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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1/30 11:37:18
Name memeticist
Subject [일반]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람을 더 바쁘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아래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람을 더 바쁘게 만들었다?'는 Joker님 글에 대한 반론을 쓰다가 너무 길어져서 새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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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가끔씩 되풀이되는 낭만주의적인 생각이군요. 얼핏 생각해보면 그런 생각도 할 만 하지만 사실은 틀린 생각입니다.

우선 과학은 편안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학문이 아닙니다. 과학은 세상에 대한 지식을 확장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세상을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한 가장 객관적인 방법이죠. 과학은 인간 지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것을 가장 큰 목적으로 합니다. 그로 인해 얻는 기술과 발명들은 부차적인 이득이죠.

근대 과학이 탄생하기 전에도 인간은 이미 과학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천체를 보며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며 일관된 법칙을 발견할 수 있었고, 동물과 식물을 관찰해서 그것들의 특징을 분류하고 사물의 움직임을 보고 일관된 법칙과 특징들을 발견해냅니다. 이렇게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귀납추리를 통하여 자연의 법칙을 발견하는 것은 훌륭한 과학적 행동입니다. 이건 과학자들만 할 수 있는게 아닙니다. 우리들도 매 순간 이런 행동을 하고 있죠. 우리들이 충분하지 않은 표본에 의지하여 성급한 일반화를 자주 하긴 하지만 넓게 보면 이런 행동도 귀납법에 기댄 과학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칙의 발견에서만 그치면 그것은 죽은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거기서 더 나아갈 줄 알아야죠. 인간은 지식을 통하여 응용을 해낼 줄 압니다. 천체와 계절의 변화를 보고 주거, 의복 등을 개선하고 농경법을 발명해냅니다. 동물과 식물을 분류하여 먹을 수 있는 것을 가려내고 사냥법과 채집법을 발명합니다. 둥근 돌맹이가 잘 구르는 것을 보고 바퀴를 발명합니다.

우리는 오만하게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떠들고 있는데 그렇게 떠들 수 있는 것도 이러한 활동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저 직립보행과 체중에 비해 큰 두뇌만 갖고 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영광이 아니죠. 다른 동식물들과 달리 환경의 변화에 종속되어 있지 않고 고도로 발달한 두뇌를 통해 자연의 법칙을 발견해냅니다. 그것을 통해 자신이 처한 환경을 개선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한낱 금수와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런 능력을 주신 신에 대한 모독이라고 할 수 있겠죠. (물론 라엘리안 같은 종교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성종교들은 인간의 지식이 어느 일정 단계에 머무르길 바라겠습니다만.)

그 당시의 원시적인 과학기술과 지금의 과학기술은 차이가 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발전속도 빼고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습니다. 지식은 지식을 낳고 그 가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죠. 기술의 발달이 지식을 더 확장시키기도 합니다. 망원경이나 현미경과 같은 관찰도구 발명이 세상을 더 자세히 관찰하게 하고 그것이 더 많은 의문과 해답을 요구하게 하니까요. 기록수단과 통신수단의 발달은 지식의 전승과 확산을 도우며 인구의 증가도 그것을 더욱 빠르게 합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지식은 끝없이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SF 작가이자 과학자인 아이작 아시모프는 우주의 모든 의문을 알아내려는 행동을 프랙탈에 비유하기도 했죠. 무슨 의문이 해결되면 그것이 또 다른 의문을 낳게 되고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될 거라고 말이죠.

과학이 단지 인간이 편안한 일상을 누리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은 이제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과학과 달리 과학기술에는 그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이는 부차적인 이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술은 편안함을 주기도 하지만 경제성과 효율성에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사실 경제성이나 효율성이나 같은 말이긴 합니다만. 1톤의 물건을 인력으로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기는 것과 트럭으로 옮기는 것은 경제성과 효율성에서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기술을 이용하여 더 경제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원시적인 방법으로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멍청하다고 할겁니다.

Joker님이 팩스를 예로 들면서 편지는 팩스에 비해 업무의 여유를 줄 수 있을거라 말씀하셨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전보와 전화, 팩스 같은 현대적 통신기술이 발명되기 전이라고 해도 그 당시에는 그 당시에 맞는 업무가 있었습니다. 답신이 없어서 업무를 진행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기업은 일단 애초에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며 설사 발생한다고 해도 답신이 올 동안 다른 업무를 맡을 가능성이 높겠죠. 최대한의 효율을 통해 경제적 가치를 얻어내려는 기업이 그렇게 비효율적인 상황을 두고 볼 리는 없습니다.

