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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11/02 16:00:59
Name 강력세제 희드라
Subject [일반] 폴란드 여행기 3일차 - 그단스크, 토룬, 비드고슈치 (data & scroll 주의) (수정됨)
그단스크에서 두번째 날이 밝았습니다. 원래 이날 계획은 그단스크 중앙역에서 11시 18분 기차를 타고 토룬으로 가서 저녁까지 보내다가 비드고슈치의 숙소로 가는 것이었고, 호텔 조식을 일찌감치 먹고 기차 시간이 될 때까지 인파가 드문 이른 아침의 그단스크 올드타운을 여유롭게 다시 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날  말보르크성 + 그단스크 올드타운 36,000보의 여파로 아내에게는 보다 많은 휴식 시간이 절실했던 상황. 그단스크 올드타운 재방문은 포기하고 조식 먹고 객실에서 푹 쉬다가 바로 호텔 앞 그단스크 브제슈치 역에서 토룬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조식을 먹은 다음 호텔에서 좀 더 휴식을 취하겠다는 아내를 홀로 두고 혼자 밖으로 나왔습니다.  일단 그단스크 브제슈치 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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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단스크 브제슈치(Gdańsk Wrzeszcz)역과 그 뒤에 보이는 메트로폴리아(Metropolia) 쇼핑센터. 지하보도를 통해 쇼핑센터 쪽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단스크 브제슈치는 "양철북"으로 유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 ~ 2015)가 태어난 곳입니다. 가까운 곳에 그의 기념상과 생가가 있다고 해서 들려보려고 했습니다.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1927 ~ 2015) (사진출처 교보문고 홈페이지)

귄터 그라스의 출생 시점인 전간기에 그단스크는 독일과 폴란드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단치히 자유시라는 독특한 독립도시국가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민의 대부분은 독일계였고, 대부분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귄터 그라스 역시도 이곳 출신임에도 폴란드가 아닌 독일 출신 작가로 간주됩니다. 그단스크가 프로이센과 독일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단치히 시절, 이 도시에서 태어난 여러 역사적 인물들 모두 독일 출신 위인들로 분류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칸트의 후계자로 일컬어지는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그단스크 성모승천대성당 바로 인근에서 태어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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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제슈치의 중심거리인 렐레벨라(Lelewela) 거리입니다. 브제슈치 지역은 그단스크 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구역이며 상대적으로 부촌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단스크 공과대학이 이곳에 있으며, 위의 메트로폴리아를 비롯한 대형 쇼핑센터가 여럿 자리잡고 있는 그단스크의 대표적 주거 지역입니다.

브제슈치 주택가 초입에 있는 "유제프 비비츠키 장군 공원"(plac Generała Józefa Wybickiego) 20세기 초반 활동했던 폴란드의 정치가이자 군인의 이름을 딴 이 공원에 귄터 그라스의 기념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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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스의 작은 벤치"(Ławeczka Grassa). 귄터 그라스가 자신이 창조한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와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는 정겨운 모습의 기념상입니다. 원래는 벤치 한쪽에 오스카만 앉아있는 형태였는데, 2015년 귄터 그라스가 사망한 이후 다른 한쪽에 작가의 동상도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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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상 앞에는 "귄터 그라스 분수"(Fontanna Guntera Grassa)가 가운데 춤추는 소녀 조각상을 향해  이른 아침부터 물줄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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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서 한 150미터 떨어진 곳에 귄터 그라스의 생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입구의 작은 명패 하나만이 이 곳이 위대한 작가가 태어난 곳임을 알려주는 유일한 단서입니다.

