 속의 그녀부터 만나보자. 1880년 미국 알라바마주 투스쿰비아에서 태어난 헬렌은 원래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는 건강한 아이였다. 잘 자라던 헬렌은 19개월 되던 1882년 2월 심한 열병을 앓게 된다. 당시 주치의가 며칠 안에 아이가 죽을 것이라고 진단할 정도였다. 열병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이때의 열병으로 헬렌은 시력과 청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듣지도 보지도 못하게 된 헬렌은 촉각과 후각 등으로 세상을 느끼고 몸짓으로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헬렌은 5살이 돼서야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가족들이 자기처럼 몸짓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말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가족들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고 말을 따라할 수도 없었던 헬렌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물건을 집어던지고 발버둥을 치는 등 점차 난폭해지기 시작했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다

그렇게 7살이 됐을 때 헬렌은, 그 후 50여년 동안 선생님이자, 친구로 지낸 가정교사 앤 설리번을 만나게 된다. 아일랜드 고아출신으로 빈민보호시설에서 자라난 설리번도 5살 때 앓은 결막염으로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설리번이 알파벳을 헬렌의 손바닥에 써주면서 헬렌은 글을 터득하게 됐다. 시각장애인 특수학교인 보스톤의 퍼킨스 학교와 뉴욕의 라이트-휴머슨 학교에 졸업한 헬렌은 16세의 나이에 래드클리프 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헬렌이 1904년 졸업할 무렵 그녀는 독일어를 비롯해 5개의 언어를 구사했다. 그녀는 처음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한 시각, 청각 장애인이었다. 이후 1968년 숨을 거두기까지 헬렌은 미국시각장애인협회 일을 하며 국제적인 장애인 복지사업을 펼쳤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헬렌 켈러의 위대한 생애이다. 장애를 극복한 삶은 그 자체만으로 위대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가려져 왔던 헬렌 켈러의 ‘사회주의자로서의 삶’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녀를 온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급진적 사회주의자 헬렌 켈러

헬렌이 사회운동을 접하기 시작한 것은 대학시절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헬렌은 여성의 권리, 특히 참정권 쟁취를 위한 운동을 펼쳤다. 당시는 미국, 영국 등 민주주의의 선진국에서조차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지 않았을 때였다. 영국은 1919년, 미국은 1920년에 이르러서야 여성참정권을 인정했다. 헬렌은 1909년 사회당에 가입해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1912년 사회주의 신문 <뉴욕 콜>에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는가”라는 글을 기고했다. "몇달 동안 내 이름과 사회주의가 신문에 같이 올라왔다. 한 친구는 내가 야구, 루스벨트 대통령, 뉴욕 경찰 스캔들 기사와 함께 1면을 장식했다고 말해줬다.…악평도 이익이 될 수 있다. 내 활동을 기록하는 신문이 사회주의라는 단어를 기사에 자주 쓴다면 난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이 글에서 헬렌은 설리번의 추천으로 웰스(H. G. Wells)의 <신세계(New World for Old)>를 읽으면서 사회주의자가 됐다고 고백했다.
설리번은 스스로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혔지만 헬렌에게 사회주의를 가르쳐 준 장본인이었다. 설리번과 1905년에 결혼한 사회주의자 존 메이시 역시 헬렌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헬렌은 이후 독일에서 발행되는 점자로 된 사회주의 격월간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을 읽으며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했다.



나를 이용한 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자본주의 언론

당시 헬렌은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녀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사회주의자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주류언론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신문들은 사회주의자들과 '볼셰비키'가 헬렌의 명성을 이용하려고 하며, 헬렌은 보지도, 듣지도 못해서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기사를 썼다. 이를테면 한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지난 25년 동안 켈러양의 선생님이자 영원한 동반자는 메이시 부인(설리번)이었다. 메이시 부부는 둘 다 마르크스주의의 열광적인 선전가이며, 이 평생지기에게 의존하고 있는 켈러양이 그런 생각에 동화된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해 헬렌은 “존 메이시는 열광적인 마르크스주의 선전가일 수 있지만 메이시 부인은 마르크스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아니”라며 “편집자는 사회주의자 또는 다른 지적인 인물이 되기에는 사실에 대한 감각을 충분히 갖지 못했다”고 비꼬았다. 헬렌은 또 사회주의자들이 주목을 끌기 위해 “불쌍한 헬렌 켈러를 이용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그와 같은 위선적인 동정은 거절한다”면서 “(자신을) 이용한 것은 자본주의 언론”이라고 반박했다.