기술의 발달이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하고 편안함까지 준 건 맞지만 일을 더 줄여주지 못했다라는 말은 일정 부분 사실입니다. 제조회사의 경우를 보자면 기계의 도입으로 생산시간을 반으로로 단축시켰다고 해서 근무시간을 반으로 단축할 리는 없죠. 더 많은 생산으로 이윤을 추구하는게 기업의 목적이니까요. 버트런드 러셀은 핀 생산 공장의 예를 들며 기계의 도입으로 생산성을 증가시켜서 근무시간을 단축시킬 수도 있는데 오직 노동만을 신성시하는 사회와 기업의 욕심으로 근무시간은 그대로 두고 오히려 인원을 감축시키려 한다고 비난한 바가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업무가 더 불편해지거나 근무시간이 더 많이 늘어나는 건 아닙니다. 실제로 농경, 산업사회에 비해 여가시간은 많이 늘어났습니다.

댓글의 연휘군님 말씀처럼 같은 시간 동안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게 된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맞는 말입니다. 가사노동의 예를 들어 볼까요. 세탁기와 청소기가 발명되기 전에도 지금과 비슷한 시간을 가사노동에 할당했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해야 할 일이 늘어났을까요? 세탁기가 세탁을 대신해 주고 있는 시간에 인간은 그 보다 강도가 낮은 다른 집안일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습니다. 청소기도 마찬가지죠. 솔직히 가사노동을 모두 인력으로 해서 현재과 같은 생활수준과 여유를 누릴 수 있겠습니까? 동일한 가사노동 시간을 가진다고 해도 그 당시에는 여유가 없어서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을 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귀족이나 부잣집에서는 노예나 하인으로 자신의 노동을 대신했는데 기술과 기계의 발달은 그런 것을 없애는 것에 도움을 줘서 인권향상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처럼 기술에는 얼마든지 인간의 노동시간을 단축 시켜서 여가를 누릴 수 있게 하는 잠재력이 있습니다만 인간의 욕심때문에 그렇게 쉽게 유토피아가 다가오지는 못합니다. 아담 스미스가 말했듯이 자신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추구하려는 경제주체가 시장에서 살아남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생산과 노동을 정부가 모두 통제하는 공산주의나 순수 사회주의 사회로 가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요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체계라는거죠. 더 근본적으로는 인간 자체가 문제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할 수록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에 회의를 느끼고 과거가 좋았다는 식의 낭만주의나 회귀주위가 나타나곤 하는데 사실 생각처럼 과거는 그다지 낭만적이지도 않았고 살기 좋은 시대도 아니었습니다. 과거 유아 사망률은 상상을 초월했으며, 전염병이 창궐하며 평균수명은 40세를 채 못넘었습니다. 하루종일 노동으로 고생해야 했고 여가시간 때 할 수 있는 일도 몇 가지 없었습니다. 여자, 아이들은 열등하다는 생각에 온전한 대우를 받기 어려웠습니다. 소수의 귀족과 가진자를 제외하고는 교육의 기회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나열하면 끝도 없습니다.

의학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삶의 질을 엄청나게 향상시켰다는 것은 말해봐야 입이 아프겠습니다만 인권과 같은 인간의 기본권을 향상시킨 것과도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알려준 것은 종교도 위대한 성인도 아니고 바로 과학이죠. 모든 인류가 같은 조상을 가진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과학이고 특정 인종간(흑인과 백인)의 유전적 차이보다 특정 개인간의 유전적 차이가 훨씬 크다는 것을 알려준 것도 과학입니다.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 등의 성적 소수자를 정신병을 가졌거나 변태로 보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 것도 과학이 그 원인을 밝혀내준 덕분입니다.

과학기술을 옹호하다 보니 과학에 대한 찬사로 이어지게 됐는데 아시다시피 과학에 밝은 면만 있는 것은 아니죠. 잘못 사용된 예도 얼마든지 있구요. 하지만 과학은 가치판단의 대상이 아닙니다. 과학은 그 자체로 중립적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문제가 될 뿐이죠. 칼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고 사용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죠.