귄터 그라스는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17세 때 나치 SS무장친위대(Waffen-SS)에 가입하여 복무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바 있습니다. 비록 그가 2차대전 이후 나치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폴란드인들은 나치 친위대 출신의 이름을 딴 지명이 폴란드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거부감을 느끼고 이를 다른 이름으로 바꾸자는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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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귄터 그라스 로터리"(Rondo im. Güntera Grassa)인 작은 로터리를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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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 건축된 고풍스런 주택들이 2010년대의 대대적 재정비 작업을 통해 산뜻하게 새단장된 지역인 바위델로티(Wajdeloty) 거리를 따라 걷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11시 11분, 그단스크 브제슈치 역을 출발하는 IC열차를 타고 토룬으로 향했습니다. 분명 열차의 진행 방향으로 자리를 예약했었는데, 타고 보니 진행 방향의 역방향 의자로 배정되었더군요. 객차 내에서 무료 와이파이에 로그인할 수 있고, 좌석 가운데 220볼트 콘센트가 있어서 휴대폰이나 보조 배터리를 무리 없이 충전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최고급 고속철인 EIP와 달리 무료 생수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습니다. 그단스크 브제슈치에서 토룬 중앙역까지 IC 일반석 요금은 1인 59즈워티.(대략22,09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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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 36분 토룬 중앙역(Toruń Główny)에 도착했습니다. 토룬(Torun)은 인구 20만이 살짝 안되는 중소 규모 도시로 인구 기준으로 폴란드에서 15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다음 목적지인 비드고슈치(Bydgoszcz)와 함께 쿠야프스코-포모르스키에(kujawsko-pomorskie)주의 주도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주의 행정부는 비드고슈치에있고, 주 의회는 토론에 있다고 합니다.

밤에 비드고슈치로 가기 위해서 다시 이 역으로 돌아와야하기에, 역사 안에 있는 코인락커에 트렁크를 보관해놓고 빈손으로 가볍게 토룬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대형 락커 하나에 작은 트렁크 2개를 우겨 넣었습니다. 24시간 보관비용은 30즈워티.(대략 11,400원)

역 광장을 지나 숲속으로 난 길을 한 500미터 정도 걸어들어가면 토룬의 구시가지 앞을 유유히 흐르는 비스와(Wisła)강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곳에는 강너머 토룬 구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작은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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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촬영한 토룬의 구시가지. 왼쪽 1/3지점의 큰 벽돌건물이 토룬대성당(Katedra św. Jana Chrzciciela i Jana Ewangelisty)이고, 그 왼쪽 뾰족탑은 성령(Ducha Świętego) 성당. 오른쪽에 튀어오른 붉은 지붕 탑은 성 야쿠바(św. Jakuba)성당, 그 바로 옆의 뾰족탑은 성 카타르치니(św. Katarzyny)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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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대성당을 중심으로 살짝 줌을 당겨서 한 컷... 강물 표면이 잔잔했더라면 거울처럼 대칭되는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인데, 바람이 영 협조를 해주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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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역 광장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야합니다. 광장으로 향하는 길에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마주치기 힘든 마티즈 한 대가 서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한 컷...

토룬은 폴란드의 도시들 중에서 운좋게 2차대전의 화마를 피할 수 있었던 극소수의 도시들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중세 도시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라고 할 수 있으며, 이점을 높이 사서 구시가지 전체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습니다.

토룬이 유럽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앞서 말보르크성을 세운 주인공들인 튜튼기사단에 의해서였습니다. 1230년대 초반 프루스인들을 정복하기 위해 이 지역에 진출했던 튜튼기사단이 군사적인 목적에 더하여 가톨릭 전도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비스와 강변에 건축했던 성채가 토룬의 본격적인 시작이었습니다. 토룬은 비스와 강 수운의 요충지라는 지정학적 잇점을 통해서 무역 중심지로 점차 성장하였고, 13세기 후반에는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독일어 Die Hanse)에 가입하면서 발트해와 동유럽 내륙을 연결하는 교역의 중심지로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버스를 타고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원수 다리(Most im. Marszałka Józefa Piłsudskiego)를 건너서 토룬 구시가지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참고로 유제프 클레멘스 피우수트스키(1867~1935)는 1차대전 직후에 독립을 맞이한 폴란드 제2공화국의 수반이었으며, 이어지는 소련과의 전쟁에서 이 나라를 지켜내었던 장본인이기도 했던 이 도시가 배출한 위인 중 한명입니다.

