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6/18 06:36:58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31
Subject [일반] 己(몸 기)에서 파생된 한자들 - 벼리, 일어남, 기록 등 (수정됨)

지난 글에서 살펴본 한자들은 몸/여섯째천간 기(己)나 꼬리 파(巴)가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는 꿇어 엎드린 사람을 본뜬 병부 절(卩)에서 파생된 한자였다. 그렇다면 진짜로 몸 기(己)에서 파생된 글자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먼저 己의 자원부터 살펴보자.

666d920bbe97e.png?imgSeq=26741

몸 기(己)의 서로 다른 두 갑골문. 출처: 小學堂

己는 갑골문에서도 나오는 오래된 한자로, 지금처럼 리을자 모양으로 쓰기도 하고 이걸 좌우로 뒤집은 각진 2자 모양으로 긋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나 단순한 형태라서 대체 이게 뭘 본뜬 것인지는 현재까지는 정설이 없는 상태다. 그나마 갑골문에서 己를 포함하고 있는 글자들이 있는데, 아니 불(弗)과 아자비 숙(叔)이다. 弗은 지금은 弓(활 궁)이 들어가 있지만 갑골문에서는 己가 들어가 있고, 갑골문에서 弓은 己와는 꽤나 다른 모양이었다. 叔은 갑골문에서는 끈으로 묶은 화살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로 수렵 도구로 짐작되고 있다.

666ea2e4915bf.png?imgSeq=26829

아니 불(弗)과 아자비 숙(熟)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과 甲骨文硏究网.

이에서 나온 유력한 己의 자원은 弗과 叔과 마찬가지로 己도 실에서 따온 글자로, 실이나 새끼줄로 무엇을 묶기 위해 이리저리 돌려 맨 모양을 본뜬 것이라는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己는 원래는 紀(벼리 기)를 나타낸 한자다.

또 다른 소수설은 疇(이랑 주)와 관련이 있다. 疇는 지금은 田(밭 전)이 뜻을 나타내고 壽(목숨 수)가 소리를 나타내는 형성자로 구성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지금처럼 복잡한 형태가 아니었다. 疇의 갑골문은 다음과 같다.

lAAha59NyozR7NVKJbNGT21heQ0

疇(이랑 주)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

가운데 들어가는 네모꼴은 田으로 쓰기도 하며, 밭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이 밭을 己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 己는 밭 사이로 물길을 낸 것으로 埂(작은 구덩이 갱)의 본자로 보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한 줄로 죽 이어진 己자를 살펴봤는데,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어지는 모양도 있다. 허신은 설문해자에서 별의별 희한한 옛 문자를 긁어모았는데, 己의 고문도 전국시대 도장에서 비슷한 모양이 있는 걸 보면 그의 성실하고 끈질긴 노력에 놀랄 수밖에 없다.

666eab2499692.png?imgSeq=26830

己의 전국시대 제나라 도장에서 발견된 형태와, 설문해자에 수록된 고문. 출처: 小學堂

어쨌든 己는 갑골문에서도 상형문자의 뜻으로 쓰이는 예가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았다. 갑골문에서는 여섯째 천간, 정인(점술가)의 이름, 상나라의 묘호로 쓰였다. '자기', '몸'의 뜻은 나중에 가차한 것이다.

己에서 파생된 글자들을 살펴보자. 지금까지 살펴본 글자 중 쓰임이 있는 파생자가 9자로 가장 많다. 그만큼 다중 파생된 글자들도 많으나 공교롭게도 현대 한국어에는 쓸 일이 없는 글자들이어서 여기에 소개하지 못했다.

己(몸/여섯째천간 기):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 자기(自己) 등. 어문회 준5급

屺(민둥산 기): 자기(慈屺), 척호척기(陟岵陟屺) 등. 어문회 특급

忌(꺼릴 기): 기피(忌避), 금기(禁忌) 등. 어문회 3급

改(고칠 개): 개혁(改革), 재개(再改) 등. 어문회 5급

杞(구기자 기): 구기자(枸杞子), 기우(杞憂) 등. 어문회 1급

玘(패옥 기): 팽기(彭玘), 황기환(黃玘煥) 등. 어문회 준특급

紀(벼리 기): 기강(紀綱), 세기(世紀) 등. 어문회 4급

芑(흰차조 기): 이기(李芑) 등. 어문회 특급

記(기록할 기): 기록(記錄), 일기(日記) 등. 어문회 준7급

起(일어날 기): 기상(起牀), 발기(勃起) 등. 어문회 준4급

6670aa7a2e58b.png?imgSeq=27060

己(몸 기)와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

이 중에서 改와 起는 원래는 己에서 파생된 글자가 아니었을 수 있다. 改는 갑골문과 금문에서는 巳+攵의 형태만 있을 뿐이지 改로는 쓰이지 않았다.

