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07/08/06 02:06:47
Name 작고슬픈나무
Subject [일반] [여행-맛집] 피지알과의 약속 지키기 2/4
비빔밥에 대한 글을 올리고 이번엔 부안 가는 길과 백합탕에 관한 글을 올립니다.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역시 제 이글루에서 가져온 글이라 평어체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맞춤법 지적은 감사히 받겠습니다.


-------------------------------------------------------




늦은 점심을 마치고 부안으로 달린다. 일몰을 볼 생각이었다. 조금 늦으려나 싶었는데 해는 아직 높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달리다 보니, 김제를 지나 평야가 보인다.

마누라가 '사회 시간마다 호남 평야 호남 평야 하는데, 대체 그게 어디야?" 하길래

바로 차를 세웠다.

"여기가 거기야."


곽재구 시인이 노래했던대로

...



그대는 선청성 소아마비를 닮은 것만 같은

우리 국토의 한쪽 모습과 마주치게 될 것이네

남한 30%의 땅과 30%의 인구를 지나고

3%도 안 되는 돈과 3%도 못 되는 공장을 지닌

그러나 100%의 사랑과 100%의 추억을 몽땅 간직한

이 땅을 달리면서 진실로 그대가

상념에 잠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                                         <다산초당 가는 길> 일부 - 곽재구









다시 달려서 부안을 향해 간다. 드라마 이순신 촬영지를 구경할 셈으로 길을 찾으며 창밖을 보니 어느새..........














실제로 눈에 들어온 해는 이보다 족히 20배 가량은 큰 해였는데 찍고 나니..

차창으로 지나면서 찍은 탓이기도 하지만, 내려봤자 삼각대도 없고 기술도 부족해서 눈에 들어온 풍경은 못 건질 판이다.

내려서 일몰이 될 때를 기다리려다가, 이순신 촬영지에 가면 더 좋은 풍경이 있으려니 해서 계속 달리기로 한다.

마음은 급하고 길은 더욱 구부러져 가까스로 도착은 했지만, 방향이 틀어졌는지 해는 보이지도 않는다.

이젠 이순신이고 원균이고간에 일몰만 찾아서 차를 달려보지만, 이미 때는 늦고 구름은 가득.

안타까운 마음이 충무공 장군을 데려다 놓고 삿대질이라도 할 지경이지만, 어쩌랴.





아무튼 비빔밥을 남김없이 비운 지 4시간이 채 되지 않아 백합죽 가게에 닿았다.


우선 메뉴부터.







기왕 온 거 찜 정식으로 한다. 이모저모로 따져서 결정한 것이긴 하지만,

늘상 여행지에 가면 '기왕 온 거 좀 쓰더라도 다 즐기고 가지 뭐.'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곰곰히 따져보면 참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 집이 유명하긴 한 모양, 마침 방송국에서 또 촬영을 왔댄다.




잠깐 가서 구경해주려 했는데, 뭐 별 거 없어 보이길래 우리 자리로 돌아오니 슬슬 메뉴가 나오기 시작한다.

먼저 찬부터 차려지는데, 젓갈이 정말 맛나게 들어간 전형적인 남도 김치. 아... 눈물 난다.













이 게장도 신선도가 정말 뛰어나다. 게 껍질도 딱딱하지 않고 아삭거리기만 한다.

그리고 주요리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처음은 백합구이.














이렇게 은박지에 싸여 있다가, 열어젖히면 생합이 제가 알아서 아~ 하고 입을 연다.

보통은 그냥 굽는데, 이렇게 은박지로 싸서 굽는 건 아마도 조갯국물을 더 가둬두려는 것인 듯 하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열어서 큼직한 놈을 통째로 넣으면

입 안 가득 조개의 향이 넘친다. 그리고 씹히는 부드러움과 쫄깃함이 저절로 두 눈을 감게 하고.

어찌나 넘치는지 몇 개 먹다가 실제로 입 밖으로 흘리기도 했다.

이어지는 백합찜.














보기에는 정말 매워보이는데, 불이 날 정도로 맵지 않아서 먹기에 딱 좋았다.

아무리 맵게 하려도 백합 때문에 매울 수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사진에는 적어보이지만

양이 무척 많은데다 백합이 차곡차곡 많이 들어있어서 먹다가 쉬다가 먹다가 해야 했다. 둘이 먹기에는 확실히 많은 양이다.

양파와 콩나물, 양배추 등속에 전주 명물 콩나물까지 듬뿍 들어가 있어서 매우면서도 상큼한 맛.

그리고 이 매콤함을 한 방에 잠재워주는 백합탕 등장.






백합찜 정식이라 백합탕은 작은 그릇에 담겨 나왔다.

그러나 그 국물 한 숟가락이 작은 불만을 깨끗이, 정말 깨끗이 씻어주었다.

담백하고 담백하고 또 담백하다.

30대를 넘긴 나이에 술집 기본 안주 홍합탕부터 조개구이 전문점 조개칼국수까지,

나름 조개가 들어간 국물을 먹어봤다면 먹어봤지만 이렇게 담백하고 시원한 국물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합죽.