이 도시가 배출한 가장 걸출한 인물로는 단연 지동설을 주장했던 천문학자 겸 성직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를 꼽을 수 있습니다.

구시가지 입구 공원에는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임을 말해주듯 그의 지동설을 상징하는 기념물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헬리오스기념비(Pomnik Helios)는 태양과 그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 그리고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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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오스 기념비. 뒷편 건물은 토룬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대학(Uniwersytet Mikołaja Kopernika w Toruniu)의 부속 건물 중 하나인 콜레기움 막시뭄(Collegium Maximum)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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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로 들어와서 왼쪽으로 꺽으면 지방법원(Sąd Okręgowy, 왼쪽)과 구치소(오른쪽 원통형 건물)가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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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방법원 건물 맞은편에는 14세기에 완성된 이 도시의 대표 종교건축물 중 하나인 성모승천 성당(Kościół Wniebowzięcia Najświętszej Marii Panny)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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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회랑(nave)에서 중앙제단 쪽으로 바라본 성모승천 성당의 내부. 천정 볼트의 꽃무늬 장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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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서 본 중앙제단. 1731년에 제작된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제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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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승천대성당 북쪽 벽면 상단에 설치된 대오르간입니다. 성모승천성당 내부에 들어서니 오르간연주자가 다음날 미사에서 연주할 음악을 열심히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높은 천정의 고딕성당 내부를 가득 메우는 오르간의 장중한 울림과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화려함이 멋진 조화를 이루며 종교적 숭엄함을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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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승천성당의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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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부벽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 중 하나. 14세기 중반에 그려진 중요한 고딕회화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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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의 고향답게 토룬 구시가지에는 천문관(Planetarium, 가운데 둥근 건물)을 통해서 천문에 관한 다양한 시각적 경험을 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입장료는 대략 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은 좀전에 다녀왔던 성모승천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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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의 유명한 진저브레드(Piernik)가게인 "옛 토룬 생강빵집" (Piernikarnia Staroturnska). 창문에 앉아있는 인형 한쌍이 앙증맞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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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저브레드는 토룬의 유명한 특산물로, 구시가지 곳곳에 진저브레드를 파는 가게들이 즐비합니다. 이 도시의 상징이라고 하니 조금 사보긴 했는데, 빵이라기 보다는 꾸덕한 느낌의 쿠키에 보다 가까운 미감이었습니다. (1개 1,700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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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 구시가지의 남북을 관통하는 헤우민스카(Chełmińska)거리. 거리의 이름은 토룬 북쪽의 또다른 교역 도시인 헤움노(Chełmno)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저 멀리 토룬대성당의 모습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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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우민스카 거리를 따라 토룬 옛 도심광장(Rynek Staromiejski w Toruniu) 쪽으로 내려오다보면, 주인의 모자를 입에 물고 있는 귀여운 강아지 동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강아지는 폴란드의 유명한 만화 캐릭터인 필루시(Filuś)라고 합니다. 강아지 오른쪽 귀를 만지면 지혜를 얻고, 강아지 꼬리를 만지면 사랑을 얻고, 우산 손잡이를 만지면 재물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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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 구시가지 광장(Rynek Staromiejski w Toruniu)에서 바라본 성모승천성당의 동쪽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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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 구시가지 광장 주위에는 이 도시의 황금기에 건축되었던 고딕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들이 다수 모여있습니다. 왼쪽 거물은 과거 시청사로 사용되었던 토룬 지역 박물관.(Muzeum Okręgowe w Toruniu) 중앙 건물은 도시 상류층의 사교장이었던 아르투스 코트(Dwór Artusa)로 건물 자체는 19세기 후반에 재건축된 것이지만 외양은 중세시대 세워졌던 오리지널 건축물을 충실히 고증했다고 합니다. 내부가 굉장히 화려하다는데, 한달에 한번 정도만 일반인들에게 공개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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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건물 서쪽에는 토룬의 옛 전설과 관련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뗏목꾼(Flisak)의 청동상이 서있습니다. 오래전 어느날 수많은 개구리들이 토룬을 덮쳐서 시민들은 큰 곤욕을 치뤘다고 합니다. 시장은 개구리를 퇴치하는 사람에게 큰 상을 약속했습니다. 이때 이보(Iwo)라는 젊은 뗏목꾼이 나타나 바이올린을 연주하니 수많은 개구리들이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이보는 그 개구리들을 비스와 강변의 늪지로 유인하여 도시를 구하고 시장의 딸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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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내용을 상징하듯 뗏목꾼 기념상을 둘러싼 분수의 네 모서리에는 개구리들이 물줄기를 내뿜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하도 어루만져서 다들 표면이 맨질맨질한 상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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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 박물관의 서쪽 맞은 편에는 성령성당(Kościół Ducha Świętego)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756년에 건축된 건물로 애초에는 개신교예배당으로 사용되었으나, 2차대전 이후 독일인들이 모두 추방되면서 예수회 소속의 가톨릭성당으로 바뀌었습니다. 고딕 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들이 포진한 구시가지 광장에서 홀로 바로크양식으로 건축된 건물이어서 보다 눈에 잘 들어오는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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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시계탑을 자랑하는 지역 박물관(구 시청사) 건물은 1390년대에 건축된 역사적 유물입니다. 1703년 스웨덴과의 전쟁 중에 크게 파괴되었으나 18세기 후반 오리지널 고딕양식에 당대 바로크 스타일을 가미하여 재건축되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 남동쪽 모서리에는 이 도시가 배출한 위대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의 동상이 서있습니다. 