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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8/15 15:27:24
Name 유니콘스
Subject [일반] 옛날 일본야구 살펴보기 - 1. "가네다 덴노(天皇)" 가네다 마사이치
원래는 롯데 3회를 쓰려고 했는데, 2회에서 기력을 다 뺏겨버리는 바람에 잠시 쉬려고 합니다. 아마 저녁쯤에 3회가 올라올 것입니다.

롯데는 쓰는것만으로도 쓰는 사람의 힘을 빼는 마력이 있더군요. 나중에 1992년, 19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쓸때는 드러누울지도 모르겠습니다.

옛날 일본야구 살펴보기라는 이 글은 또다른 메인 시리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연재주기는 상당히 불규칙할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글은 조해연님께서 쓰신 "이야기, 일본야구"라는 책과 위키피디아 일본편등을 주로 참조했습니다. - 전 일본어 못하기 때문에 단순한 기록만을 위키피디아에서 베껴왔습니다. 다른 분들께서 번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첫번째 인물은 3000안타의 장훈도 아니고 롯데 2회에서 잠깐 등장한 "신령님, 부처님, 이나오님"의 이나오 가즈히사도 아닙니다. 바로 또다른 재일교포 선수이자 400승을 올린 전설적인 대투수이자 기록의 사나이 가네다 마사이치(金田正一)입니다. 지금은 일본인으로 귀화했습니다만......

통산 승수로 따지자면 511승의 사이 영, 417승의 월터 존슨에 이은 3위에 오른 인물이자 14시즌 연속 20승을 거둔 투수입니다.

1933년 아이치현에서 태어난 가네다 마사이치는 좌완투수로 고교 2학년때 팀의 에이스로 고시엔 우승을 목표로 했지만 준결승에서 패하자 곧바로 학교를 중퇴하고 오늘날 임창용, 이혜천 선수가 활동하고 있는 야쿠르트 스왈로즈팀의 전신인 고쿠데쓰 스왈로즈에 입단합니다. 또다른 재일교포 선수인 장훈 선수도 고교 중퇴후 자이언츠에 입단하라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으니까, 그당시 상황으로서 고교 중퇴후 프로입단이라는 수순은 그리 특이한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가난을 이기기 위해서 계약금 50만엔에 입단한 가네다 마사이치.....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설적인 홈런왕 왕정치의 입단 계약금이 당시 1800만엔이였다고 하니 50만엔은 그야말로 헐값이었습니다.

약간은 밑진다고 해야하나요? 어쨌든 헐값에 요미우리나 한신같은 팀도 아닌 B클래스 팀인 고쿠데쓰 스왈로즈에 입단한 가네다 마사이치는 첫 등판인 히로시마 토요카프와의 대결에서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첫 등판을 패배로 장식합니다. 하지만, 그 경기에서 가네다가 허용한 피안타는 바로 그 끝내기 안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투수로서 천부적인 하드웨어를 타고난 가네다는 입단 2년차부터 전설을 써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데뷔 : 1950년 : 30등판, 20선발, 9완투, 1완봉, 164.2이닝, ERA : 3.93, 8승 12패, 143K
2년차 : 1951년 : 56등판, 44선발, 25완투, 4완봉, 350이닝, ERA : 2.83, 22승 21패, 233K

가네다는 190에 육박하는 큰 키 - 188cm - 와 긴 팔을 갖고 있었으며 유연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투구동작에서 불같은 강속구와 예리하게 날이 선 커브를 던질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가네다가 등판하는 날에는 포수가 미트속에 가죽을 덧대어서 공을 받아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속에 비해 약간 부족했던 제구력까지 보완하며 그는 센트럴리그뿐만 아니라 일본야구를 지배하는 에이스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1952년 : 64등판, 41선발, 23완투, 7완봉, 358이닝, ERA : 3.17, 24승 25패, 269K
1953년 : 47등판, 33선발, 24완투, 6완봉, 303.2이닝, ERA : 2.37, 23승 13패, 229K
1954년 : 53등판, 39선발, 28완투, 2완봉, 345.2이닝, ERA : 2.63, 23승 23패, 269K
1955년 : 62등판, 37선발, 34완투, 9완봉, 400이닝, ERA : 1.78, 29승 20패, 350K
1956년 : 68등판, 29선발, 24완투, 5완봉, 367.1이닝, ERA : 1.74, 25승 20패, 316K

일본야구를 지배한 에이스였음에도 패가 많은 이유는 그가 속했던 팀인 고쿠데쓰 스왈로즈가 리그 하위권에서만 맴돌던 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록을 보면 아시겠지만 데뷔해인 1950년을 제외하면 연속해서 200이닝도 아닌 300이닝을 넘게 던지며 20승 이상씩 올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완투도 20회 이상......