죽이야 원래 부드러운 음식이지만, 거기에 백합살이 잘게 찢긴 채로 들어가있어

씹는 느낌이 좋았다. 앞에 나온 음식들의 맛으로 혀가 익숙해진 탓인지 오히려 약간 밋밋한 밋이 들 정도였지만,

죽을 다 먹을 즈음에는 역시 또 다른 고소함이 혀를 지긋이 감싸주었다.



도심지에서 찾아가긴 만만치 않은 거리긴 하지만, 서해의 일몰을 보너스로 볼 수 있는 곳이니 애써 먼 길 간 보람이 있는 곳.

가게는 일반적인 음식점에 비해 크게 나은 것은 없었지만, 나름 깨끗한 편이다.

점원들도 시원시원하고 친절했고,

사장님은 그 날도 방송 인터뷰하느라 바쁘셨다.

양이 충분하기 때문에 세트메뉴로 먹더라도 비싼 값은 아니었다.

가끔 내가 구리 농수산시장에 가서 같은 값을 내고 백합을 사다 집에서 쪄먹은 양보다

이렇게 요리해서 반찬까지 다 돼서 나온 백합 양이 오히려 많을 지경이었고,

그 신선함이야 말할 필요 있으랴.

마지막에 카운터 직원이 친절하게 알려준 말로 글을 맺는다.


"농수산 시장 같은 데 가서 생합을 찾으실 때는요, 껍질이 하얀 것은 모두 중국산이예요.

시커멓고, 굴려봐서 맑은 소리가 나야 국산 생합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AuFeH₂O
07/08/06 02:15
수정 아이콘
맛잇겠다 +_+ 저도 언젠가는 여친하나 만들어서 저런곳 놀러가야 할텐데... 그때가 언제일지...
07/08/06 02:20
수정 아이콘
사진이 예쁘네요. 좋은 사진 잘봤습니다. 역시나 배고프군요 -_-;
lightkwang
07/08/06 02:28
수정 아이콘
아... 입을 쩍 벌린 백합이... 인상적이네요.
배고파요. 맛집!!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심똥꼬
07/08/06 02:40
수정 아이콘
아아아.. 저녁도 안 먹고 친구들이랑 달리고 있는데..
저런 떠억~ 하니 차려진 상을 보니까... 배가 너무 고프네요.. ㅠㅠ
darksniper
07/08/06 02:55
수정 아이콘
잘봤어요~
MiniAttack
07/08/06 03:36
수정 아이콘
아....이시간에 이건 고문이다...
HalfDead
07/08/06 04:28
수정 아이콘
아앙.. 새벽엔 테러에요~~~~
잘 봤습니다 ^^
화염투척사
07/08/06 05:12
수정 아이콘
배가고파서그런가 맛집이란 글자때매 그런지 제목에 피지알이 피자집으로 보였네요 -_-;
지니-_-V
07/08/06 07:44
수정 아이콘
아.. 외국에 나와있는 지금.. 저런 한국식당 반찬이 너무 그립습니다. T_T

백합이라.. 한국가면 꼭 찾아가봐야겠군요..

P.S 저번 비빔밥도 정말 맛있어보이던데... 후..
07/08/06 08:52
수정 아이콘
정말 맛있어보입니다. 사진을 정말 맛있게 찍으시는 것 같아요.
07/08/06 09:24
수정 아이콘
홍홍 부안가면 백합음식은 꼬옥 먹죠
전 전을 좋아해서 전을 주로 하고 죽 구이등을 곁들인답니다.
그리고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부안에 가면 꼭 먹는 음식은 아구찜입니다.
부안 시장 안쪽으로 좀 들어가면 허름한 아구찜 집이 있는데
양념이 독특해서 잊혀지지 않는답니다.
07/08/06 09:26
수정 아이콘
아 그리고 부안의 백합은 이제 역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많더라구요
그쪽 모래갯벌이 많이 사라져 가고 있다네요
정말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가보실려면 빨리 가보시는게 좋을듯합니다.
백합 채취량이 정말 많이 줄어들고 있다고 하네요
07/08/06 13:46
수정 아이콘
저번 시리즈부터 정말 재밌게 잘봤습니다. ^^; 이런 글이 올라오기에 제가 PGR을 끊을 수 없나 봅니다. ^^
오소리감투
07/08/06 15:23
수정 아이콘
우와 사진이, 그냥 끝내주는군요...
접사가 예술인듯...
정말 잘 찍으셨습니다. ^^
My name is J
07/08/06 17:01
수정 아이콘
정말부럽습니다.
올해초 나름 전라도 여행을 갔다가.....못먹고 온것이 너무 많았어요..ㅠ.ㅠ
(2인이상 주문가능-이란 문구가 절 울렸지요...)
DynamicToss
07/08/06 23:28
수정 아이콘
헉 사진이 너무 맛나보여요 ㅜ 다음 편도 기대 할께요
작고슬픈나무
07/08/07 20:49
수정 아이콘
AuFeH₂O님// 어이구. 유게의 영웅께서 어찌 왕림을. 조속히 소원이 이루어지시길 소망합니다.

hide님// 감사합니다. 한창 재미 들여서 찍기 시작한 터라, 엄밀히 말하면 제가 찍었다기보다 사진기가 알아서 찍은 셈입니다.

lightkwang님// 직접적으로 느끼실 날을 어서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음식이고 스타고 간접보다 직접이 더 좋지요.

