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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3/24 15:53:05
Name SCVgoodtogosir
Subject [일반] 패배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시작부터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코칭스태프가 되겠다는 사람도 드물었고
건강마저 안좋으신 김인식 감독님께서 독이 든 성배를 들었습니다.
국민영웅 박찬호 선수와 이승엽 선수는 각각의 이유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고
1회 WBC에서 활약했던 서재응, 최희섭, 김병현 선수도 없었습니다.
세계 제일의 유격수 박진만 선수의 부재는, 박기혁 선수를 잘 모르던 당시에는 너무 뼈아프게 느껴졌습니다.

펼쳐진 1회전. 일본킬러 김광현 선수는 일본에게 김나쌩으로 돌변하며 얻어맞았고
김광현 선수의 일시적 부진이었든, 박경완 선수의 수읽기가 상대에게 노출되었든 간에
우리는 일본에게 최초로 콜드게임패의 치욕을 당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아, 아시아 예선 뚫기도 힘들겠구나.
대만에게 졌던 어떤 경기가 떠오르고 일본 사회인 야구팀에게 무기력하게 패배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김태균선수의 홈런 외에는 이렇다할 득점도 내지 못했고 일본킬러라고 불리던 선수는 특유의 미소도 잊은 채
8점을 내주고 쓸쓸히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한국은 강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 이라기 보다 마치 이가 빠지면 새로 이가 나는 악어처럼
메이저리그가 뭔가요? 라고 외치며 담담히 공을 꽂아 넣던 윤석민 선수,
원숭이 조련의 새 지평을 연 봉중근 의사,
공 대신 돌을 던져대는 정현욱 선수와 같은 강력한 투수들이 마운드 위에 군림했고
그동안 에이스로 혹사당했던 김광현 선수, 류현진 선수는 기대에 많이 미치지 못했지만 (부진하단 소리가 아니라
그동안 워낙 이분들이 퍼펙트 하셔서...) 너무너무 수고해주셨고
마지막에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은, 제 마음속의 영원한 여왕벌 정대현 선수.
임창용 선수는 마지막에는 눈물을 흘렸지만 그래도 구장에 뱀을 한포대 풀어놓으며 부동의 불펜 에이스로 활약해주었습니다.

빈볼에도, 비열한 무릎치기에도 굴하지 않은 간지 이용규 선수는 모든 국민에게 사랑받는 근성가이가 되었고
이진영, 정근우 선수는 적재 적소에 나와 적절한 플레이를 해주었습니다.
지난 한국시리즈에서 침묵했던 김현수 선수는 기계의 소리를 들으며 사못쓰에서 사겨쓰(사할 겨우 넘기는..)로.
국민타자의 칭호를 물려받을 김태균 선수의 무시무시한 타격과 안어울리게 정교한 수비(?).
센터필드를 가르는 거대한 홈런 두방으로 존재의 의미를 각인시켰던 추신수 선수.
순간순간 필요한 안타와 홈런을 올려준 꽃범호 선수
다른 어떤 포수들보다 뛰어난 투수리드를 자랑하던 박경완 선수
박진만 선수는 더 이상 국대에 나오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 박기혁 선수
수비하라고 넣어놨더니 홈런을 치던 고제트 고영민 선수
어려울때 큰거 한방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자기 몫은 해준 이대호 선수
대주자로 고생한 이종욱, 이택근 선수
그 외에도 애써준 최정, 이재우, 임태훈, 이승호, 장원삼, 강민호, 손민한 선수

이 선수들과
소름끼치게 들어맞던 작전을 구사한 김인식 감독님 이하 코치 여러분들.

이분들의 힘으로 대만과 중국을 차례로 집으로 돌려보내고
다시 맞이한 일본을 영봉패 시키며 웃지 못하게 만들고
강호 멕시코를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또 만난 일본을 이번엔 채찍으로 조련하며(?) 침묵하게 만들고
또-_-; 만난 일본에게는 투수를 아끼며 선전했지만 패배하고
준결승에서 만난 메이져 리그 그 자체인 베네수엘라를 멕시코보다 더 멀리 보내고

마침내 결승, 다섯번 째 맞이한 일본과의 경기에서
야구는 왜 9회말 2아웃 부터라는 말이 있는지 알게 해준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모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기면, 누구는 질 수 밖에 없는게 승부의 세계고
거기서 우리는 패배했지만
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의 더티플레이에도 항상 신사답게 행동하고
야구의 본고장 미국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스포츠맨 십을 보여주고 왔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습니다.