과학기술은 인간을 더 바쁘게 만들 수도 있고 더 여유롭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더 여유롭게 만들 수 있는 여지가 크지만 세상은 점점 복잡해질 뿐더러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쉽게 유토피아가 도래하긴 힘듭니다. 게다가 인간의 욕망은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현재에 안주하는 것에 만족한다면 발전은 일어날 수 없죠.

끝으로 복잡한 현대사회가 싫은 사람은 지금 당장 구석기 시대의 삶으로 돌아가라고 하면 돌아갈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구석기 시대까지는 너무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어느 시대가 적당하겠습니까? 어느 시대를 선택하건 왜 그때까지 발명된 기술문명은 괜찮고 그 이후의 기술은 안된다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답변은 내놓아야 하겠죠. 그리고 그 시점에서 대부분의 인간지식은 발전하지 않고 정체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동의도 있어야겠죠.

글이 많이 글어졌습니다. 과학이나 과학기술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접하게 되면 저도 모르게 뛰어드는 버릇이 있어서 장문의 글이 됐습니다. 아무쪼록 제 말이 잘 전달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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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브
09/01/30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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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진리탐구자
09/01/30 12:37
수정 아이콘
다른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지만, 맑스도 기술의 발달이 편리함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지요. 기계가 발달한다고 해서 고용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며, 외려 기계가 발달하면서 요구되는 노동량이 더 증가한다는 식이었지요. 현실을 둘러봐도, 러다이트 운동 당시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과학의 가치중립성이라는 것이 저는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1. 왜곡의 가능성
20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자위를 하면 눈이 먼다.', '흑인은 백인에 비해 열등하다.', '여성에게는 G스팟이라는 성감대가 존재한다.', '동성애는 정신병이다.'라는 견해가 과학적 연구에 의해 주장되었습니다. 물론 '저런 견해들은 과학의 미숙함 때문에 나온 것이며, 엄격한 연구를 거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어쨌든 과학에 항상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이상, 특정 견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된 연구를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일은 항상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과학적 '사실' 자체가 연구자가 담지하고 있는 당파적 '가치'에 의해 왜곡될 수 있습니다. (물론 당파성 그 자체가 항상 왜곡만 발생시키는 것은 아니며, 외려 당파적인 연구가 더 나은 견해를 도출해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좌파와 우파의 치열한 해석의 대결로 인해서 20세기사에 대한 풍부한 데이터와 다양한 관점들이 생산될 수 있었습니다.)

2. 선별의 문제
무엇을 볼지, 무엇을 연구할지, 무엇에 주목할지에도 가치 판단은 개입합니다. 세계대전과 냉전기를 거치면서 생물학은 필요에 의해 비약적으로 발달했고, 18세기 무렵부터 체제 정당화 도구로서 종교가 힘을 잃기 시작하자 대체물로서의 문학과 역사학에 대한 관심이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즉, 우리는 과학에 대해 '이것은 객관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과학의 관심사'가 되는 대상들을 선별하는 '시선'은 전혀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대상들은 사실 우리가 그것들이 과학적인 것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선택했기 때문에 과학적이라고 여겨지고 있을 뿐입니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과학적 사실'들은 사실 교과서 연구 위원이 그것이 과학적 사실로서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과학적 사실'로서 교과서에 실린 것일 뿐입니다. 한 마디로, 과학적 사실은 그 자체로 과학적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주목할만한 과학적 사실이라는 사람들의 평가 - 평가에는 항상 가치판단이 개입하죠 - 에 의해 과학적 사실이 됩니다.