돈에 순종하는 편집자들은 사회주의 비방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

그녀는 자본주의 신문의 이같은 보도에 대해 “신문 뒤의 금권은 사회주의를 반대하며 자신을 먹여 살릴 돈에 순종하는 편집자들은 사회주의를 비방하고 사회주의자들의 영향력을 훼손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헬렌이 사회주의자로 활동할 당시는 미국사회에서 사회주의가 어느 때보다 힘을 발휘하고 있던 때였다. 1912년 대통령선거에서 사회당의 유진 V. 뎁스 후보는 1백만 표 가까이 득표했고 1천명이 넘는 사회주의자들이 공무원으로 일했다. 또한 노동운동에서도 새로운 힘이 넘쳐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전투적 노동조합인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은 1905년 설립돼 숙련공 중심의 미국노동총연맹(AFL)과는 달리 미숙련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교육시켰다. 유진 뎁스의 선거운동을 도왔던 헬렌은 “사회당이 점점 정치적 늪에 빠지고 있다”고 비판하며 탈당하고 IWW에 가입했다. <뉴욕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헬렌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IWW에 가입한 것은 사회당이 너무 더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회당은 정치적 늪에 빠져들고 있다. 사회당이 정치체제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한 자리를 얻으려 애쓰는 한 변혁적 성격을 유지한다는 것은 전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거의 불가능하다.” “진정한 임무는 경제적 기반 위에서 모든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단결시키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정치적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그녀의 말은 그녀가 왜 생디칼리스트 조직인 IWW에 가입한 이유를 알게 해준다.



FBI 보고서 “그녀는 공산주의, 파시스트, 나찌다”

물론 사회주의는 여전히 그녀의 나침반이었다. 참정권 시위에 참여했던 헬렌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전투적 참정권론자입니다. 나는 참정권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나에게 사회주의는 이상을 실현하는 운동입니다"라고 말했다. 헬렌은 이후 <세계를 뒤흔든 10일>을 쓴 저널리스트 존 리드를 비롯한 당시 미국의 급진적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했다. 그녀는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에 맞서 윌슨 대통령에 항의하고 러시아혁명이 일어나자 소비에트의 열성적인 지지자가 됐다.
헬렌의 이후 활동은 사형제도, 아동노동, 인종차별에 대한 반대로 이어졌다. 1940년대 헬렌은 스페인 공화주의자 석방운동, 매카시즘의 희생양이 된 사회주의자 석방운동에 동참했다. 1924년부터 1972년까지 무려 48년 동안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으로 일하면서 공산주의자 색출에 앞장섰던 존 에드거 후버에게 헬렌은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연방수사국은 헬렌이 존경받는 장애인 활동가라는 점에서 전면적인 수사를 벌이지는 못했지만 사찰을 진행해 43쪽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한 바 있다.
이 보고서에서 헬렌은 아인슈타인 등과 함께 "공산주의, 파시스트, 나찌 정당 당원"으로 분류돼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헬렌은 1943년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유명인사들과 함께 의회반미활동위원회를 해체하라는 탄원서에 서명했다고 기록돼 있다. 장애를 극복한 여인으로만 알려졌던 헬렌 켈러. 여성운동가로서, 평화주의자로서 그리고 사회주의자로서 정열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가 극복하고 했던 것은 자기의 신체장애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각장애를 가진 경제와 청각장애를 가진 사회” 바로 '자본주의'였다.



                                              출처: 레디앙(www.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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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allergy
07/08/12 01:19
수정 아이콘
글이 상당히 특정 가치관에 대한 전제에 따라 편향적으로 씌어져 있긴 합니다만, 헬렌 켈러가 사회주의 쪽 (정확히는 급진 좌파) 성향이었다는 것은 요즘엔 잘 알려진 이야기이니 그다지 이에 대해선 논란거리는 없을 듯 싶네요. 단, 이 글에서 빠트린 부분이 있는데 헬렌 켈러가 인격적으로도 상당히 공격적으로 폭력성을 띈 행동들을 많이 했다는 점도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녀가 장애를 극복한 존경할 만한 인격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다는 소리죠. 이왕 가려져 있던 인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끄집어낼 때에는 특정한 쪽의 이야기만 끄집어낼 것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도 꺼내야 하는 법이지요.

