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3/07 21:54:59
Name 판을흔들어라
Subject [일반] [내일은 금요일]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진다.(자작글)
아래는 자작글 입니다.

====================================================================================

"어제 슬픈 사실을 하나 알아냈어"

라고 말을 하며 J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빨대를 입에 문 채 고개를 아이스 초코에 박고 있던 Y가 고개를 들었다.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 Y가 입술을 움직이려던 찰나에 J의 입가만 아주 살짝 웃었다가는 이 내 굳어졌다.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져"

그 말을 들은 Y가 오른쪽 눈썹을 위로 움직이며 말했다.

"그게 뭔 소리여. 그게 왜 슬퍼"

"그냥 그게 사실이니까. 감은 감나무에서 떨어지고, 밤은 밤나무에서 떨어지잖아? 사과도 사과나무에서 떨어지고."

허리를 쭉 펴며 등을 의자 등받이에 받치고서는 Y가 물었다.

"중력이 싫은 거야? 떨어지는 게? 어제 미적분 문제라도 풀었어? 뉴턴이야?"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J는 물었다.

"잠깐 수박은 어떻지? 귤은?"

"수박은... 그 무거운 게 나무에 매달려있지는 않을 텐데. 귤은 내가 제주도에서 따 본 적 있어. 나무에 붙어 있어."

"그래... 귤도 떨어지겠구나"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지 모르겠네"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Y였다.
그러나 J는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인지 독백인지 모를 말을 계속했다.

"콩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날테고... 근데"

"근데?"

"팥을 심어도 메주를 쓸 수가 있어. 팥을 심어 팥이 나면 팥을 팔고 콩을 사서 메주를 쓰면 되잖아?"

"하긴 그러네. 음...... 그래서"

"응?"

"그래서, 뭐가 그리 슬픈 건데. 사과가 밤나무에서 떨어지지 않는 게 슬픈 거야?"

"응"

"뭐?"

"응이라고."

"아니, 음... 후."
Y가 한숨을 쉬었다.

"사과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게 당연하잖아. 그게 왜 슬퍼. 뭐 밤나무에서 떨어져야 하는 거야? 이상하잖아 그건.
당연한 거에 뭐 그리 슬퍼하는 거야"

"맞아, 당연하지. 근데 그게, 그 당연한 게 슬프네. 너도 알잖아"

"뭘?"

"S는 날 안 좋아해"

"새삼?"

"그래, 새삼"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혼잣말일듯하게 말끝을 흐려가며 J가 말했다.

"당연한 게 슬퍼졌어"

==================================================================================

'내일은 금요일'이란 건 언젠가 생각했던 칼럼 제목입니다.
신문 읽던 시절 여러 컬럼을 읽으면서 이런 글들은 어떻게 해야 쓰는 거지 생각했었고,
그 중 'I ♡ 건축'이라는 칼럼을 읽으면서 이런 매력적이고도 길지 않고 다양한 주제의 글을 어떻게 쓰는 거지 했었고, 써보고 싶었습니다.(참고로 제가 매력적이라 느꼈던 저 칼럼의 글쓴이가 알쓴신잡에도 나오셨던 유현준 교수님이셨습니다.)
아주 예전에 PGR에서도 썼던 특이한 글들을 무언가 하나의 '칼럼'으로 묶는 상상을 했고,
한 번 묶어보았습니다.
목요일에 쓰면 당연히 다음날은 금요일이니까 '내일은 금요일'이 잘 어울리겠지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 '범죄의 재구성'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사과는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지'
사실 영화상으로는 '개가 똥을 끊냐' 라는 뜻이었는데 어디선가 '당연한 일'을 표현했다는 해석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걸 곱씹다보니 본문의 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글은 참고로 다른 모임에서 먼저 선을 보였습니다.
어디서 봤는데 하신다면 그 모임의 6명 중 한 분이시겠지만...... 없겠죠?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


ps. 사과나무 사진을 첨부하려 했는데 없네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푸른잔향
24/03/07 22:12
수정 아이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사과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푸른잔향
24/03/07 22:12
수정 아이콘
아멘
24/03/07 22:51
수정 아이콘
왠지 S에게는 다른 사랑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슬픔에는 당연한 이유가 필요하니까요
No.99 AaronJudge
24/03/08 00:58
수정 아이콘
앗…………..
데몬헌터
24/03/08 07:53
수정 아이콘
너무 많이 떨어져서 가격이 폭등해써이..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796 [일반] 입대 D-1, 잠 안 와서 써보는 잡담 [70] No.99 AaronJudge10190 24/06/30 10190 47
101795 [일반] [팝송] 자라 라슨 새 앨범 "VENUS" 김치찌개4968 24/06/30 4968 2
101794 [일반] 이런 저런 잡담 [8] 하위1%8182 24/06/29 8182 16
101793 [일반] 요즘 직접 작사를 하고 있습니다. [9] dhkzkfkskdl6133 24/06/29 6133 23
101792 [정치] 전관예우라는 용어를 안썼으면 합니다. [69] 헝그르르12574 24/06/29 12574 0
101791 [일반] 사기꾼 형벌이 낮은 이유 [74] 멜로12867 24/06/29 12867 25
101790 [정치] MBC를 과연 지킬 수 있을까요? [50] 홍철11546 24/06/29 11546 0
101789 [일반] 한 달 전 글 A/S. 중국에서 입국 후 신분을 세탁한게 확인된 앨리스 궈 필리핀 시장 [11] 매번같은9549 24/06/29 9549 6
101788 [일반] 삼국지 장각 시점에서 본 황건적의 난 [1] 식별6866 24/06/28 6866 11
101787 [일반] 하락세가 멈추지 않는 엔화 [66] 及時雨12931 24/06/28 12931 0
101786 [일반]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주식 사기범 이희진 근황 [58] GOAT12747 24/06/28 12747 6
101785 [일반] 已(이미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 - 써 이, 별 태/나 이 등 [8] 계층방정5448 24/06/28 5448 5
101784 [정치] 김진표 전 국회의장 "尹, '이태원참사 조작가능성' 언급" [107] 빼사스18213 24/06/27 18213 0
101783 [일반] <핸섬가이즈> - 오묘하고 맛깔나는 (호불호는 갈릴) B급의 맛.(노스포) [24] aDayInTheLife7281 24/06/27 7281 4
101782 [일반] 물고기 입속에서 발견된 쥐며느리? [19] 식별11025 24/06/27 11025 11
101781 [정치] 美 6개 경합주 유권자 "민주주의 위협 대처, 트럼프 > 바이든" [29] 베라히9459 24/06/27 9459 0
101780 [정치] 최근 핫한 동탄경찰서의 유죄추정 수사 [437] wonang19543 24/06/26 19543 0
101779 [일반] 육아 1년, 힘든 점과 좋은 점 [59] 소이밀크러버7573 24/06/27 7573 38
101778 [일반]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스포유, 전편 보신분은 스포무) [9] 헝그르르6638 24/06/27 6638 0
101777 [정치] [서평]《대통령과 한미동맹》 - 자율성은 동맹과 상충하지 않는다 [21] 계층방정6195 24/06/27 6195 0
101776 [일반] [추천사] 핸섬가이즈, 썩시딩 유 '시실리2km' [37] v.Serum7866 24/06/27 7866 7
101774 [정치] 저한테 미친여자라 그랬죠? [51] 어강됴리14324 24/06/26 14324 0
101773 [일반] 인터넷 가입 피싱 사기 전화 이야기 [24] 류지나7276 24/06/26 7276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