3. 과학 그 자체의 구성의 당파성.
본문의 예를 가지고 간단히 말해보겠습니다. '총에는 잘못이 없다. 총을 사용하는 이가 잘못이다.' 이 말은 참입니다. 하지만, 좀 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은, '그렇다면 총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는가?"입니다. 총이 만들어진 목적이 사람을 포함하는 동물을 사살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미 가치중립성을 잃으며, 총을 만드는 과정에도 인간의 가치판단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절대 중립성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병사를 때려잡기 위해 미국의 군수공장에서 만들어진 총에 대해서는 더이상 '총은 중립적이고 사람이 문제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워지죠. 즉, 과학/기술은 이미 태생부터 가치판단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항상 당파적인 목적에 의해 구성된다.
09/01/30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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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이 수월해진 만큼 많은 여성이 일터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있으며, 여전히 부잣집 마나님들은 가정부를 두고 부리지 직접 집안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분명 전업주부에게는 이전과는 상상하지 못할 여유가 주어졌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애초에 전업주부를 위한 것이었을까요?
저는 직장 여성들을 위해 개발한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

결국 편리성과 효율성이라는 문제는 '인간 개인'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 혹은 '경제 효용'에 관한 문제 아닌가요?
똑같은 일을 8년 가까이 하고 있지만, 1시간에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늘은 것도 사실이고, 똑같은 시간 내에 마감해야 할 작업물은 늘었습니다.
(그렇다고 부가적으로 얻은 개인의 효용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읽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말씀 드린 거고요, 저도 과학 기술의 발달로 좋은 점은 충분히 많고 저도 그 이득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다 나쁘다고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다르게 생각해볼 문제도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면에 대한 의견 발제가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그걸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자'라고 받아들이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Eternity
09/01/30 13:17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칼도 쓰기나름이기에, 칼에만 눈을 흘기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지요.

하지만 어린아이가 칼을 들고 있다면, 혹은 살인청부업자가 칼을 들고 있다면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생뚱맞지만.. 저는 현대 인류의 과학기술이란 것이..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준 것은 아닐까, 혹은 칼로 사람을 죽여 본인의 욕구를 채우는 살인청부업자의 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핵폭탄처럼 과학기술을 엉뚱한데 이용하여 인류 자신을 찌른다거나, 혹은 권력이나 자본에 예속된 과학이 인류를 파멸로 이끌지도 모르지요. 현대 인류의 지성이 과연 현대 과학이라는 도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저는 그게 걱정스럽습니다. 과학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만들어낼 수는 없겠지만, 디스토피아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싶어요. 특히나 요즘의 생명과학기술의 발전을 보고 있으면 괜시리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추신. 설 연휴 티비에서 나왔던 이완 맥그리거의 '아일랜드'때문에 이런 댓글이 나오지 않았나 싶군요.
밑힌자
09/01/3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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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물론 '과학기술의 발달은 무가치하다'라는 것은 낭만주의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아래 글의 본질이 '과학기술은 과연 무엇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가?'를 이야기라는 것이라면 같은 방식으로 공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위에서 진리탐구자님께서 말씀해주신 것들도 중요한 의제이며, (얼마전 작고한)클라이튼 같은 대중소설가나 홉스봄 같은 지식인들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목적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꾸준히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사실 많은 이들에 의해 최근의 과학기술이 '물려받은 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 20세기의 급격한 과학기술의 발달이 대규모 자본 투자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2차대전 이후, 엔지니어들의 국적이 이 부를 따라 이동 - 주로 미국으로 - 하고 있다는 것 또한 이것과 연관지어 볼 수 있겠죠). 생각해 보면, 과학기술에 제기되고 있는 이런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에도 비슷하게 적용됩니다. 산업 발달은 분명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분명하고, 오늘날에는 마르크스의 예상을 낙후한 것으로 만드는 - 그는 현재의 초과된 생산량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 엄청난 잉여생산물을 만들어냈습니다. '생산물 부족으로 인한 기아'를 퇴치하는 데는 성공한 거죠. 그러나 오히려, 현대의 기아는 그 자본에 의해 발생하고 또한 의도적으로 유지됩니다(여기에 관해서는 장 지글러의 저작들이 참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사실 용어의 문제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마 이 문제에서 이야기되는 것은 '순수 과학연구'라기보다는 '엔지니어링' 쪽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요즘에는 그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지만요.
memeticist
09/01/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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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탐구자님// 논의가 옆으로 새는 것 같지만 반론을 하셨기 때문에 답변합니다.

1. 과학도 인간이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당연히 오류도 있고 유명한 필트다운인과 같은 의도적인 왜곡도 가끔씩 벌어집니다. 그렇지만 과학 자체는 특정 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어느 것이 옳다/그르다를 판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죠. 사람들이 과학적 발견을 끌어다 가치를 부여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발언을 하거나 특정 입장을 해명할 목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건 원래 과학이 의도한 결과는 아닙니다. 그리고 왜곡된 사실은 과학으로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왜곡된 사실은 차후에 검증을 통해 결국 버려지게 됩니다.