1957년, 그는 또다른 기념비적인 업적을 세우며 자신의 이름을 한번 더 알립니다.

1957년 8월 21일, 상대는 선동렬과 이종범이 활약했던 주니치 드래곤즈. 8이닝까지 가네다는 한명의 타자도 출루시키지 않는 퍼펙트투구를 선보입니다. 그리고 9회, 주니치의 타자가 하프스윙으로 삼진을 당하자 주니치의 감독은 심판에게 이의를 제기했고 경기는 40여분간 중단됩니다.

하지만, 결국 가네다는 27명의 타자를 모두 출루시키지 않으며 1 : 0 퍼펙트 승리를 이끌어냅니다.

1957년 : 61등판, 35선발, 25완투, 5완봉, 353이닝, ERA : 1.63, 28승 16패, 306K

다시한번 가네다의 공을 이야기 해보자면 가네다는 불같은 강속구도 일품이었지만 그의 최고의 무기중 하나는 바로 커브였습니다. "2층에서 떨어뜨리는 것 같다.", "느리게 날아오지만 어느새 스트라이크존을 지났다.", "한번의 커브 후 날아오는 또다른 커브는 또다른 궤적과 속도를 그리며 날아와 나의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라는 타자들의 말이 나왔을 정도로 가네다는 다양한 커브를 구사했습니다.

특히, 가네다의 초슬로 커브는 타자들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는데 최고였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직구의 구속이 떨어지자 개발한 그 구질은 가네다의 직구에 대비한 타자들의 머릿속을 꿰뚫며 천천히 그리고 날카롭게 날아들었습니다.

1958년, 가네다는 또다른 사건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이름을 다시한번 일본에 날립니다.

1958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거물 신인이 들어옵니다. 전설적인 홈런왕 왕정치와 함께 중심타선을 지키며 ON포라고 불리는 전설적인 강타선을 이끌어낸 "Mr. 베이스볼" 나가시마 시게오.

시범경기에서도 타 팀의 에이스들을 두들기며 이름을 날린 나가시마. 게다가, 요미우리의 개막전 상대는 다름아닌 고쿠데쓰. 일본의 언론들은 "제아무리 가네다라도 나가시마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것이다."라는 기사를 써냅니다.

하지만, 가네다는 "가네다 덴노"라는 별명을 지녔을 만큼 자존심이 강한 사나이였습니다.

그는 언론앞에서 "그런 애송이와 나를 비교하면 나의 이름이 운다. 그런 애송이 정도는 전타석 삼진으로 때려잡아 프로의 쓴맛을 보여주겠다."라고 공언합니다.

그리고 개막전.

첫타석에서 맞부딪힌 가네다와 나가시마. 가네다의 불같은 직구에 삼진. 두번째 타석 역시 가네다의 날카로운 커브에 나가시마는 헛스윙을 하며 또다시 삼진. 세번째 타석에서는 삼구삼진. 마지막 타석에서는 나가시마가 2 - 3 풀카운트까지 접전을 펼치지만 결국 가네다가 또다시 삼진을 만들어냅니다.

이 4번의 결전에서 나가시마가 가네다의 공을 맞힌 것은 2번째 타석에서의 파울볼 한개가 전부였습니다.