소심똥꼬님// 저녁을 드시고 달리면 되실 듯. 우리나라에서는 맛집이 가장 많이 열려있는 시간이 저녁이잖아요.

darksniper님// 감사합니다.

MiniAttack님// 새벽 3시 36분에 웹 서핑하시면서 식욕에 괴로워하시다니. 일찍 주무세요 일찍!!

HalfDead님// 새벽 4시 28분에 식욕 고문을 당하시며 '아앙~' 이라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난감합니다.

화염투척사님// 에 피자집이라면 역시 미스터피자의 즉석 도우라든가, 우리 동네 쌀피자집의 쌀도우가 맛있답니다!!

지니-_-V님// 외국에 나가면 확실히 한국 음식이 더 그리워지겠지요? 여권도 없는 저는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군요.

noir님// 저도 사진을 맛있게 찍고는 싶은데, 지금은 사진기가 알아서 찍어줍니다. 가만, 이 사진기 혹시..

Cmoon님// 저는 전보다는 구이가 좋더라구요. 그리고 정말로 백합 양이 줄어든답니다. 전라도 말고 충청도 쪽 서해안에서는 이미 백합음식점들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는다더군요. 아구찜도 좋지요.

왕일님// 지나친 칭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오소리감투님// 50mm 1.8 단렌즈라 접사가 제대로 되질 않는답니다. 피사체에 조금 가까이 갈라치면 렌즈가 먹통이 돼서 확 들어내리쳐버릴까 하는 심정은 절대 들지 않습니다. 카드회사님이 보고 계시는 탓이죠 뭐. 과찬에 그저 감사드릴 뿐입니다.

My name is J님// 음식 관련 글을 읽다 보면 '혼자서 음식점에 갔다가~'로 시작하는 글이 여럿 있는데, 대부분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나왔다. 도대체 왜 둘 이상 가야 되나.'로 끝납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DynamicToss님// 감사합니다. 다음 편은 사진이 조금 안 맛날 텐데 걱정입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224 [일반] 철권 이야기. [21] Madjulia6986 08/07/08 6986 0
6480 [일반] 전국 촛불 문화제 현황 및 일정 입니다. [8] 네로울프4598 08/06/04 4598 2
6103 [일반] 전주에서 분신이 있었답니다 [10] MinWoo5041 08/05/25 5041 0
5907 [일반] [잡담] 요새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들. [31] Who am I?4434 08/05/13 4434 1
5805 [일반] [잡담] 엄여사님과 나.. [7] My name is J2546 08/05/08 2546 0
5499 [일반] 우라와 레즈 다이아몬드. [47] 초록별의 전설6007 08/04/26 6007 0
5333 [일반] [잡담] 전주영화제. 예매했습니다. [18] My name is J3405 08/04/17 3405 0
5324 [일반] 이런저런 기사들 모아봤습니다. [13] My name is J3603 08/04/16 3603 0
5234 [일반] 서울 삼성의 안준호 감독님 폭소덩어리네요! [9] 정태영4238 08/04/10 4238 0
5210 [일반] 일상에 관한 소고 - 열번째 (스패샬 땡스 투..) [3] 여자예비역2789 08/04/10 2789 0
4816 [일반] 이상민선수 예전 활약 동영상 [12] 선택과 과정3642 08/03/13 3642 0
4592 [일반] [세상읽기]2008_0225 [13] [NC]...TesTER4110 08/02/25 4110 0
4284 [일반] [펌글]정부개편과 조중동이야기 [41] the hive5075 08/01/31 5075 3
4249 [일반] KBL 신인드래프트가 진행중입니다 [29] 타나토노트3680 08/01/29 3680 0
4022 [일반] 일상에 관한 소고 - 여섯번째 [9] 여자예비역3032 08/01/14 3032 0
3729 [일반] 이명박 정부의 경제기조 전망 [25] 가는거야!!!4438 07/12/22 4438 1
2855 [일반] [세상읽기]2007_1004 [18] [NC]...TesTER3896 07/10/04 3896 0
2476 [일반] [세상읽기]2007_0828 [17] [NC]...TesTER3141 07/08/28 3141 0
2445 [일반] 군생활 하면서 가장 힘든것 BEST5 [60] silence6485 07/08/25 6485 0
2388 [일반] 이번주 축구선수 랭킹50위 [11] bilstein4803 07/08/21 4803 0
2264 [일반] [여행-맛집] 피지알과의 약속 지키기 (3/4) - 수정 [14] 작고슬픈나무3492 07/08/08 3492 0
2224 [일반] [여행-맛집] 피지알과의 약속 지키기 2/4 [17] 작고슬픈나무3740 07/08/06 3740 0
2188 [일반] [여행-맛집] 피지알과의 약속 지키기 1/4 [17] 작고슬픈나무3992 07/08/04 3992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