잘 알려진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라는 이름은 라틴식 이름이며, 폴란드식으로는 미코와이 코페르니크(Mikołaj Kopernik)입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토룬이 튜튼기사단으로부터 폴란드왕국으로 귀속된 직후인 1473년에 이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서 크라쿠프 대학으로 유학했는데, 그곳에서 천문학에 관심을 갖게되었다고 합니다. 지동설을 담은 그의 저서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는 1530년 즈음 집필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당시만해도 이단에 대해 서슬 퍼렇던 시점이었기에 바로 출간하지 못한채로 묵혀두었다가 말년에 이르러서야 소심하게 제자의 이름을 빌려서 출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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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 구시가지광장 남쪽으로는 이 도시의 가장 북적이는 번화가인 셰로카(Ulica Szeroka) 거리로 이어집니다. 셰로카라는 거리 이름 자체가 폴란드어로 '넓은'이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토룬의 '큰 길'. 셰로카 거리에서 뒤돌아본 지역박물관과 성령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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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 기념상 맞은 편에는 토룬의 또다른 상징적인 포토스팟으로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스페인 당나귀(Osiołek Toruński) 조각상이 서있습니다. 관광객들은 이 당나귀 등에 올라타서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곤 하지만, 사실 이 당나귀의 정체는 끔찍한 고문기구였습니다. 등을 살펴보면 얇은 철판 같은 구조물을 볼 수 있는데, 죄인으로 의심받는 사람들은 이 철판 위에 올라타서 당나귀가 움직일 때마다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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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앞에서 우회전하면 토룬대성당의 거대한 위용이 눈에 들어옵니다. 성당의 정식 명칭은 복음사가 요한 바실리카 대성당(Bazylika katedralna św. Jana Chrzciciela i św. Jana Ewangelisty)입니다. 1270년 무렵 건축이 시작되어 15세기 말에 완성된 성당으로, 이른바 발트해 인근 벽돌-고딕양식(Briock Gothic Style)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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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대성당의 중앙회랑(nave)에서 바라본 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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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대성당의 드높은 기둥과 아름다운 꽃무늬로 장식된 볼트(Vaulot). 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 높이는 28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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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대성당의 한쪽 벽에는 마치 낙서를 연상케 하는 독특한 벽화가 눈길을 끕니다. 이토록 장엄한 건축물 내부에 이런 유아스런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 정말 궁금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니 어렵사리 이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벽화는 14세기 후반이나 15세기 전반에 그려졌다고 하는데, 역병이나 죽음을 상징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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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대성당을 나와서 코페르니쿠스 거리를 따라 서쪽으로 50미터 정도 걸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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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코페르니쿠스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코페르니쿠스의 생가 추정 건물이 위치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이 집에서 태어났다는 직관적인 증거는 없지만, 그가 태어난 시점에 코페르니쿠스 가문이 이 건물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생가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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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토룬을 둘러싸고 있던 벽돌 성벽은 현재 남쪽면만 온전하게 남은 상태입니다. 남쪽 성벽의 서쪽 끝에 위치한 감시탑 하나(윗 사진 왼쪽 1/3 지점)는 지반이 침하되면서 약 5도 정도 길울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토룬의 사탑'(Krzywa Wieża w Toruniu)이라고 부릅니다. 규모 면에서 피사의 사탑에 비할바가 못 되지만, 기울어진 정도는 피사의 사탑(약3.9도)보다도 더 심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중세 이후 기울어짐이 멈추어서 현재는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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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옆 골목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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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에 건축된 수도원문(Brama Klasztorna)을 통해 비스와 강변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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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문 앞에서 바라보는 비스와 강의 잔잔한 물결. 오른쪽의 다리가 앞서 버스를 타고 건너왔던 피우수트스키 원수 다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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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이 도시 부유층들의 주거지였다는 목욕탕 거리(Ulica Łazienna)를 통해 다시 구시가지 안쪽으로 들어옵니다. 현재는 다양한 식당들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는 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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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거리에서 셰로카 거리로 우회전해서 조금 걸어가면 토룬의 만남의 광장 역할을 하는 작은 시계탑(Zegar)을 만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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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 가기 직전 오른쪽 골목 길바닥에 도자기로 만들어진 작은 용의 조각(Smok Toruński)이 있습니다. 길바닥 한쪽에 아무렇게나 위치해 있어서 굳이 애써 찾지 않으면 그냥 놓치기 십상인 조각상인데, 나름 이 도시의 기이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기념물입니다. 1746년에 토룬의 두 시민이 실제 2미터 가까운 크기의 용이 날아가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와 관련해서 2008년에 제작된 용이 바로 이 녀석입니다. 기대를 하고 찾아갔다가는 백발백중 실망하게 되는 초라한 자태지만, 나름 동전을 던져서 행운을 비는 이 도시의 명소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배가 출출해져오기에 늦은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나름 이 도시의 맛집 중 하나라는 수제버거집을 선택했습니다. 가게 이름은 Crazy Beef Tor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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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 2개에 콜라 2잔 더해서 우리돈으로 대략 3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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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zy Beef Torun 내부 인테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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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탑에서 Crazy Beef Torun으로 가던 도중에 만난 조각상. Pomnik Piernikarki Toruńskiej(우리말로 굳이 번역하자면 토룬의 진저브레드 파는 여인 기념상) 이 도시의 명물이 진저브레드(폴란드어로는 Pierniki)임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매력적인 조각상입니다. 많은 관광객들의 사진 배경으로 인기가 많았는데, 개중에는 특정 신체부위에 부적절한 터치를 범하는 늙수구레한 아저씨들의 볼썽사나운 모습들도...

