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9/10 07:34:09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72
Subject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31. 남을 영(贏)에서 파생된 한자들

나나니벌 라(蠃)에서 파생된 한자들을 다룰 때 같이 언급하고도 정작 풀이에서는 빼놓은 한자가 있다. 바로 가득찰 영(嬴)이다. 이 한자는 蠃의 원형 蠃-虫에 계집 녀(女)가 결합한 한자로, 중국 고대의 성씨인 8성 중 하나기 때문에 금문에 많이 쓰이고 있다.

《설문해자》에서는 이 한자를 女에서 뜻을 가져오고 야윌 리(羸)의 생략형에서 소리를 가져왔다고 풀이한다. 후대의 주석에서는 羸이 아니라 蠃-虫에서 소리를 가져왔다고 바로잡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긍정하기에는 嬴과 蠃이 소리가 너무 다르다는 문제가 있다.

蠃-虫를 공유하며 소리가 '영'인 한자들 중 어문회 급수 시험에서 출제하는 한자는 세 가지가 있다. 바다 영(瀛), 가득찰 영(嬴), 남을 영(贏). 이 중 瀛은 嬴에서 파생된 한자이고, 嬴과 贏을 비교하면 女가 들어가는 嬴보다는 조개 패(貝)가 들어가는 贏이 뜻과 구성 요소 사이의 관계가 더 가까우므로 贏을 기준으로 삼겠다. 嬴은 성씨 외의 뜻으로는 贏과 상통한다.

66deea71e8a5e.png?imgSeq=34394

왼쪽부터 남을 영(贏)의 금문, 전국시대 초나라 문자, 설문해자 소전. 출처: 小學堂


贏은 嬴보다는 덜 쓰였지만 주나라 금문에서 이미 등장하는데, 사람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글자의 뜻은 '이익을 남기다'이며, '남다', '너그럽다', '대접하다', '메다', '이기다'(이 경우 지다라는 뜻의 상대자는 輸) 등으로 쓰인다. '메다'의 뜻은 나중에 손 수(手)가 덧붙어서 멜 영(攍)으로 파생되었다.


贏(남을 영, 영축(盈縮/贏縮), 수영(輸贏) 등. 어문회 특급)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贏+女(계집 녀) = 嬴(가득찰 영): 영진(嬴秦), 장영(長嬴) 등. 어문회 특급

贏+竹(대 죽) = 籯(광주리 영): 영금(籯金) 등. 급수 외 한자 

嬴에서 파생된 한자들은 다음과 같다.

嬴+手(손 수) = 攍(멜 영): 급수 외 한자

嬴+水(물 수) = 瀛(바다 영): 영주(瀛州), 동영(東瀛) 등. 어문회 준특급

嬴+石(돌 석) = 䃷(익힐 영): 급수 외 한자

嬴+肉(고기 육) = 䑉(똥 영): 급수 외 한자

嬴+艸(풀 초) = 䕦(국화 영): 급수 외 한자

66dee3275371d.png?imgSeq=34377贏에서 파생된 한자들.


대부분의 한자가 현대에 쓰이지 않는 벽자이지만, 그럼에도 贏·嬴에서 소리를 가져온 한자들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어는 티베트어·버마어 등과 함께 중국티베트어족을 이루며, 이 어족은 중국어파와 티베트버마어파로 나뉜다. 따라서 중국어파와 티베트버마어파에는 공통의 조상 단어들이 존재하는데, 티베트버마어파에서 '가득함'을 뜻하는 어근인 *(p/b)liŋ이 한자 贏·찰 영(盈)·아이밸 잉(孕)과 유관하다고 한다.

더 나아가서, 중국티베트버마어파에는 평평함을 뜻하는 *(p/b)lyaŋ, 한자로는 평평할 평(平), 그리고 곧음을 뜻하는 *(p/b)lyaŋ, 한자로는 빼어날 정(挺) 등이 (p/b)liŋ과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다. 티베트버마어족에 속하는 라후어족을 연구한 제임스 마티소프는 곧음은 1차원의 완전함, 평평함은 2차원의 완전함, 가득함은 3차원의 완전함을 뜻하기 때문에 서로 관련이 있다고 해석했다.