1958년 : 56등판, 31선발, 22완투, 11완봉, 332.1이닝, ERA : 1.30, 31승 14패, 311K
1959년 : 58등판, 25선발, 14완투, 4완봉, 304.1이닝, ERA : 2.54, 21승 19패, 313K
1960년 : 57등판, 31선발, 22완투, 4완봉, 320.1이닝, ERA : 2.58, 20승 22패, 284K
1961년 : 57등판, 32선발, 23완투, 6완봉, 330.1이닝, ERA : 2.12, 20승 16패, 262K
1962년 : 48등판, 30선발, 24완투, 1완봉, 343.1이닝, ERA : 1.73, 22승 17패, 262K
1963년 : 53등판, 30선발, 25완투, 9완봉, 337이닝, ERA : 1.98, 30승 16패, 287K
1964년 : 44등판, 31선발, 22완투, 4완봉, 310이닝, ERA : 2.79, 27승 12패, 231K

가네다는 1951년부터 1964년까지 14년 연속 300이닝 이상 던지며 20승 고지를 밟았고 200개 이상의 삼진을 잡는 대 기록을 쌓습니다. 그리고 1959년 1시즌을 제외하면 완투 역시 20번을 넘길 정도로 강인한 투수였습니다.

가네다가 속해있던 팀인 고쿠데쓰는 약체팀이라 인기도 요미우리나 한신, 주니치등의 팀에 비하면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나마 내세울 거리는 최강팀 요미우리와 최강의 에이스 가네다의 맞대결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강의 요미우리도 가네다와 만나기만 하면 고분고분한 양으로 변하며 가네다에게 승을 헌납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리고 가네다의 성격을 살펴보자면 "가네다 덴노"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했으며 콧대 역시 높았습니다. 그는 팀의 훈련계획을 따라가지 않았으며 언제나 자신이 자율적으로 짠 스케줄대로 훈련을 했으며 식사 역시 개인 요리사를 불러다가 마음에 맞는 반찬을 만들어 친한 사람 몇명하고만 밥을 먹을 정도. 게다가, 자신이 던지고 싶으면 마운드에 자율적으로 올라갔으며 던지기 싫으면 마음대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감독이나 투수코치는 결코 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1958년, 나가시마 시게오와의 대결을 앞두고 했던 발언, 요미우리와의 3연전에서 모두 자신이 선발로 등판한 일등은 모두 그의 드높은 자존심과 자부심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1960년. 가네다는 시즌 말까지 19승만 한 상황. 하지만, 그 해에 그의 몸 상태는 결코 좋지 않았습니다. 골프장으로 가다가 트럭과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타박상, 시즌 중반에는 위장병까지..... 하지만, 9월 30일 vs 주니치 전에서 그는 4회까지 호투하던 하지만 5회 무사 3루의 위기를 맞은 투수를 대신해 감독의 아무런 지시 없이 마운드에 올라가 투수를 강판시킵니다. 그리고 남긴 한마디.

"나, 던지기 때문에"

그리고 위기를 넘기며 그는 20승고지를 기어코 밟아냅니다.

1965년, 가네다는 정들었던(?) 고쿠데쓰 스왈로즈를 떠나 자신이 그렇게 짓밟았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소속을 옮깁니다. 그리고 요미우리의 초유의 9연속 일본시리즈 제패등에도 공헌을 하고 그렇게 끼고 싶었던 우승반지도 손가락에 낍니다.

하지만......

1965년 : 28등판, 17선발, 9완투, 3완봉, 141.2이닝, ERA : 1.84, 11승 6패, 100K
1966년 : 19등판, 12선발, 1완투, 0완봉, 84.2이닝, ERA : 3.43, 4승 6패, 58K
1967년 : 33등판, 22선발, 6완투, 1완봉, 170이닝, ERA : 2.28, 16승 5패, 132K
1968년 : 32등판, 19선발, 4완투, 0완봉, 138.1이닝, ERA : 3.46, 11승 10패, 87K
1969년 : 18등판, 11선발, 1완투, 0완봉, 72.1이닝, ERA : 4.25, 5승 4패, 48K

그에게도 세월이 찾아왔으며 그동안의 무리는 결국 그의 선수생명을 갉아먹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969년, 10월 10일. 그때까지 통산 399승을 쌓던 가네다는 주니치와의 경기에서 구원투수로 등판. 나머지 이닝동안 1실점만 허용하며 버텨내 승리를 따냅니다.

통산 400승이자 마지막 승리.

그가 쌓은 기록은 일본야구의 전설이었습니다.

통산 : 944등판, 569선발, 365완투, 82완봉, 5526.2이닝, ERA : 2.34, 400승 298패, 4490K

1957, 1958, 1963년의 다승왕, 1951, 1952, 1953, 1955, 1956, 1958, 1959, 1960, 1963, 1964년의 탈삼진 타이틀, 1957, 1958, 1965년의 평균 자책점 타이틀.