식사를 마치고 신시가지 광장(Rynek Nowomiejski)으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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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 구시가지는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됩니다. 왼쪽이 지역박물관, 토룬 대성당, 코페르니쿠스의 집 등등이 자리잡고 있는  Staromiejski(Old Town), 오른쪽이 지금 이동하는 Nowomiejski(New Town)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 도시의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튜튼기사단의 성채가 폐허 상태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시가지는 튜튼기사단이 세운 옛 토룬 성채의 동쪽에 새롭게 조성된 구역입니다. 신시가지라고 하지만 이 일대가 조성된 시기 역시 무려 12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곳에는 주로 튜튼기사단을 따라서 독일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정착했다고 하며, 2차대전 이후 이곳에서 추방될 때까지 독일계 커뮤너티의 중심이 되었던 지역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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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중앙을 차지하는 건물은 1824년에 건축된 성삼위일체 교회(Dawny kościół Świętej Trójcy). 이 일대에 세워진 독일계 프로테스탄트 공동체를 위해 건축된 개신교회였으며, 2차대전 이후 독일인들이 추방된 이후 잠시 가톨릭성당으로도 사용되었지만, 현재는 문화센터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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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삼위일체 교회 건물 앞 벤치에는 이 신시가지 광장일대가 도시의 전통 시장으로 역할했음을 알려주는 기념상 하나가 앉아있습니다. Toruńska Przekupka(번역하자면 토룬의 장터 아낙네) 한쪽에는 거위 한 마리를 옆구리에 끼고, 다른 한손에는 거위알로 가득한 바구니를 들고 손님을 부르고 있는 중년 아낙네의 모습입니다. 바구니에서 거위알 하나가 굴러떨어지려고 하네요.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이 알만 색깔이 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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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가지 광장의 남동쪽 모서리에는 이 일대 가톨릭 교구의 중심성당인 유서깊은 성 야쿠바성당(Kościół św. Jakuba) 자리잡고 있습니다. 튜튼기사단의 후원으로 1309년에 건축이 시작된 이 성당은 토룬을 대표하는 고딕 건축의 정수로 손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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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쿠바 성당의 내부. 벽면과 기둥에는 14세기 중반에 그려진 고딕 벽화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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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야쿠바 성당의 화려한 제단. 이 성당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모종의 단체가 모임을 끝내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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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당의 오르간은 폴란드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유서 깊은 오르간이라고 합니다. 천정에 그려진 악마의 우스꽝스런 얼굴이 재미있습니다.