2. 선별의 문제와 같은 것을 두고 가치 판단을 말하신다면 저도 인정한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가치판단은 이런 종류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가치 판단을 통해 특정 과학이 선별되어 연구되었다고 해도 그 연구가 올바른 과학적 방법을 통해 사실을 밝혀내었다면 그 사실 자체는 가치 중립적입니다. 심지어 연구자가 부도덕한 기업의 의뢰를 받고 연구를 했다고 하더라도요. 이런 종류의 가치 판단마저 학문의 가치 판단성에 포함시키게 되면 그 어떤 학문도 여기서 벗어날 수는 없을겁니다. 심지어 가치 판단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순수과학인 수학마저 피해갈 수 없게 되죠. 어떤 수학자가 상금에 눈이 어두워 다른 수학활동은 내팽겨 둔 채 페르마의 정리에 수년간 매달린 끝에 증명을 해냈다고 '수학은 가치 판단적이다.' 또는 '그 증명은 가치 판단이 개입된 증명이다'라고 주장한다고 생각해보세요.

3. 필요에 의해 총을 발명해낸 의도 자체는 과학적 행동과 상관이 없습니다. 과학은 목적을 개입시키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니 이건 밑에 밑힌자님 말씀처럼 용어의 문제가 될 수 있겠군요. 저는 위에서 과학을 자연과학으로 한정지어 말한겁니다. 총을 만든 목적 같은 건 자연과학이 아니라 공학같은 응용과학에 해당될 것 같습니다. 용어의 범위를 명확히 하지 않은 것은 제 잘못입니다. 자연과학을 일반적으로 줄여서 과학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랬던 것 같네요.
!ArMada!
09/01/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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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의 문제에 관해서 말하면.. 과학보다 비과학이 왜곡 가능성이 몇배로 있죠.

과학이 없는 곳엔 사이비 과학이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그 왜곡의 퍠해는 말도 없이 크죠.

과학의 당파성이니, 오류가능성을 운운하기 앞서서,, 과학이 없는 곳의 당파성, 오류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학의 본질은 증거의 확실성 내지 신뢰도 이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비록 신뢰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하더라도...
서늘한바다
09/01/30 14:22
수정 아이콘
그냥 과학이 발달해서 시간을 아껴주는 부분도 있고 예전과는 다르게 더 많이 사용하는 부분도 있다...

이렇게 결론내면 안될까요?

가사일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노동의 강도라는 측면에서 보면 정말 말도 안되게 좋아졌죠.
그렇지만 그에 반해 정신의 긴장도라는 측면은 더 강해진거 같아요.
09/01/30 14:24
수정 아이콘
훌륭한 댓글들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말이지만...
저는, 과학 발전과 경제(돈), 그리고 정치는 떼어놓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과학자들이 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후원자들이 있기 때문이며,
그것은 또한 정치/경제적으로 이용 가치가 있을 때에만 이뤄지는 후원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에이즈 치료 기술이나 피임약, 비만 치료제, 소화제, 진통제... 등의 연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매달리고 있지만,
(별로 돈이 안되는)말라리아, 댕기열 등의 치료제나 예방제 등은 연구도 더디고, 생산도 많지 않다고 합니다.
2차 대전 당시 우생학 연구가 활발히 일어나서 의학과 유전공학 분야의 발전이 두드러지게 일어난 것도 정치적 요구 때문이었고요.
그 외에도, '돈이 안되서' 연구가 중단되고, 생산이 중단되는 분야들은 수도 없이 많은게 현실입니다.
"과학"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 할 수 있으나 "연구활동" 자체는 중립적이지 못하다는 말이지요.
memeticist
09/01/3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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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mis님// 가사노동을 줄인 대신 여성이 일터에 나가게 됐으니 달라진 건 없다고 말씀하시는 건가요? 여성이 일터로 나갈 수 있게 된 가장 큰 원인인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과 같은 건 무시하시는 것 같네요. 그리고 (믿기 힘들지만) 설령 직장 여성을 돕기 위해 가전기구가 만들어 졌다고 해도 모두가 그 혜택을 보고 있고 덕분에 전체적인 가사노동이 편해지고 줄어들었는데 그건 뭐라고 할까요.

