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대법원의 존엄사인정판결기사를 보면서 문득 예전에 제가 알던 지인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분의 일을 알기 전에는
저 역시 환자의 생명연장을 중단시킨다는 존엄사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이였습니다.하지만 막상 제 주변에서 제가 잘 아는 분의
일이 되고보니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더군요.
존엄사문제의 핵심은 물론 생명의 소중함이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남은 가족들의 경제적인 문제쪽이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돈이 엄청 많다면 이런 고민을 하지도 않을테고, 돈이 없었다면 병원도 못갔겠지만 어느정도 재산을 가진 중산층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자식의 도리와 돈 사이에서 정말 고민될것 같습니다.

제가 얘기하려는 그분은 지방에서 부인과 함께 자그마한 음식점을 운영하셨는데 30평대 아파트와 중형차를 소유하고 있었고 아들하나
딸하나를 가진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이였습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도 자식들 키우고 행복하게 사는데 전혀 지장없는 가정이었죠.
그런데 어느날 아침 욕실에서  그분의 혼자남으셨던 칠순 아버지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식물인간이 되버리신겁니다. 생명은 붙어
있으시지만 의학적으로는 더이상 할게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는데 아쉽게도 아버님에 대한 보험은 가입되있지 않으셨습니다.

더구나 그분은 외아들이다보니 부인께서는 병간호에 매달릴 수밖에 없어서 가게일도 엉망이 되버리고 중환자실 병원비는 하루하루
눈덩이 처럼 불어나더군요. 지인들이 도와주는 것도 일부에 불과하고 거기에 기존에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으셔서 의료비 혜택을 받는것도 한계가 있었습니다.

병원비마련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재산을 처분해야 했는데 현금 나올곳이라고는 아파트와 가게 보증금, 권리금이 전부였습니다. 거기에 남은 자식둘은 아직 고등학생이다보니 당장 학원비를 비롯해서 앞으로 대학등록금까지 들어갈데는 많은데 병원비는 나날이 쌓여가지 정말
옆에서  보기에 난감했습니다. 이런 경제문제 뿐 아니라 병원생활이 길어짐에 따라서 부부간에 불화도 점점 심해지더군요. 아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부인입장에서는 가망도 없는 아버님때문에 자기 가정, 자식들의 미래가 망가진다고 생각하니 속에서 천불이 나겠죠.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분은 아파트와 가게 처분하고 여기저기 돈을 빌려서 어찌어찌 병원비를 치뤘지만 아버님은 2년을 그렇게
버티시다가 결국 엄청난 병원비를 남기고 돌아가십니다. 설상가상으로 장례를 치른후에 얼마 후에는 두분도 불화를 못이겨내시고 이혼을
하시더군요.

무엇하나 부족한거 없이 행복했던 한 가정이 이렇게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나버리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니 기존에 제가 존엄사문제에 대해서 가졌던 생각이 과연 맞는건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이니까 도리상 그분처럼 하는게 맞겠지만  당사자가 되면 정말 고민이 될것
같습니다. 돌아가시는 것은 기정사실이고 아무것도 해드릴건 없는데 단지 생명을 연장시키는 대가로 남은 가족의 삶은황폐화 되버린다면
과연 환자 본인도 이런 상황을 원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요? 가족으로서의 도리와 돈.....정말 어려운 문제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