그리고 국가, 언론에 의해 조작된 기록.. 조작된 이미지로 역사에 기록된 사람은 저 동시대의 대표적인 인물로 아돌프 히틀러도 종종 그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데(역시 이에 대해서도 상당히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유대인을 600만명이나 죽인 것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도 꽤 있죠. 일부에서는 그가 심지어 극단적인 인종 차별을 주장한 적도 없다는 소리까지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히틀러의 어린 시절 사진이라고 미국에 의해 나돌던 아주 못된 표정의 어린이 사진이 5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서야 조작된 가짜였음이 드러나기도 했죠.), 어쨌거나 이런 것들은 결국 국가 권력과 그와 결부된 언론, 나아가 글 쓰는 이들.. 펜의 힘이 무서움을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까요?
LowTemplar
07/08/12 01:19
수정 아이콘
하하 근데 어떻게 공산주의자면서 나찌가 될 수 있었을까요.. ^^;;
아무튼, 역시 미국의 입장에선 영웅을 만들기 위해서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싹 빼버릴 수밖에 없었겠죠...

그래서그런지 '세계위인전기'를 보면 젊은 시절 이후의 이야기는 거의 찾기가 힘들죠..;;

그나저나 메인에서만 보면 "헬렌 켈러 비하.." 로 뜨네요.. 무슨글인가 했습니다.. ^^
진리탐구자
07/08/12 01:24
수정 아이콘
Weballergy님//일단 모든 글은 특정 가치관에 대한 전제에 따라 편향적으로 씌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물론 당연히 균형잡힌 글이 보기도 좋고 기분도 좋은 법입니다만. ^^

확실히 헬렌 켈러는 공격적이고 파괴적이었던 사람이 맞습니다. 세상에 기실 칭찬할만한 성인 군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 건 바보니까요. 실제로 헬렌 켈러는 유혈 혁명을 지지하는 입장이기도 했고요. ^^;; 기독교에 대한 의존이 컸던 것도 성격적 문제가 컸기 때문에 그에 따라 발생한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고자 한 측면이 큽니다. 하지만 그것이 '장애를 극복할만한 인격'이 아니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억압이 강한 사회에서 모나지 않고 둥글둥글한 호인으로 성장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오히려, 저는 저항성과 결부된 일정 정도의 공격성이야말로 '장애를 극복할만한, 아니 장애 차별을 없앨 수 있는 인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애인 차별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장애 문제에 대한 해결이 진행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히틀러에 대해서는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실제로 유럽인들 때문에 15C 한 세기동안 1000만 명의 인디언들이 죽은 것은 아무도 언급하지 않지요. 스탈린에 의해 1000만 명이 죽은 것도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요. 3000만 마리의 미국 들소가 10년 동안 사라진 것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히틀러와 나치스, 유태인 학살에 대한 접근은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한' 시오니즘에 의해 이루어진 측면이 많기 때문에 사실 과장된 측면이 큽니다.
The Greatest Hits
07/08/12 02:48
수정 아이콘
진리탐구자님//
그시절의 자본주의와 현대의 자본주의를 같다고 보십니까?
그녀가 극복하고 했던 것은 자기의 신체장애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각장애를 가진 경제와 청각장애를 가진 사회” 바로 '자본주의'였다.
라는 말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시절의 자본주의와 현대의 자본주의를 동일시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더 여러가지를 묻고 싶지만 필력이 달려서 30분째 썻다 지우기를 반복해서 일단은 이것만 묻고 싶군요)
07/08/12 02:50
수정 아이콘
헬렌 켈러가 공격적이고 파괴적이었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요? 인격적으로 그렇다고 말씀하셨는데 공인의 행적을 평가함에 있어 개인적 성격을 언급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그런 성격이 어떤 공적인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면 그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같습니다.
진리탐구자
07/08/12 02:58
수정 아이콘
The Greatest Hits님//
1. 일단 위의 글은 제 글이 아닙니다. 동영상의 내용과 잘 맞아든다고 생각하여 붙였을 뿐입니다.