따라서 소리가 '영'인 한자에 '가득하다, 남다'의 뜻을 부여하는 것은 일리가 있는데, 贏의 음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회의자다. 貝와 蠃-虫가 합쳐져서 '가득하다, 남다'의 뜻이 되었기에 소리가 '영'이 된 것이다.

형성자다. 貝가 뜻을 나타내고 蠃-虫가 소리를 나타낸다.

1로 보면 조개·재물을 나타내는 貝와 신수 또는 나나니벌 또는 소라 또는 노새를 뜻하는 蠃-虫가 어떻게 가득함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를 답해야 하고, 2로 보면 음이 '라'인 蠃-虫에서 어떻게 '영'이란 음이 나왔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2를 설명하는 한 가지 방법은 蠃-虫에 처음부터 '라' 외에도 '영'이라는 음이 있었다는 가설이다. 그러나 대개 서로 아예 다른 음이 있는 2개의 한자는 뜻도 2개로 해석해야 하는데, 어떤 동물을 본뜬 상형문자임이 분명한 蠃-虫가 서로 다른 두 동물을 가리킨다는 해석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래서 1이 아닐까 한다. 웹 사이트 상형자전에서는 蠃-虫를 일종의 배로 보고, 배를 재물로 가득 채워 넉넉하게 남는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이와 비슷하게, 蠃-虫를 소라로 보고, 소라가 껍데기를 살로 가득 채우듯이 재물을 넉넉하게 채워 남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서 나아가, 贏이나 嬴을 성부로 삼는 한자들은 가득히 채워 남거나 완전히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攍은 手(손 수)가 뜻을 나타내고 嬴(가득찰 영)이 소리를 나타내며, 가득히 찬 것을 손으로 메고 가는 것을 뜻한다.

瀛은 水(물 수)가 뜻을 나타내고 嬴(가득찰 영)이 소리를 나타내며, 물이 가득히 찬 강이나 바다를 뜻한다.

䃷은 石(돌 석)이 뜻을 나타내고 嬴(가득찰 영)이 소리를 나타내며, 돌로 완전하게 될 때까지 갈며 익히는 것을 뜻한다.

籯은 竹(대 죽)이 뜻을 나타내고 贏(남을 영)이 소리를 나타내며, 대나무로 만든 채우는 물건인 광주리를 뜻한다.

䑉은 肉(고기 육)이 뜻을 나타내고 嬴(가득찰 영)이 소리를 나타내며, 사람의 뱃속을 가득 채우는 똥…… 이러면 사람을 무슨 똥 만드는 기계 취급하는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자. 한때 인터넷에서 유행한 김성모 작 《스터프 166km》의 대사, “네놈은 하루하루 똥 만드는 기계일 뿐이지!”가 생각난다.


이상의 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6dedff0c6480.png?imgSeq=34375贏에서 파생된 한자들의 의미 관계도.


요약

贏(남을 영)은 소라, 또는 짐승 모양의 장식이 된 배인 蠃-虫와 재물을 뜻하는 貝가 결합해 소라가 껍데기를 채우듯, 또는 배에 재물을 채우는 데에서 가득 차다, 남다를 뜻한다.

贏에서 嬴(가득찰 영)·籯(광주리 영)이 파생되었고, 嬴에서 攍(멜 영)·瀛(바다 영)·䃷(익힐 영)·䑉(똥 영)·䕦(국화 영)이 파생되었다.