666eb0fc0af60.png?imgSeq=26831왼쪽부터 고칠 개(改)의 갑골문, 금문과 두 가지 다른 소전(巳, 己)의 해서화. 출처: 小學堂

《설문해자》에서는 두 가지 다른 改의 소전을 다 수록하고, 서로 다르게 풀이했다. 改는 '고치다'의 뜻으로, 巳+攵은 '퇴마용 물건'의 뜻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巳+攵의 형태로 쓰고 뜻은 '고치다'로 쓰고 있다. 이 글자를 곽말약은 자식을 쳐서 징계해 '고치다'의 뜻으로 풀이했다. 巳는 갑골문에서는 子와 거의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진옥은 원래부터 두 글자가 따로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는데, 회의자인 改를 완전한 형성자로 바뀌면서 巳 대신 己로 바뀐 것 같다. 한편 고대 사회의 애니미즘에 비추어 한자를 풀이하는 시라카와 시즈카는 뱀을 치는 주술로 '고치다'의 뜻으로 풀이했고, 설문해자의 '퇴마용 물건'의 뜻은 그게 그대로 남은 것으로 보았다.

起도 改처럼 走(달릴 주)와 巳가 결합한 글자가 많으나, 己가 결합한 글자도 적지 않다.

666edbd30b505.png?imgSeq=26847왼쪽 위부터 오른쪽으로 起의 전국시대 연나라 문자, 설문해자 고문, 전국시대 초나라 문자 2가지. 아래는 위 글자를 해서 형태로 바꾼 것. 출처: 小學堂, 글리프위키

起는 전국시대부터 출현하며, 지금처럼 走를 의부로 쓰기도 하고 走 대신 辵(쉬엄쉬엄 갈 착)을 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성부 2가지, 의부 2가지 합해서 가능한 조합이 4가지다. 위 예에서는 공교롭게도 초나라 문자에서만 성부를 己로 썼는데, 또 다른 초나라 계통 출토문헌인 《계년》에서는 巳를 쓰기도 한다. 起 역시 改처럼 원래는 己가 아닌 巳가 들어가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아직은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다.

한편 己의 옛 다른 형태에는 口가 아래에 들어가는 글자도 있다. 도대체 왜 이런 글자를 만들었을까, 口는 무슨 역할을 하는 걸까 싶다. 여기에 辵을 덧붙여서 起의 또 다른 변형을 만들어냈으니 그냥 이유 없이 붙인 것 같지는 않고 실제로 사용한 글자라는 것은 명백하다.

666ee0edd2978.png?imgSeq=26848

왼쪽 위부터 口가 들어가는 己와 起의 이체자, 아래는 위를 해서화한 것. 출처: 小學堂, 글리프위키

그리고 중국 춘추시대의 인물로 논어에서 공자에게 효를 물어보는 것으로 등장하는 중손하기(仲孫何忌)의 이름은 중손기(仲孫己)로 쓰기도 하는데, 이를 보면 己가 忌 대신 쓰이고 있다. 己 역시 己를 성부로 하는 忌 등 다른 글자의 뜻으로 가차해 쓰다가 뜻을 나타내는 적절한 형부가 붙어서 분화한 것일 수도 있겠다.

요약

己는 물건을 묶는 실의 뜻으로 紀(벼리 기)의 본래 형태라는 설이 유력하나, 갑골문에서는 그런 뜻으로 쓰이지 않았고 천간의 뜻으로 쓰였다.

己에서 屺(민둥산 기)·忌(꺼릴 기)·改(고칠 개)·杞(구기자 기)·玘(패옥 기)·紀(벼리 기)·芑(흰차조 기)·記(기록할 기)·起(일어날 기)가 파생되었다.