2. 논쟁을 유발하기 쉬운 정치적 이념에 대한 측면에 대한 코멘트는 사절이라고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이 글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여기서의 사실은 매우 느슨한 의미의 사실입니다.)'에 대한 소개, 그리고 사실이란 것이 외부적 권력에 의해 어떤 식으로 왜곡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발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텍스트에 대한 의견이 굳이 텍스트의 의도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만, 제 입장에서 이런저런 질문들에 모두 대답하는 것은 피곤할 뿐더러 PGR의 엄격한 관리 하에서는 부담스럽습니다.

3. 그래도 질문에 답을 하자면, 동일하다고보지는 않습니다만 그 때에 비해 모순적 측면이 감소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 단적인 예는 항상 과도한 일반화로 이어지기 쉬우니 걸러 들으십시오 - , 전체 인구 중 하루에 굶어 죽는 사람의 비율은 100년 전과 지금이 거의 동일합니다.(참고로 이 인원은 10만 명 정도 되며, 보잉 여객기 300대가 추락해야 이와 비슷한 사망자가 나옵니다. 그럼 연 인원은 3000만 명 쯤 됩니다. 즉, 평균적으로 200명 중 1명이 1년 안에 굶어 죽습니다. 한국 정도의 경제 수준을 갖춘 국가에는 아사자의 비율이 매우 낮다고 할 때, 전형적인 제3세계 국가들의 아사자 숫자는 어느 정도일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지적 측면에서의 삶의 질이 개선되었다든지 자본주의의 현상적 작동 원리가 달라졌다는 점은 동의합니다만, 그 본질적 측면이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혹시라도 궁금하신 점이 더 있으시다면 쪽지를 통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즈키
07/08/12 03:03
수정 아이콘
흥미로운 애기내요..대충읽어 봤는데.. 도서관가서 저거에 관련된 책이나 찾아봐서 읽어 보고 싶내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김석동
07/08/12 03:11
수정 아이콘
진리탐구자님/ 님의 댓글에 제가 생각하기에 무서운 표현이 있네요.

"유럽인들 때문에" ... -> "1000만 명의 인디안들이 죽은 ..." + "스탈린에 의해 1000만 명이 죽은 ..." + "3000만 마리의 미국 들소가 10년 동안 사라진 것도 아무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표현은 유럽인들이 고의적으로 다른 학살을 쉬쉬한 것 처럼 느껴집니다. 혹은 다른 학살은 유태인 학살보다 덜 중요하다고 유럽인들이 생각하도록 만든다고 느껴집니다. 이것은 물론 사실이 아니죠.

Genocide의 대표적인 예로는 유태인 학살입니다. 유태인 학살에 가장 말이 많은 이유는 죽은 유태인의 수(600만명)가 많은 것도 아니고, 그들이 유태교인(기독교와 가까우면서 대립되는 종교)이기 때문이도 아닙니다. 그 이유는 같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인종, 종교,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죽였기 때문이고, 그리고 또 그들을 짧은 시간 내에 (길어야 5년?) 죽이기 가장 효율적인 방법(개스로)으로 죽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물론 유태인 학살이 다른 학살보다 더 중요하거나, 유태인들의 죽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진리탐구자
07/08/12 03:29
수정 아이콘
김석동님//물론 유럽인을 포함한 대다수의 서구인들은 '다른 학살은 홀로코스트보다 덜 중요하다'는 질문을 받았을 때 "NO"라고 외칠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을 살펴볼 때, 홀로코스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잔혹하고 이유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학살들이 세계사 속에 꽤나 많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사건도 홀로코스트의 10분의 1만큼도 주목받지 못합니다. 가령 예를 들어보자면, 일제에 의해 저질러진 난징 대학살은(근 한 달이라는 단기간 동안 20만 명이 사망했지요.) 세계 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임팩트가 크기로는 첫 손가락에 꼽히는 학살극임에도 불구하고 그리 크게 주목받지 않습니다. 스탈린의 1000만 명 학살은 고작 레닌-마르크시즘에 반대한다는 말도 안 되는 명목으로 - 게다가 그런 사람들은 얼마 되지도 않았습니다만 - 스탈린을 제외한 소련의 건국 간부 모두가 숙청당할 정도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만큼 관심사가 되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600만의 유태인이 학살이 될 당시 집시족도 100만 명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코스트와 관련해서 유태인들과 비교했을 때 집시족이 피해자로서 동일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같은 홀로코스트라도 보다 더 중요시하는 대상과 덜 중요시하는 대상이 나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러한 사실들은 단순히 홀로코스트 그 자체의 파괴적 측면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말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런 대규모 폭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경우, 피해주체가 어느 정도의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봅니다. 홀로코스트가 학살극의 대명사로 꼽히는 것은 그것이 분명히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피해 주체가 세계적 헤게모니를 어느 정도 획득하고 있는 유태인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을 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는 위에 언급된 난징대학살의 예(중국은 힘에서 일본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이 일본에 힘을 실어주고 있기도 합니다. 아시아에 있어서는 일본만큼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국가가 없습니다.)나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경우에는 피해 주체가 애매한 것이, 구 소련 욕해봤자 누워서 침 뱉기입니다. 따라서 홀로코스트의 경우만큼 '도덕적 정당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피해 주체가 없습니다.)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분명해집니다. 집시족과 유태인의 헤게모니 차이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요.