그 아래 문단의 글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문제를 말하는 글이 아니라서 반론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구석기 시대로 돌아가자'라고 받아들였다고 느끼셨다면 제가 과했던 것 같네요. 평소에 이런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다른 버전으로 '인공적인 건 나쁘고 자연적인 것이 좋다'라는 주장을 하는)을 많이 봐와서 그것에 대한 생각을 이 글을 통해 털어놓은 것 같군요. 의견 발제 자체는 저도 공감합니다.
바나나 셜록셜
09/01/30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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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소리지만 공돌이들은 정말 위대해요. 그런 의미에서 추천
진리탐구자
09/01/30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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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eticist님//

1. 말씀하신 대로, 왜곡된 사실은 검증을 통해 버려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죠. 지구가 태양주위를 돈다는 것이 밝혀지기까지는 자그마치 2천 년이 걸렸습니다. 2만 년이 지나도 검증되지 못하고 과학적 사실인양 믿어지는 것 역시 충분히 존재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검증 그 자체도 잠정적으로 검증되었다는 것이지, 확증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물론 이것이 모든 검증은 무의미하다거나, 과학적 사실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현재 우리가 '과학'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대상들이 언제라도 잘못된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정당하게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의 권위라는 건 그렇게 확고부동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2. 당연히 '과학적 그 자체'야 중립적이겠지요. 페르마의 정리에 가치판단에 따른 논증이 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거야 '그 자체'의 이야기고, 현실에서 과학과 과학의 결과물은 연구자와 이용자들의 활동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과학 그 자체'야 목적도 없고, 가치판단도 개입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학 그 자체'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인간의 개입을 거치지 않은 과학은 자연적으로는 몰라도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도 인식하지 못하는 귀신과 다를 게 없죠. 결국, 인간의 개입을 통해서만 '과학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인간의 개입에는 항상 가치판단과 평가와 편견이 따른다고 할 때, '과학 그 자체는 순수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무의미한 진술입니다.

!ArMada!님// 물론 그러합니다. 다만, '과학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비과학으로 밝혀질 가능성'과 '비과학으로 여겨지는 것이 과학으로 밝혀질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구획짓는 작업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과학의 정의에 대해 보수적인 학자들의 경우에는 생물학이나 심리학을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반면 개방적인 학자들은 정신분석학까지 과학으로 인정하지요.

AhnGoon님// 동의합니다. 특정한 연구와 그것을 연구하는 연구자가 빛을 보게 만드는 것은 중립적이고 몰가치적이며 순수하고 객관적인 '연구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에서 가치판단에 의해 평가되는 '연구의 상업적 가치'라고 하는 것이 맞겠죠.
memeticist
09/01/30 15:31
수정 아이콘
진리탐구자님//

1. 과학의 가치 중립성에서 과학의 오류 가능성으로 주제가 옮겨간 것 같네요. 과학의 오류 가능성은 저도 잘 알고 있는 바이니 제가 반론할 거리는 없습니다. 참고로 천동설은 엄밀한 과학적 관찰을 통해 도출된 이론은 아닙니다. 관측장비의 부재, 종교적 교리, 고대인의 우주관 등이 결합된 작품으로서 사실 과학이라고 보기엔 어려웠죠. 이미 천동설이라는 결론을 내고 금성의 움직임을 설명하려고 굉장히 무리한 시도까지 했을 정도이니. 요즘 같이 엄밀한 과학이라면 그런 결론은 절대 내지 않고 설명을 보류할겁니다. 지식이 더 쌓이고 관측장비가 갖추어 지기까지 기다리고 나서야 과학적인 사실로 발표하겠죠. 물론 그래도 오류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이것이 가치 판단과는 관계가 없으니...

