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7/06 01:02:20
Name SAS Tony Parker
Subject [일반] 피터 팬의 꿈
*평어체입니다

작년 9월. 담낭암 말기 선고를 받고 의연히 돌아오셨던 아버지. 소식은 미리 누나들에게 들어서 나도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아들 놀랄거라고 내가 얘기할거다 왜 얘기하냐 그러셨죠

보통의 그정도 환자들이 호스피스를 선택하지만 아버지는 늘 우리가 알던 의지력으로 항암을 하겠다 하셨었습니다 약도 잘 듣고 컨디션도 좋아서 다니시던 모교회에서 간증도 하구요 아버지 본인이 원하셔서 새로 오실 목사님이 쓰실 사택 손도 직접 보시고. 누구보다 일을 많이 하고 75까지 일하실거라고 늘 말하셔서 둘째형은 아버지를 피터팬으로 불렀죠

딸들 손은 더 아프면 빌리겠다고 상주까지 가서 분당 가는 버스를 타고 직접 가셨죠 누나들은 그래도 모셔드리고 싶다고 몇번씩 새벽을 깨워 본가로 와서 여행 삼아 추억 삼아 피곤해도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운동하시겠다고 당근에서 런닝머신도 가져오고 하루 8천보 1만보씩 일하고 운동삼아 걸으시던게 눈에 훤하네요

아픈 와중에도 제가 해달라는 영화 포스터 도배 인테리어도 직접 하시고 주일 교회 끝나고 집으로 제가 돌아올때마다 두분 다같이 태우러 나오시고. 아빠 아들이라고 어깨 펴고 다녀라 하고 늘 얘기하셔서 펴고 다니고 그랬습니다

내성이 생기고 약 기운에 한번씩 졸고 그러실때는 슬프기도 했지만 워낙 잘해오던 아버지라 여전히 웃을수 있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인사하고 들어가면 축사에서 소 밥을 주시던가 일을 다하고 집에 내려와서 문 열면 바로 보이는  자리에 쉬고 계시던가 늘 그랬죠 아들이 짧게 남기는 출퇴근 문자에 기분 좋다고 맨날 그러셨구요

집중치료를 위해 분당에 40일 통원치료 하실때나 마지막 신약을 쓰러 군포에 가실때도 아버지는 그대로셨어요 약한 모습 보이기 누구보다 싫어하고 나 그 약 써서 낫고 밭에 약 칠거다라고 하셨고. 염증수치가 올라오기 전까지 잠시라도 집에 돌아오실 아빠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폐렴이 오고 염증이 올라오면서 시간이 얼마 안남았을수 있겠다란 생각만 해뒀습니다 생각만. 그 와중에도 염증 낮춰 약 써보려는 아빠의 의지를 모두가 알았기에..
다만 분당 마지막쯤과 군포로 가신 때는 숨이 차시는 상황이라 누나들이 로테이션으로 간병을 했습니다

목사님들께 기도도 많이 받고 각기 다른 자식들의 4교회에선 중보기도(단체기도) 수백명씩 하고. 과일만 드셨지만 엄마 밥 먹고 싶다고 먹으면 기운 팍팍일거라고 그러면서 찾으시던 것도 기억납니다

쓰러지시던 날 나가면 뭐하고 싶고 뭐 먹고 싶고 이상하게 기분이 좋고 컨디션이 좋으시다며 큰누나랑 2시간을 얘기하셨구요 갑자기 호흡이 이상해지리란걸 아버지 당신은 아셨는지 모르셨는지 몰라요 중환자실 가시면서도 싸우고 올게 하셔서요 사실 지난 주말 넘기기 힘들다 한거 우리끼리는 알고 기도했습니다 엄마는 끝까지 비밀로 하고.

저는 그때 교회에 있었고 연락을 받자마자 온 가족이 군포로 향했습니다 그래도 버티고 계셨죠 우리가 마지막 면회를 할 수 있도록. 다들 인사를 했고 2월에 단톡에 쓰신 가족 대상 기도 제목을 이루겠다 하고 잡아둔 숙소로 갔지요

새벽 2시반까지 저는 잠을 뒤쳑였습니다 잠이 올리가 없죠 내가 무엇보다 좋아하고 의지한 아버지 당신이란 존재가 언제 우리와 이별할지 몰라서. 근데 정신이 없어 잊은게 있더군요 자정을 넘긴 그날이 아빠 외손자 생일인거.
외손주가 11명이라 생일 전부는 못 외우시지만 분명히 안다고 하셨고 분명히 기억하신  생일이요.