개인적으로는 나치스가 유태인이 아닌, 당시만 해도 많이 노예로 활용되었던 아프리카인들이나 제3세계 국민들을 학살했다면, 혹은 위에 언급된 것처럼 집시족만 주구장창 학살했다면 홀로코스트가 지금과 같은 주목을 받았을지 의문입니다.
호팔십이인철
07/08/12 04:27
수정 아이콘
모르던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07/08/12 05:49
수정 아이콘
김석동님// AP와 SAT United States History, World History를 공부한 입장에서,
최소한 미국 교과서들에서는 "인디언 학살"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 물론, 상대적으로 봐야 하는 거겠죠.

"쉬쉬하는 것"이 맞습니다.

또, 제가 어린 시절 호주에서 살면서 배웠던 역사 교과서에는,
호주인들이 초기 정착시에 학살한 어보로지널인들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뭐.. 각 나라의 "국사"란 쉬쉬하는 게 대세죠. 흐흐.
김석동
07/08/12 06:56
수정 아이콘
SeeY님/ 미국 교과서와 호주 교과서는 본 적이 없기에, 새로운 사실 하나 배웠습니다.

진리탐구자님/ 제가 홀로코스트를 연구하는 분들을 모르기에 확신은 못하겠지만, 역사가들에게 학살에서 더 중요시하는 대상과 덜 중요시하는 대상이 나눠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어느 사건에 더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관점이겠지요. 님의 생각 이해하고, 많이 동의합니다. 다만 님의 글을 읽으면 마치 권력자들이 은폐하거나 음모론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네요.