1958년에 기록한 64.1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 일본의 사이영상인 사와무라상 3회 수상, 베스트 9 3회 선정, 1988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

그리고 왕정치의 홈런 기록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 MLB에서도 가네다의 탈삼진 기록은 인정하여 기념구와 글러브를 명예의 전당에 전시합니다.

1970년, 가네다는 현역에서 물러납니다. 그리고 1973년부터 1978년,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롯데 감독을 맡아 1974년에는 일본 시리즈 우승까지 이루어냅니다.

그리고 가네다 하면 떠오르는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롯데의 에이스 최동원을 자신의 양자로 맞아들여 일본야구에 진출시키려 했으며 - 반대로 무산됩니다. - 장훈과 친하게 지냈으나 그가 일본으로 귀화함에따라 장훈과 절교.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불펜에서 자신의 연습투구를 받아 주다가 왼쪽 엄지손가락마비 후유증을 얻은 고교동창생 포수가 고향에서 주유소를 차릴 때 적지 않은 자금을 쾌척해서 개업을 도와준 에피소드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네다는 일본으로 귀화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인정을 받지 못하는데 고쿠데쓰가 도에이 플라이어즈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시범경기를 가졌을때 도에이의 장훈에게는 엄청난 환호를 보냈지만 일본으로 귀화한 가네다에게는 별다른 환호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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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ing-LeafV
09/08/15 15:29
수정 아이콘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롯데도 빨리 써주세요~
wish burn
09/08/15 15:46
수정 아이콘
월터존슨과 비슷한 점이 있죠. 당대최약체 팀에서 뛰어던 역대 리그 최고의 에이스.
다른 점은 역시 성격? ^^;;
그리고 나가시마와의 에피소드는 저게 끝이 아닙니다.
나가시마가 처음엔 일방적으로 당했지만 얼마 후 마사이치에게 홈런을 뽑아내서 복수했다고 하죠.

일본프로야구 에피소드를 보면 만화가 아닌가 의심될정도 흥미로운 스토리가 많은데,
가네다 마사이치는 그중에서도 재밌는 에피소드가 유독 많았던 선수로 기억합니다.
38개의 홈런과 7개의 고의사구를 기록했던 강타자기도 하지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는 지명타자제도가 없습니다.)

한국명이 김정일이라고 알려졌지만 실제 한국이름은 김경홍이라고 하더군요.
ChojjAReacH
09/08/15 16:41
수정 아이콘
아 그때의 일본야구 재밌었네요. wish burn님의 덧붙임글보니 진짜 만화가 아닐까 싶은 스토리네요 크크 재밌습니다.
유니콘스
09/08/15 18:54
수정 아이콘
wish burn님// 깜박하고 안써놓았네요. 그리고 DH제도는 1973년에 미국의 아메리칸리그에서 처음 도입된 것으로 그때에는 퍼시픽 리그도 DH제도를 쓰지 않았습니다.
퀘이샤
09/08/15 22:47
수정 아이콘
강한 팀에서 선수생활을 오래 했다면,,,500승 아니,,, 600승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방어율대비 패전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장훈의 자서전에 보면 귀화, 식사(육회) 등과 관련해서 가네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대략 서술하신 내용과 부합하는,,,)
09/08/15 23:12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장훈도 약체팀에서 오랬동안 뛰어야 했던 불운이 있었던데, 가네다도 마찬가지군요.
그렇게 던지고도 20년동안 선수생활한게 놀랍군요. 중위권 정도 되는 팀에서 어깨 좀 쉬어가면서 던졌으면
600승도 가능했겠네요. 3일연속 선발등판이라니...
그때나 지금이나 요미우리의 선수영입 센스는 안습이네요. 장훈도 전성기가 지나서 데려가더니... 그래도
3000안타나 400승이나 한창 인기있던 요미우리에서 뛸 때 세운 기록이니 전국적인 주목은 제대로 받았겠군요.
아, 그리고 글 제목만 달랐으면 조회수가 3배이상 되지 않을까 싶네요.
09/08/17 03:18
수정 아이콘
정말 재미있네요 일본야구는 역사가 깊은 만큼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군요

다음편이 기다려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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