튜튼기사단이 쌓았던 성채의 폐허(Ruiny zamku krzyżackiego w Toruniu)를 찾아보기 위해 신시가지 광장에서 비스와 강변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튜튼기사단은 1236년 무렵부터 비스와강 강변에 요새를 건축하였는데, 이후 이 요새를 중심으로 토룬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형성되었습니다. 튜튼기사단은 1410년 그룬발트전투에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에게 괴멸당하면서 일시적으로 이 도시로부터 철수하게 되나, 이듬해 토룬 평화조약을 통해 다시금 이 도시는 튜튼기사단의 차지가 됩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이 일대에서 튜튼기사단의 세력은 점차 역화되었고, 결국 토룬은 1454년부터 폴란드왕국의 영역에 포함되게 됩니다. 이후 어떤 세력이라도 이 요새를 다시금 군사기지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15세기부터 16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토룬 시민들에 의해 이 성은 철저하게 파괴되이 지금의 폐허 상태로 후대에 전해져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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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튼기사단 성채 중에서 파괴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는 몇 안되는 구조물 중 하나인 그다니스코(Gdanisko). 이 탑 모양의 건축물은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변소 탑' 정도가 될 터인데, 성채 외부로돌출되어 건축된 이 탑은 말 그대로 성채 거주민들의 배설물이 주위의 해자(지금은 화면에 보이는 길로 바뀐) 쪽으로 떨어지게끔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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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튼기사단 성채의 남쪽 벽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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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튼 기사단 성채 앞에서 바라본 비스와 강. 왼쪽에 보이는 다리는 철도교인 말리노프스키 철교(Most kolejowy im. Ernesta Malinowskiego w Toruniu). 1870년에 건축이 시작되어 1873년에 완공된 그 자체로 역사적 기념물인 다리입니다. 1945년 독일군이 퇴각하면서 이 다리의 일부를 파괴했으나, 1948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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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튼기사단 성채의 남은 흔적들. 성채 폐허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20즈워티(7,750원 정도)의 입장료를 지불해야하는데, 개장시간(9시~18시)이 훨씬 지난 19시 30분 쯤 도착하는 바람에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냥 밖에서 사진 몇장만 찍고 철수... 오른쪽에 튜튼기사단의 형상으로 깎아낸 나무 조각상이 이 폐허의 옛 주인이 누구였음을 말해줍니다. 왼쪽 저 멀리에는 성 카타르치니 성당의 뾰족탑과 성 야쿠바 성당의 붉은 벽돌탑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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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사진에 보이는 격자 철문 사이로 휴대폰을 디밀어 넣고 찍은 폐허 내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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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튼기사단 성채 폐허 바로 서쪽에는 '성 예르제고 형제회의 집'(Dwór Bractwa św. Jerzego)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484년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이 집은 한때 무역도시로 번성했던 토룬을 이끌던 부유한 상인들의 친목단체인 성 에르제고 형제회의 모임처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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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있는 3개의 토룬 구시가지 성문 중 하나인 '모스토바 문'(Brama Mostowa)을 통해 비스와 강변으로 나오니 많은 시민 & 관광객들이 여름 저녁 햇살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이 다리 앞에 비스와 강을 가로지르는 목제 다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1877년 화재로 소실된 이후 현재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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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토바 문'에서 좀 더 서쪽으로 걸어가면 재밌는 모양의 시계처럼 생긴 구조물을 만나게 됩니다. 시계는 아니고 비스와 강의 수위를 측정하는 일종의 관측소라고 합니다. 정식 명칭은 Stacja Pomiaru Poziomu Wód - Limnigraf. 1899년에 만들어졌으며, 현재까지도 기능을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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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문', '모스토바 문'과 함께 현존 3개의 성문 중 나머지 하나인 '선원들의 문'(Brama Żeglarska)을 통해 다시 구시가지 내부로 들어갑니다. 성문의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문 앞에 과거 선착장이 존재했다고 합니다. 지금도 유람선을 탈 수 있는 작은 선착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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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지 골목에서 만난 피아트 자동차의 앙징맞은 모습이 눈에 띄어 한장 찰칵...