改와 起는 己 대신 巳(뱀 사)를 쓰기도 한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4/06/18 07:26
수정 아이콘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계층방정
24/06/18 07:43
수정 아이콘
매번 힘이 되는 댓글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글을 쓰면서 배우고 있고, 배운 지식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24/06/18 08:56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이름에 들어가는 한자가 있어 흥미있게 봤습니다.
계층방정
24/06/18 22:06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조사하다 보니 주로 이름에 들어가는 한자들도 더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닉언급금지
24/06/18 10:44
수정 아이콘
야매로 고문하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천간에 들어가는 글자들은 전부 별자리 모양이라고 그래서 와 낭만있다....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계층방정
24/06/18 22:07
수정 아이콘
천간 지지에 들어가는 한자들이 의외로 근원을 해섞하기 쉽지 않은 것 같더군요. 감사합니다.
24/06/18 10:54
수정 아이콘
요즘 책보면서 무채색 그림을 보는거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데
갑골문을 보니 내가 생각하는게 맞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크크
계층방정
24/06/18 22:08
수정 아이콘
갑골문은 아무래도 그림에 가까운 느낌이 더 강하게 들죠. 책은 가장 체계적인 무채색 추상화려나요?
24/06/18 12:07
수정 아이콘
글 잘 봤습니다만, 참을수가 없군요.

달릴 깅 생각하고 들어왔으면 개추
계층방정
24/06/18 22:09
수정 아이콘
저도 일어날 기 쓰다 보니 달릴 깅이 생각나던데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감사합니다.
24/06/18 13:09
수정 아이콘
연구하시는분들 정말 대단하신것 같습니다
계층방정
24/06/18 22:09
수정 아이콘
저도 동감합니다. 그리고 그분들 덕에 이렇게 글을 쓸 수가 있고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4658 [정치] 야생성을 잃은 시민들이 스스로를 무너뜨릴 권리를 부르짖는 것은 충분히 문제이다 - 뒤늦은 21대 대선결과에 대한 비판 [68] 내일은주식왕9168 25/08/02 9168 0
104657 [일반] '은행 시스템에는 이자가 없다'라는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의 위험한 착각 [8] 계층방정6698 25/08/01 6698 6
104656 [일반] 민생지원금 다들 사용하셨나요? [58] TheZone9718 25/08/01 9718 1
104655 [일반] 백종원 축제에서 나온 카드 영수증 미스터리 [98] 페이커7514686 25/08/01 14686 34
104654 [정치] 김건희 특검,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 무산 [169] 제논16297 25/08/01 16297 0
104653 [일반] [케데헌] 늦게 써보는 혼문 이야기 [18] 네?!7854 25/08/01 7854 6
104652 [일반] 검과 바람과 늑대의 시대 [2] 식별6351 25/08/01 6351 4
104651 [일반] 대형마트가 점점 싫어집니다. [74] 공부맨14553 25/07/31 14553 5
104650 [일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20] vasdesd9049 25/07/31 9049 39
104649 [일반] 법과 계약이 절대적인 건 아니더라 [41] 깃털달린뱀9356 25/07/31 9356 23
104648 [일반] 예술에 대한 발칙한 생각 [1] 번개맞은씨앗4598 25/07/31 4598 1
104647 [정치] 세상에 이런 협상은 없었다, '트럼프식 협상' [80] lightstone11305 25/07/31 11305 0
104646 [정치] 3500억달러에서 수익90%가져가면 그냥 3500억 조공과 같지 않나요? [321] 알파고25649 25/07/31 25649 0
104645 [정치] 정치 보복인가, 정당한 수사인가 [89] 딕시12834 25/07/31 12834 0
104644 [정치] 7월31일 (한국저녁10시) 마지막 관세협상 [81] 방구차야12522 25/07/31 12522 0
104643 [일반] [노스포] 좀비딸 후기 [27] 타츠야6759 25/07/31 6759 1
104642 [일반] 사고는 이제 사치품이 되고 있다 - 뉴욕타임스 기고문 [40] 인간흑인대머리남캐12081 25/07/30 12081 17
104641 [일반]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극장 산업이 망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72] Qfghh9177 25/07/30 9177 0
104640 [일반] "기상학자가 사과까지 하는 8월 더위라니, 정말 역대급인가 봅니다." [68] 윤석열12956 25/07/30 12956 0
104638 [정치] 노란봉투법 상임위 통과 [116] 정대만14847 25/07/30 14847 0
104636 [일반] 日태평양 지역에 쓰나미 경보·대피령 [29] Croove10312 25/07/30 10312 1
104635 [일반]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의 시대 [3] 식별6855 25/07/30 6855 6
104634 [일반] 왜 테슬라는 TSMC가 아니라 삼성 파운드리를 선택했나 [43] 어강됴리13962 25/07/29 13962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