좋은 글들 계속 부탁드립니다.
진리탐구자
07/08/12 10:29
수정 아이콘
김석동님//단순한 음모론처럼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권력자들이 은폐하거나 음모론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FACT라는 것이 그대로 전달되기는 어렵고, 이를 둘러싼 주체들 간의 사회적 권력 관계에 따라 재구성되어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실>이란 것은 현실에서 굉장히 왜곡되기 쉽습니다. 권력자들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가 사실을 각자의 이해관계와 입장에 따라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이해된 사실>은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한 이해가 다른 이해보다 우월한 이해가 되는 과정에서는 사건 외적 헤게모니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은 예로, 해방 이후 20년 정도까지 사학계에서는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본의 해석 - 조선은 일본에 의해 근대화되었다. - 라는 친일적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그 이후 20년 동안은 <조선은 내재적 발전 능력이 있었지만 일본에 의해 이를 시도하지 못했다.>라는 식의 민족주의적 감수성에 의거한 내재적 발전론을 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이런 해석은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지적들이 많이 나오면서 내재적 발전론은 까이는 분위기입니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 따라서 사실에 대한 이해는 항상 달라지는 것입니다.
Sinclair
07/08/12 11:11
수정 아이콘
미국의 우상 - 헬렌켈러 비하... [13]+
라고 메인화면에 떠서 어떤 비하를 했을까 하고 들어와봤더니.. 비하인드 스토리였나요
낚였네요-_-;
戰國時代
07/08/1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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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최대의 대학살극이자, 비윤리적인 홀로코스트는 아메리카 인디언 대학살이었겠죠. 영국 청교도인들이 처음 아메리카에 왔을 때 그들을 보살펴 주고 각종 농사법을 가르쳐주어 정착을 도왔던게 인디언들이었는데, 정착한 청교도인들에 의해 사냥당하고 대학살을 당하게 되죠. 당시 미국 정부에서는 인디언들 죽이고 가져오는 머릿가죽 숫자당 돈을 줄 정도로 사냥을 권장했다죠? 이런 내용들은 역사적 진실이지만 절대로 미국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죠.
07/08/1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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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탐구자님/러시아의 체전 공습이나 중국의 티베트 합병, 아프리카 부족간의 끊임없는 전쟁들보다 미군의 이라크 침공이 끔찍함 반인륜의 정도와 상관없이 관심받는 건 그 나라가 지니거나 일으킨 영향력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세계대전 당시의 주목도는 아무래도 전 유럽을 상대로 맞짱을 떴던 독일의 그 독일에 의해서 학살된 유대인들이 그만큼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죠 일부로 다른 건 쉬쉬하고 그런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戰國時代
07/08/12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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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자본주의에 대해서 설명드리자면 헬렌켈러 시대의 자본주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폭력적 자본주의였습니다. 독점-과점조차 법적으로 금지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대자본은 남의 가게 앞에 똑같은 가게를 차리고 반값으로 물건을 팔아서 망하게 한 후 독점이 되면 가격을 올리는 일을 반복하여 그 부를 더 키워가던 그런 시절입니다. 국가의 보호란게 없었기에 빈곤 계층은 하루 벌어 하루 먹기조차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하루 15시간씩 일하고는 겨우 빵 몇개 살돈만 버는 노동자가 수두룩했습니다. 하물며, 장애인이들이야 어땠겠습니까. 사회주의라고 하면 무슨 구시대 유물처럼 보일 지 모르지만, 현대의 자본주의라는 게 결국 자유방임형 근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의 세례를 받아 보다 성숙된 결과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자본의 횡포를 막기 위해 현대 자본주의국가는 시장에 개입해서 시장을 통제하는 걸 당연시하고 있죠. 한마디로 근대 자본주의의 시장 + 사회주의의 국가 통제 = 현대 자본주의 라는 것이죠. 현대 자본주의 국가의 사회복지 개념도 결국 사회주의로부터 받아들인 겁니다. 사회주의 국가 자체는 사실상 사라졌지만, 마르크스와 사회주의 이론이 현대 문명에 기여한 점은 어마어마합니다.
Carpediem
07/08/1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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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헬렌켈러 이야기 들을때마다 이해가 안되는게....듣지 못하면 절대 발음을 할수 없지 않나요? A라는 것을 느꼈다고 해도 그걸 에이라고 발음한다는걸 알수는 없으니깐요.
07/08/12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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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지 못한다고 발음 못하는 건 아닙니다. 청각장애인에게 말을 가르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목에 떨림을 인식시켜 발음이 존재하는 걸 가르치고 입모양으로 가장 유사하게 소리를 내도록 유도하더라구요. 시각장애에 청각장애인 경우 역시 그 보다 더한 노력으로 정확한 발음은 아니더라도 유사한 발음을 흉내낼 수는 있다고 합니다.
pathology
07/08/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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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어, 인디언들이 청교도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알려주고 정착을 도왔나요?
그건 처음듣는 얘기라 혹시 근거자료 있으시면 부탁드리겠습니다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 ㅜㅜ
유대현
07/08/1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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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학자가 쓴 '홀로코스트 산업'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홀로코스트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상당부분 부풀려 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물론 유대인이 적게 죽었다던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홀로코스트는 실제로 2차대전 직후에는 크게 화제가 되지 못 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중동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갑작스럽게 표면으로 떠올랐죠. 그리고 정작 홀로코스트의 논의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은 그 홀로코스트로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과는 거리가 있고요.
戰國時代
07/08/1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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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hology // [ target=_blank>http://blog.naver.com/damho67?Redirect=Log&logNo=150020806157] 책 소개인데요. 책에 자세히 나오구요. 책 소개의 인디언 쪽을 보셔도 간략하게 나옵니다. 참고로, 추수감사절의 유래도 청교도인들이 감사의 의미로 수확물을 인디언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생겼다고 합니다.
오소리감투
07/08/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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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몰랐던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탐구자님 감사합니다.
아, 레디앙 가본다 가본다 하고 못 가봤는데, 이런 기사가 올라왔었군요...
U2-pride
역시 지식채널 E의 적절한 bgm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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