손자 생일이 외할아버지 기일이 될까봐 하루를 버티시고 우리는 큰누나 부부만 남겨두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슬프지만 잘 준비해야 해서

1일 새벽 1시 30분 제 폰이 울렸어요  큰누나였죠 바로 받았어요. 아버지 가셨다. 라고.. 준비는 했지만 언제나 내 모든 것에 있던 아버지셨기에 힘들었습니다 오죽하면 대구와 우리집 옆동네 사는 고모들이 연락 받자마자 우리보다 빨리 와서 아버지를 보셨을까요 아빠.

늘 약속을 지키던 당신이 니 팔에 완장 찰 일 없게 한다. 는 약속을 못 지키고 내 팔에 완장을 채운 아버지는 마지막에 뵙는데도 웃고 계신 얼굴이었죠 늘 남들보다 더 따뜻했던  몸은 식어버렸지만...

아빠는 사위인 매형들을 사위가 아니라 아들로 삼고 지내서 나도 팔자에 없던 든든한 형들이 생기고 아빠 일할때도 돕고 그랬던거 다 기억합니다 형들이 나보다 더 슬퍼했어요 온 얼굴이 붉어져서.. 장난칠때 서방이라 그러셨지 거의 다 이름으로 부르시고 난 아들이 다섯이라고 자랑하셨죠 그래서 다들 화목했고.

집안 선산에 모실까 하다가 엄마나 내가 가다 넘어질까봐 위치 좋고 볕 잘 드는데다가 모셨어요 아빠가 제일 아끼는게 엄마랑 저니까  말은 안하셔도 그러라고 하셨을거지요
가보니까 쉬시기 좋더군요 잘 골랐네 우리 아들딸들 하실 곳이었어요 누나들이랑도 가까우니 더 좋구요 경사도 없어요 아버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건 형들이 기꺼이 엄마를 돕겠다고 나서고 있는거 다 보고 계시잖아요 아들로 대해준 아버지가 너무나 감사해서. 이 또한 아버지 당신의 덕이자 복인거 알아요

또. 장례를 치르는데 아주 많은 사람이 놀라고 슬퍼해 찾아오고 위로 예배를 포함해서 13번인가? 드린거 그것도 보셨죠? 고향 식장 개장 이후 제일 많았답니다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두란노 아버지학교에서 추모 영상도 따로 뽑고 사진도 다 정리해주셨어요 늘 기쁨으로 가셨고 섬기셔서 어느 모임에서도 나오지 않는 행복한 표정들이 가득이었어요 아빠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들도 오셨고.

아빠가 얘기만 하면 좋아하던 내 주변 사람들도 서울에서. 대구에서 각지에서 먼 길 마다않고 와줬어요 앞에 갖다둔 사진처럼 웃으실만큼. 연락 못한 고향 친구들까지요

아빠 기분 최고의 3일이었다고 믿습니다.  엄마는 아빠가 남겨둔 형 넷. 누나 넷. 손주들과 좋은 사람들로 끝까지 지키다 만나러 갈겁니다 그때까지 먼저 간 친구분들과 예배 잘 하고 계실꺼니까 기쁘게 살 겁니다 내가 누구 아들인데요 아버지. 아버지학교 봉사도 하고 아빠 꿈처럼 행복한 가정도 유지할겁니다 웃으면서 보시면 되겠죠? 헤헤

난 항상 아버지 아들이라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자주 찾아와서 봐주세요 아들 잘하나. 당연히 안아주실거니까 기분 좋네요 저도 자주 갈게요