패배는 부끄럽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 비열한 플레이를 한 것, 노력하지 않는 자세를 보이는 것
이것이 더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패배 때문에 슬퍼하기 보다, 아직은 우리가 올라갈 자리가 있으니 더 노력하고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한번도, 패배가 아름답다고 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오늘은 말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다고. (결코 꽃..... 때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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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akk Wylde
09/03/24 16:0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비록 일본에게 지기는 했지만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자랑스럽네요.

이번 시즌은 야구장에서 한번 살아 보렵니다.
포이러
09/03/24 16:12
수정 아이콘
패배도 아름다울 수 있었네요^^

정말 많은것을 느끼게 하는 WBC였습니다.

물론 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졌어도 행복한 오늘입니다.
09/03/24 16:14
수정 아이콘
지난 대회 4강, 이번 대회 준우승, 다음 대회 우승
20년전통손짜장
09/03/24 16:17
수정 아이콘
패배가 이토록 아름다울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회원님 말대로 다음 대회는 우승할 차례입니다.
뭐 이번에 우승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
우리결국했어
09/03/24 16:22
수정 아이콘
꽃의 적시타가 빛이 바랬네요 ;;
포데로사도스
09/03/24 16:22
수정 아이콘
오늘 우리선수들은 마치
슬램덩크에서 산왕을 상대로 끈질기게 저항하던 북산의 그것처럼 감동적이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09/03/24 16:34
수정 아이콘
(결코 꽃..... 때문이 아닙니다(?))


꽃 Rkwlak.....ㅠㅠ;;
09/03/24 17:0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9회말 투아웃에서 포기하지 않고 동점을 만들어내며 대한민국의 저력을 보여줬을 때,
경기 결과와 관계 없이 이미 행복했고 선수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정말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패배였습니다. 대표팀 정말 수고 많으셨고.. 고맙습니다.
우왕크굿크
09/03/24 17:07
수정 아이콘
구구절절 맘에 와닿는 글입니다... ㅠㅠ

오늘 응원하며서 하도 진을 뺐더니 오후내내 몽롱하긴 하지만 그래도 3월 내내 행복했고요...
김인식 감독님 이하 코치진, 선수단 모두, 그리고 먼 타국에서 우리나라를 진심으로 응원해준 교민들께 고맙습니다.

흑흑흑 대한민국 대표팀 만세~~

올해는 봉타나 선발경기 꼭가고 한화경기 꼭 가고 가볼 경기가 너무 많네요...
롯빠이면서 두산 엘지 한화 기아를 좋아하고 우리에는 무관심하고 삼성, 스크를 싫어했지만 이젠 어느팀이든 다 좋을듯...
만약 봉타나와 이대호,이용규 선수가 대결한다면 누굴 응원해야 할지 벌써 고민입니다. ^^;
나똥구리
09/03/24 22:0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가 아름다운 패배를 보여준것 같습니다.
정말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아쉬움의 눈물 보다는 감동의 눈물이 나는 날이네요.
한국 야구 자랑스럽습니다!
09/03/24 22:19
수정 아이콘
좋은 후기 감사합니다.
오늘 졌지만 젊은 선수들이 너무나 잘 싸워주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에 이종범, 양준혁, 등등 레전드들이 이끌던 한국 야구,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부르짖던 시절이 아주 먼 옛 이야기 같습니다.
정말 잘 성장해 주었습니다. 이런 국제경기 경험들이 한국 야구의 밑거름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다음 국제대회 기대됩니다^^
캐리어순회공
09/03/25 19:45
수정 아이콘
이번 패배가 분명 부끄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반성할 것이 있으면 반성하고 넘어갔으면 합니다. 그래야 다음번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죠. 특히 로스터에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은 선수는 네임밸류가 아무리 높아도 절대 선발하지 않았으면 하네요.

안그래도 일본에 비해 후달리는 선수층인데, 팀에 도움은 못될망정 아예 제대로된 투구도 못하는 선수를 떡하니 뽑아놓고 있으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또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벤치와 선수간에 사인미스가 났다는 것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네요. 솔직히 말하면 특정선수가 고의적으로 벤치의 사인을 무시했다는 생각밖에는 안들더군요. 예전에도 비슷한 행동을 한 선수라서 그런지 믿음이 안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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