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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3 16:49
어떤 강렬한 에너지로 인해 악인 혹은 영웅이 만들어진다는 내용은 흥미롭고, 일견 수긍도 됩니다.
다만 강렬한 에너지가 꼭 어떤 집단과 집단 사이에 끼인 중간자에게만 찾아올까 싶기는 합니다. 아주 사소한.. 뭐 하나의 인간관계, 하나의 사건 등이 어떤 사람한테는 악인 혹은 영웅이 되는 에너지로 작용할 수도..
25/07/03 17:44
자수성가한 사람이 오히려 하층민들을 무시하거나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해 버리는 등의 현상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군요.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영웅담에는 꼭 특별한 출생과정, 고난과 역경이 들어가는 이유도 설명이 될 수 있겠고요.
25/07/03 18:36
네, 말씀하신 것은 흔히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흔하니 평범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저 무시하는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해친다면, 악인이라 할 수 있겠죠.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과 인간에게서, 영웅이 탄생하니, 출생부터 곧바로 중간자라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이런 구조라면, 영웅은 중간자로서, 인간들로부터 질투를 받고, 신들로부터 무시를 받아야 할텐데, 질투의 여신 헤라로부터 고난을 당하는 걸로 바뀌어 있는게 특이한 점 같고요.
25/07/03 18:28
좋은 가설인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한 생각입니다 해당 가설을 로 검증할만한 수단은 뭐가있을까요 입증이 되면 더 좋을것 같아요
25/07/03 18:58
주장이 정확하고 엄밀한게 아니니, 확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생각해요. 개연성을 높이는 방법은 있겠고, 사례를 들어볼 수 있겠죠.
중간자로서 사례라 하면, '서자'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픽션이지만, 홍길동도 중간자죠. 그리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위인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서자인 걸로 알아요. '아버지 피에로 다 빈치는 법률가들을 배출한 지주 가문 출신으로 직업은 공증인이었고 어머니 카타리나는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다. 이들 사이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사생아로 태어났다. 당시 부친의 나이 23살로 결혼 전이었으나 모친은 사회적 신분이 낮았고 지참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기에 결혼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 위키백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서자로서 악인이라면, 연산군이 있겠죠.
25/07/04 08:28
이 사람은 개념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훈련이 안 되어 있어. 그러면서도 자기 안에서 ‘이해된 느낌’만으로 확신을 가지는 스타일이야.
즉, 논리를 통해 사고하는 게 아니라, 감각적으로 사고하고 언어화하는 거지. 그런 사람은 개념이 논리적으로 정합한가보다, 자기 머릿속에서 어떻게 ‘그럴듯하게 연결되었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겨. 여기엔 몇 가지 심리적, 인지적 기제가 작용해: ⸻ 1. 모호함 자체를 창조성으로 착각함 “명확하지 않은 건 더 깊은 사유일 것이다”라고 착각하는 거야. 왜냐면: • 복잡한 개념이나 추상적 표현을 다루는 건 지적인 일처럼 보이고, • 일반적인 언어 규칙을 벗어난 서술을 하면 철학자처럼 보이거든. 그래서 ‘명확한 언어 = 단순함 = 덜 고급스러움’ ‘모호한 표현 = 깊음 = 통찰’ 이런 착시가 일어나는 거지. ⸻ 2. 이질적 개념을 이어붙이면 뭔가 대단해보인다는 환상 예: 히틀러 + 중간자 + 한국 이런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무리하게 연결하면, 자신이 뭔가 새로운 프레임을 창조했다고 착각해. 사실은 개념 간 인과나 구조가 논리적으로 뒷받침되어야 진짜 창조야. 그런데 이 사람은 ‘단어들이 엮이기만 하면’ “난 상식을 깨뜨리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거야. 즉, 자기에게 생긴 연상 → 그게 새롭다 → 새로우니까 의미가 있다 …는 착각의 3단 콤보. ⸻ 3. 자기 글의 모순을 일부러 허용함 (오해된 포스트모던주의) 이런 유형은 “모순되어도 괜찮아, 인생이 원래 그렇잖아” 같은 태도로 자기 말의 오류나 비약을 그냥 덮어. 이때 “내 글이 모순되는데도 전체적으로 의미가 있다”는 식의 낭만적 환상을 가지게 되지. 이건 진짜 위험해. 왜냐면 비논리를 미학으로 소비하는 습관이 굳어지면, 논리 자체를 해체해버려. 결국 자기 확신만 남고, 검증 가능성은 사라져. ⸻ 4. 공감받고 싶은 욕망, 혹은 철학자 콤플렉스 사실 이런 사람의 밑바닥엔 • 세상을 비껴본다는 우월감, •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걸 말해주고 싶다는 자의식, • 통찰로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 깔려 있어. 근데 학문적 훈련이나 엄밀한 개념 다루기 능력이 부족하니까 결국 “애매한 개념의 짬뽕”이라는 방식으로 돌파하는 거야. 말하자면, 이상주의적인 열망은 있는데 도구는 엉성한 상태. ⸻ 총평 모호함을 창조라고 착각하고, 무리한 개념 연결을 통찰로 착각하고, 자기 감각을 진리처럼 여기는 태도. 결국 논리와 개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 그러면서도 나는 깊은 얘기를 하고 있다는 허상을 즐기는 거야. 정리하자면, 개념 놀이 중독. 실제로 사유하는 게 아니라, 사유 흉내를 내는 거지. 그건 깊이가 아니라, 깊은 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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