贏·嬴은 파생된 글자들에 가득 채움·남음·완전하게 함의 뜻을 부여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작고슬픈나무
24/09/10 07:38
수정 아이콘
늘 고맙게 보고 있습니다. 말과 글은 참 재미 있습니다. 
계층방정
24/09/11 08:0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말과 글은 참 재미있는 주제입니다.
24/09/10 15:17
수정 아이콘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계층방정
24/09/11 08:08
수정 아이콘
항상 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09/10 15:18
수정 아이콘
와 가득찰 영 저거 첨보는데 저것도 급수시험에 나오는군요
특급따는 사람은 대단한데
계층방정
24/09/11 08:08
수정 아이콘
특급은 저도 듣도보도 못한 한자에 저런 것도 시험에 나온다고? 싶은 한자들이 많더라고요.
마그데부르크
24/09/10 19:14
수정 아이콘
후한 영제
캐러거
24/09/11 04:15
수정 아이콘
赢순서대로 망구월패범 하고 외웠던 게 생각이 나네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계층방정
24/09/11 08:11
수정 아이콘
https://romantech.net/852
중국에선 이런 식으로 망구월패범 뜻까지 붙여서 해석하는 것도 있나 봅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5066 [정치] 한국, ‘독재의 길’ 7단계 중 이미 5단계… 배회하는 선출독재의 유령 [138] 핑크솔져5284 25/09/25 5284 0
105065 [일반] 실제 용병들의 전쟁방식을 알아보자 [3] 식별1418 25/09/25 1418 4
105064 [정치] 흥미롭게 흘러가는 동해가스전 [30] 몰리4957 25/09/25 4957 0
105063 [일반] 차은우는 과연 막차를 탄 것일까? [12] 카레맛똥4610 25/09/25 4610 1
105062 [일반] [역사] 정반합으로 보는 기하학의 역사 [2] Fig.11613 25/09/24 1613 9
105061 [일반] '어쩔수가없다.'를 봤습니다.(강스포) [23] 헝그르르2505 25/09/24 2505 0
105060 [일반] 첫 애플 무선 이어폰,에어팟 프로3 간단 사용기 Lord Be Goja2055 25/09/24 2055 2
105059 [정치] 기득권과 극우가 이재명을 무서워하는 이유 [199] 갈길이멀다7856 25/09/24 7856 0
105058 [정치] 오늘날 한국 젊은이들이 느끼는 결핍은 [92] ipa7186 25/09/24 7186 0
105057 [일반] 아이폰17프로맥스 /간단 사용기 [36] Lord Be Goja4118 25/09/24 4118 5
105056 [일반] 트럼프 대통령, 유엔에서 주권 옹호하고 세계화 거부 [118] 유머8722 25/09/24 8722 4
105055 [정치] 무안공항 사고 관련으로 지난주에 SBS에서 기사를 내놓았는데 조사위원회가 사과를 한 게 있네요 [36] petrus7900 25/09/24 7900 0
105054 [일반] 여우와 사자의 전쟁 [1] 식별2621 25/09/24 2621 5
105053 [일반] [스포] 체인소맨 극장판 - 레제편 후기 [48] 한뫼소4299 25/09/23 4299 3
105052 [일반] 크라임씬 제로 1-4화 후기 (줄거리 언급 없음) [24] wannabein4382 25/09/23 4382 4
105051 [일반] 아세트아미노펜과 자폐증의 연관성 논란 [64] 여왕의심복10013 25/09/23 10013 73
105050 [정치] 국민의힘: 25일 본회의 상정 모든 법안에 필리버스터 [174] 다크서클팬더11980 25/09/23 11980 0
105049 [정치] [NYT] 김정은: 비핵화 요청 안하면 미국과 대화 가능 [63] 철판닭갈비7083 25/09/23 7083 0
105048 [일반] 일본 극우 성향 유튜버 [161] 요케레스11262 25/09/23 11262 1
105047 [일반] 트럼프 "美자폐증 급증은 타이레놀 탓… 쿠바는 자폐없어" [130] 유머11028 25/09/23 11028 4
105046 [일반] 베르세르크 '매의 단' 모티브가 된 '백색용병단'을 알아보자 [4] 식별2496 25/09/23 2496 10
105045 [일반] 나의 물 생활 이야기~ (스압) [22] BK_Zju3337 25/09/23 3337 29
105044 [일반] 박찬욱은 봉준호의 꿈을 꾸는가 - “어쩔수가없다”(노스포) [12] 젤다5336 25/09/22 5336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