토룬의 야경이 워낙에 멋지다고 해서 일부러 느즈막히 21시에 출발하는 비드고슈치행 기차를 예매했는데, 20시가 넘도록 어두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야경은 포기하고 토룬 중앙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구시가지를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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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담은 토룬 구시가지의 모습. 성령 성당(좌)과 지역 박물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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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 중앙역에 도착해서 코인 락커 속의 트렁크들을 찾은 다음, 플랫폼에서 비드고슈치행 기차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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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룬 중앙역에서 21시 1분에 출발하는 비드고슈치 행 IC열차. 일반실 요금은 1인 14즈워티 (대략 5,300원). 9시 가까이 되니 그제서야 날이 좀 어두워졌네요.

토룬에서 비드고슈치까지는 대략 45킬로미터의 거리. 약 30분 뒤인 21시 34분 비드고슈치 역에 도착했습니다.

비드고슈치(Bydgoszcz)는 토룬과 함께 쿠야프스코-포모르스키에(kujawsko-pomorskie)주의 주도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도시로, 주정부 청사가 이 도시에 있습니다. 인구는 대략 34만명 정도로 폴란드에서 인구기준으로 9위 정도에 해당하는 중급 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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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스타일로 2015년에 건축된 비드고슈치 중앙역의 신역사. 역사 앞의 정거장에서 트램을 타고 숙소인 '호텔 메르큐르 비드고슈치 세피아'(Hotel Mercure Bydgoszcz Sepia)를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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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드고슈치의 역사적 중심가인 '포하 원수 거리'(Ulica Marszałka Focha)에서 하차하여 호텔로 향했습니다. 거리의 이름은 나폴레옹 전쟁기 동안 폴란드의 독립을 도와주었던 프랑스 육군 원수 페르디낭 포슈(Ferdinand Foch)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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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메르큐르 비드고슈치 세피아의 프론트 인테리어. 유럽의 유명 호텔 체인인 호텔 메르큐르의 하나로 4성급 호텔입니다. 더블베드 일반실 1박 요금은 조식 미포함 115,000원 정도. 이 호텔은 비드고슈치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는 이점과 더불어 옥상의 루프탑에서 도시 경관을 여유있게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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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루프탑에서 바라본 비드고슈치 미코와야 대성당(Katedra pw. św. Marcina i Mikołaja)의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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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루프탑에서 바라본 구시가지 광장 방향 야경. 19/20세기 전환기에 건축된 아파트먼트 건물인 '오토 페퍼코른 공동주택'(Kamienica Ottona Pfefferkorna)(좌), 아동용 가방 두개를 합쳐놓은 듯한 'm 뱅크' 건물(가운데), 그리고 오른쪽 높은 첨탑은 '성 안드레야 보볼리 성당'(Kościół pw. św. Andrzeja Boboli).