-늘 미안해 하셨고 제일 좋아하시던 아들이-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7/06 01:32
수정 아이콘
저희 아버지도 그랬지만 병상에 오래 머물다 가신거보단 그래도 일상생활 하시다 가신게 그나마 위안이되지않을까 싶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계층방정
24/07/06 08:35
수정 아이콘
훗날 천국에서 만나볼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이 땅의 죽음이 끝이 아님을 믿습니다. 죽음을 대하시는 태도에서 춘부장께서 이 땅의 삶에도 최선을 다하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죽음의 자리에 오셔서 함께하시는 분들에서 춘부장께서 쌓으신 덕이 느껴지네요.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곁에 있던 분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어찌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저도 올 초에 할머니를 떠나보냈는데 분명 호상이었고 위로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돌아가신 분을 떠올리면 이별의 아픔이 아직도 느껴집니다. SAS Tony Packer님도 천국에 소망이 있으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위로를 받기를 기도합니다.
24/07/06 10:35
수정 아이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 가셨을 겁니다..
진산월(陳山月)
24/07/07 00:11
수정 아이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가슴이 아프네요. 잘 추스르시길...
에라인
24/07/07 01:17
수정 아이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좋은 곳에서 웃으시면서 보내시고 계실 겁니다.!
안군시대
24/07/07 12:22
수정 아이콘
저희 아버지 돌아가신지 1주기가 되어가는데 이 글을 보니 남일 같지가 않군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빨리 가봐야 하겠습니다. ㅠ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2169 [일반] 인싸 애니 스파이X패밀리 + 원작 + 극장판까지 모조리 감상후기 1 [26] 플레스트린4853 24/08/28 4853 0
102168 [일반] 빈..체로.........빈.....체........................................로.. [17] 포졸작곡가5661 24/08/28 5661 10
102167 [정치] 윤석열 대통령-한동훈 대표 만찬 연기...'의대 증원' 충돌 여파? [98] 철판닭갈비9570 24/08/28 9570 0
102166 [정치] 배우자 출산휴가 20일로…육아휴직 급여 대폭인상 [39] 바둑아위험해7303 24/08/28 7303 0
102165 [정치] 자녀들이 텔레그램을 설치했는지 확인하라는 JTBC 사건반장 [351] Regentag16711 24/08/28 16711 0
102164 [정치] 출산율과 수도권 집중화를 해결할 쉬운 방안 수도권 대학이전 [154] 식물영양제6642 24/08/27 6642 0
102162 [일반] 소리로 찾아가는 한자 27. 우레 뢰(畾, 雷)에서 파생된 한자들 [10] 계층방정4721 24/08/27 4721 3
102161 [일반] 영화 "빅토리" 후기.. "이 정도로 망할 영화인가??? " (스포주의) [42] Anti-MAGE12306 24/08/26 12306 4
102160 [일반] 칸예 웨스트, 언니네 이발관, 프랭크 오션 잡담. [6] aDayInTheLife7630 24/08/26 7630 16
102159 [일반] 텔레그램은 진정으로 암호화 메신저인가? [27] Regentag10779 24/08/26 10779 6
102158 [정치] MBC 이사 교체를 법원이 저지하며 정권의 MBC 장악 폭주에 제동이 걸렸네요. [28] 홍철10205 24/08/26 10205 0
102157 [일반] 70년대 지어진 큰 평수 아파트에 꼭 있었다는 특이한 공간 식모방 [37] 매번같은9640 24/08/26 9640 3
102156 [정치] pgr의 운영 방식과 벌점 부여, 대체로 합리적인가? [142] 딕시10717 24/08/26 10717 0
102153 [정치] 누가 무엇으로 '대한민국'을 정의하는가 [31] meson8437 24/08/25 8437 0
102150 [일반] 7일 출장 예정이었는데 8개월 동안 갇혀 있을 사람에게 위로를 [23] 매번같은10513 24/08/25 10513 3
102148 [일반] 비행기의 전성기 [7] 번개맞은씨앗7051 24/08/25 7051 2
102147 [일반] 여자를 임신을 시켰다는 게 꼭 책임져야한다는 건 아니거든요?! [90] 칭찬합시다.15585 24/08/25 15585 12
102146 [일반] [스압] 고려말 왜구들의 본거지였던 일본 섬들 [18] 삭제됨7226 24/08/25 7226 28
102145 [일반] (약스포) 에일리언 로물루스 관람후기 [17] 종말메이커5839 24/08/25 5839 5
102144 [일반] [팝송] 알렉산더 스튜어트 새 앨범 "bleeding heart" 김치찌개2971 24/08/25 2971 0
102143 [일반] 행복의 나라 리클라이어관 후기(거의노스포) 욕망의진화4127 24/08/25 4127 0
102142 [일반] 술 맛있게 먹는 법.jpg [9] insane6324 24/08/24 6324 1
102141 [일반] [서평]《불안 세대》 - 스마트폰에 갇혀 실수할 기회를 빼앗긴 아이들 [23] 계층방정5457 24/08/24 5457 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