2. 과학적 발견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고 그 활동은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는 한 방법으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인간의 개입여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진리탐구자님에게 있어서 의미를 갖춘 가치 중립적인 것에 뭐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제 첫 댓글처럼 수학도 가치 판단적 학문이라고 말씀하실 건가요?
StarInTheNight
09/01/30 15:52
수정 아이콘
과학 기술의 미래 가치는 "인간", "환경", "우주"라고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가치가 인간 본연의 욕구에 의해 추구되기보다는 현대 사회의 산업적 가치 추구에 의해 생겨난다고 봅니다.
즉 기업은 소비자에게 새로운 소비 키워드로 인간과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이윤이 발생하는 구매력이 있는 키워드가 아니었다면 가치 추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과학 기술이 독립적이고 순수하다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합니다.
과학 기술자들은 자본에 지배를 받고 있고 그것이 당연한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과학자들, 더 나아가 인간들은 항상 양심적인 고민을 하죠.
이게 옳은 것인가? 이것이 내가 추구해야하는 것인가?
거대하고 무서운 사회 속에서 이런 고민이 의미없는 듯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 이런 담론 속에서 세상을 변화시킬 의미있는 결과를 얻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09/01/30 16:12
수정 아이콘
진리탐구자님//

1.안에 대해서만 언급하자면... 조금은 잘못 생각하시거나 모르시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구가 태양주위를 돈다와 같이 가설을 세운 뒤 그에 맞는 근거를 찾는 부분 역시 과학의 일부분임에는 틀림 없고, 그러한 부분의 경우 언제든지 틀릴 수 있고 다른 가설로 대체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과학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이 이와 같이 변할 수 있는 잠정적 사실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일반적인 역사의 시계와 과학 발전의 시계는 예전과 전혀 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전의 2000년간의 과학 발전이 최근의 20년보다 훨씬 적어질만큼 발전과 함께 그 속도가 가속되고 있기에 이전과 같은 잣대로 보는 것에 무리가 있고, 또한 많은 기기의 발전으로 이전의 간접적인 근거 확보가 아닌 직접적으로 우리의 감각을 통해서 과학 발전의 근거를 확인할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

따라서 현대의 과학에 있어서 모든 것을 확증할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은 잠정적인 검증이 아닌 확증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물론 현재도 과학으로 명확히 밝힐 수 있거나 알고 있는 것보다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것이 훨씬 많긴 하지만, 이전의 역사 속의 과학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습니다.


개인적으로 과학이 가치 중립적이라고 생각지 않고, 그 어떤 것도 가치중립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 과학이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을 다른 목적(정치적이던 경제적이던)으로 해석하는 자들(정치가나 인문 사회학자와 같은)이 왜곡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09/01/30 16:22
수정 아이콘
과학 기술은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생겨난 것이고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둘을 다르게 보는 것이 맞을것 같습니다. 그래서 과학기술은 당연히 자본에 의해 움직이게 되고 과학은 자본과는 동떨어지게 움직이기도 합니다.
고구마줄기무
09/01/30 18:57
수정 아이콘
남자가 여자에 비해 우월하다는 식의 이론은 남성연구자에 의해 주장되었고
백인종이 다른 인종에 비해 우월하다는 식의 이론은 백인연구자에 의해 주장되었고
이런걸 보면 과학은 인간이 인지나 해석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는 학문이겠지만
그걸 연구하는 과학자는 가치판단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한 인간이기에
과학도 순수하다고만 볼 수는 없는 듯 합니다.
진리탐구자
09/01/30 19:11
수정 아이콘
memeticist님// 애초에 저는 '인간 사회 내'에서는 정의상 가치 중립적인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memetictist님이 저에게 '가치중립적인 것이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라고 지적하셔봤자 저에게는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일관적으로 모든 실재는 당파적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학 그 자체', '자연과학 그 자체'야 가치중립적인 것이야 사실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개입을 논리적 차원에서 배제했을 때나 성립하는 이야기고, '과학 그 자체'가 인간 사회에서 다루어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합니다. 인간의 개입을 거치지 않은 채 '과학 그 자체'로 남아있는 대상은 '사회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과학적 사실'이 객관적이고 몰가치적이고 중립적이어봤자, 언제나 '과학 그 자체'를 대상으로 삼는 인간의 가치 판단과 결부된 상태로 현실에서 바련되는데 과학 그 자체의 가치 중립성을 주장해봤자 아무런 의의가 없습니다.