22시 30분의 늦은 시간이었지만, 맥주랑 간단한 간식거리라도 사려고 홀로 호텔 밖으로 나왔습니다.
Zabka(폴란드를 대표하는 24시간 영업 편의점 브랜드)도 찾아볼 겸 19세기 후반 아르누보 스타일로 건축된 아파트먼트 건물들이 집중되어있다는 '자유광장'(plac Wolności)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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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광장으로 향하는 도중에 만난 '방랑자' 기념상(Pomnik Wędrowca).

자유광장에 도착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광장 일대 전체가 공사판이었습니다. 길바닥은 다 헤집어져 있었고, 광장 여기저기에 출입을 통제하는 차단벽들로 영 시야가 어지러웠습니다. 원래 내일 날 밝으면 다시 와볼 생각이었지만, 굳이 이 아수라장을 다시 찾을 이유가 없을 것 같아 깨끗하게 포기. 그냥 야경 사진 몇 장만 찍었습니다만, 공사판을 피해서 앵글을 만들기가 쉽지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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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광장 일대의 아파트먼트 건물들 중에서 가장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인 '에른스트 볼프 아파트먼트'(Kamienica Ernsta Wolffa). 1896년에 착공되어 2년 뒤에 완성된 건물로 과거 이 도시의 영광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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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드고슈치의 영광을 상징하는 또 다른 건축물 중 하나인 '호텔 포드 오를렘'(Hotel Pod Orłem) 번역하자면 '독수리 아래' 호텔. 그 이름 그대로 옥상의 거대한 독수리 조각이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도 영업 중인 호텔인데, 원래 여길 예약하려고 했으나 객실에 에어컨이 없다고 해서 단념했습니다. 근데 폴란드가 워낙에 여름에도 시원한 편이라(체류했던 11일 동안 가장 더웠던 날의 최고 기온이 27도 정도) 에어컨 없이도 견딜만 했을 것 같았습니다.

이 도시의 가장 상징적인 야경을 눈에 담기 위하여 '술리마-카민스키 다리'(Most Jerzego Sulimy-Kamińskiego) 쪽으로 향했습니다. 이 도시 출신 작가의 이름을 붙인 이 다리는 브르다(Brda) 강을 가로질러서 구시가지 광장 쪽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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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비드고슈치 대성당의 야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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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의 동쪽으로는 비드고슈치 사인과 함께 이 도시의 상징적 랜드마크인 '옛 곡물창고'(Spichrze nad Brdą) 세 동, 그리고 강을 가로지르는 줄타는 사람의 조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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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는 사람"(Przechodzący przez rzekę)이라는 이름의 이 조각상은 실제 줄타는 곡예사처럼 브르다 강을 가로지르는 철선 위에 안정된 자세로 균형을 잡고있는데, 2004년 5월 폴란드의 유럽연합 가입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 조각상은 이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비드고슈치 야경을 대충 눈에 담은 다음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했습니다. 비드고슈치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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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1/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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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이탈리아만 딱 한 번 가봤는데, 폴란드도 가보고 싶어지네요~ 잘 봤습니다.
25/11/02 21:38
수정 아이콘
부지런히 다니시는게 대단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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