본문의 예를 다시 빌자면, '칼 그 자체' 객관적이고 몰가치적이고 중립적이고 순수해봤자 그걸 이용하는 건 언제나 인간이고, 인간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채로 '칼'이 발현되는 일은 없다고 한다면, '칼'의 가치중립성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간의 손에 사용되지 않는 칼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가치중립적일 밖에요. (과학을 칼로 치환한 것에 불과합니다.)
memeticist
09/01/30 21:06
수정 아이콘
진리탐구자님// 대상을 놓고 보는 논의의 층위가 서로 다른 것 같습니다. 인간이 다루기 때문에 가치 중립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가치 중립성에 대한 모든 논의 자체가 다 부질없게 돼버리죠. 이것은 인간 뿐만이 아니라 자유의지를 가지는 어떤 존재에게도 -심지어 신조차도- 가치 중립성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이런 사고실험은 어떨까요. 인간과 지성을 갖춘 외계인이 만나게 되었을 때 서로에게 통할 수 있는 가장 가치중립적인 언어로 뭐가 있을까요. 저는 과학과 수학말고는 그 어떤 것도 어렵다고 봅니다. 이런 것조차 무의미한 가치 중립성으로 치부해버린다면 이런 식의 생각은 그저 탁상공론에 불과한 것이 되겠죠.

과학의 기본적으로 '어떻게'를 밝히는 학문이기 때문에 가치중립적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왜'라는 것이 끼어들면 가치 판단이 개입되게 되지만 다른 학문과 달리 과학은 '왜'라는 질문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ArMada!
09/01/30 21:34
수정 아이콘
진리탐구자님/// 과학보다 비과학이 더 가치 중립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가치중립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밑힌자
09/01/30 23:15
수정 아이콘
음... 과학 기술(다시 말하지만, 아래쪽 글이나 이 글이나 모두 과학 '기술'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을 어떤 '순수한 영역'에 놓으시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것은 '기술'을 토대로 하는 어떤 분야에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기술'이든 그 자체로는 가치중립적이죠. 과학기술이든, 고고학 기술이든, 경제분석 기술이든 말이죠. 그러나 이것들이 외부로 나오는 순간 모든 의미가 달라집니다. 비로소 '가치'가 부여되기 시작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종종 '세상이 어떻던 간에, 너 자신은 너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만 하면 된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온갖 파쇼 정부나 공안 아래에서 활동해 왔던 개개인들에게 주입되었던 생각이기도 합니다. 목적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모든 노력은 반드시 정당하지만은 않습니다. 목적에 대해 고민하지 말고 무조건 너의 직책에 충실하라, 는 것은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박탈된 군인에게만 적용되는 말입니다. 우리는 기계처럼 - 객관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는? - 연구하기 이전에, 그 도덕성을 먼저 고려해야만 합니다. 도덕성이 없이, 스스로 가치중립적이라 믿던 과학 기술은 결국 핵폭탄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사실, 우리는 모든 기술을 처음부터 발견해내는 것이 아니며, 전대의 기술을 물려받아 순차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 마치 세습된 부의 가치를 후손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 파괴력에 대해 종종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전공학 발달이, 다국적 기업의 무제한적 농업 장악과 기아 유지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죠. 과학기술 발달로 인한 수많은 행복들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늘 이것의 '목적성'을 의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리탐구자
09/01/31 00:14
수정 아이콘
!ArMada!님//
1. 애초에 가치 중립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으므로 저에게는 무의미한 질문입니다.

2. 가치 중립이면 가치 중립이고 가치 편향적이면 가치편향적인 것이지, 덜 가치중립적이라거나 더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은 무의미합니다. 가령 99%만큼 중립적이라는 말은 형용 모순입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비과학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은 비과학과 달리 '내적 일관성'과 '설명적 타당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일상용어로 풀자면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는 거죠. 이것은 가치 중립성과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오히려 당파적이어야합니다.) 다시 말해 과학이 비과학보다 우월한 이유는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설득력 있는 준거점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소요유
09/01/31 02:30
수정 아이콘
1970년대에 사람들은 종이를 만들려고 베는 나무가 아까운 나머지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
통신접속장비와 통신네트워크를 만들어
전사문서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옆에 프린터를 설치해놓고
매일 이면지를 생산한다


한 삼년 전에 쓴 일기인데..갑자기 생각이 났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회의적인 시각으로는 저런 생각밖에 못하겠다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전 '과학기술은 사람을 바쁘게 하지만 그만큼 뭔가를 더 생산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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