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3/10/28 14:12:00
Name 인민 프로듀서
Subject [일반] 홍대 원빈 (수정됨)
우연히 TV를 보다가, 무명가수들이 오디션하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그 중에서 무명에 그치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노래도 냈던 가수들도 나왔는데, 너무 익숙한 얼굴을 마주쳤다. 홍대 원빈 이지형.

90년대 말 태초에 조선펑크가 한국의 인디씬을 형성할 무렵, 그와 동시에 그런지, 정확히는 너바나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다른 한 축이 있었다. 조금 멀게는 원종우의 배드 테이스트부터, 가깝게는 홍대 씬 내부에서도. 그리고 홍대에서 '한국의 커트 코베인'의 칭호를 나눠갖는 두 명이 있었으니, 바로 코코어와 위퍼. 여기에 코베인이 되기 위해선 '잘생긴 얼굴'이라는 조건까지 추가한다면? 위퍼에서 기타치고 노래하던 홍대 원빈 이지형의 등장이다.

감히 홍대 인디씬의 본산이라고 할만한 드럭 출신으로, 위퍼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으로 대표되는 당시 드럭에서 비쥬얼 담당(!)으로 당당히 한 축을 차지했던 팀이었다. 이지형의 표현 그대로, 커트 코베인을 따라한 떡진 장발의 머리로 공연을 끝내고 맥주캔 더미에 앉아서 소녀팬들에게 '잘가요~'하며 손을 흔들어주던 이지형과, 그걸 보고 씨발씨발 거렸다는 불대갈과 차차와 캡틴록.  
위퍼는 노브레인과 함께 아워네이션 2집에 참여하여, 워너비 너바나의 모습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사운드와 절규하는 보컬, 무엇보다 될대로 되라는 체념의 정서. 아워네이션 2집의 위퍼는, 분명 한국의 너바나였다.


돌아버려 지금 난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이대로 이대로 [이대로 제발 날 내버려둬]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나온 위퍼 1집은 아워네이션 2집을 들었던 드럭 팬들에게는 꽤나 당황스러운 결과물. 너무나도 얌전해진, 공격성이 거세된 차분한 사운드. 그렇게 위퍼는 끝났다.


이후 이지형은 메인스트림의 스폿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나타난다. 모두가 다 아는 그 노래로. 이번에 TV에서 불렀던 바로 그 노래로.
위퍼1집에서의 아쉬움과 동시에, 메인스트림에서 비록 자기가 만든 노래는 아니었다지만 저런 노래를 부르는 이지형은 어색했다. 이번엔 이명박하던 불대갈만큼은 아니었지만.



다만 '한국의 커트 코베인'의 외도를 보면서도 안심(?)할 수 있던 이유는, 이후 이지형이 보여준 자신의 노래들을 듣고 나서다.

세상이 바라는 모습 그대로/ 얌전하게 웃고 있지만 견딜 수 없어/ [제발 날 좀 내버려둬 멋대로 굴고 싶어]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 내가 왜 이러는지/ 난 멈출 수 없어 내버려둬

사운드는 그 노래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았지만, 노랫말에서 느꼈다. 정말 여전히 그대로구나.


Nobody likes me, nobody likes me, nobody likes me. I'm alone
Could could you heal my everything And love me too. I'm alone... I'm alone.


그렇게 계속 자기 노래를 해오던 이지형이, 브라운관에 나왔다. 비록 자기 노래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래도 참 반가웠다. 오랜만에 친구를 본 기분. 아니, 그 때 드럭에 있던 모두는 진짜로 친구였으니까.
그리고 여전히 잘 생겼다. 씨발씨발.


그 당시 드럭의 분위기와 정서, 유대감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비디오. 반가운 얼굴들과 내 인생의 한 순간.



덧.
temple-of-the-dog-20e2f264681b4d7c940d49a2280ea863.jpg
바퀴벌레 뮤직비디오는 이 사진과 참 비슷합니다. 그 당시 시애틀 그런지 밴드들 간의 유대감이 제일 잘 드러난 사진 같아요. 저 뮤직비디오나 이 사진을 보면 비슷한 기분이 듭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김재규열사
23/10/28 19:29
수정 아이콘
가끔 노래방에서 부르는 토이의 ‘뜨거운 안녕’의 보컬이 이분이시네요. 대학생 때 인디밴드에 미쳐있던 친구가 가끔 들려주곤 했던 이야기 같습니다.
인민 프로듀서
23/10/28 23:43
수정 아이콘
그 친구분과 어쩌면 저도 한 공간에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하하
김재규열사
23/10/28 23:51
수정 아이콘
요새는 연락이 뜸하긴 한데 한명은 글에 나온 코코어를 저한테 열심히 영업했었고 또다른 한명은 재주소년을 많이 영업했었죠. 가끔 캠퍼스 풀밭에서 기타치면서 노래도 하고요.
바이바이배드맨
23/10/28 21:08
수정 아이콘
위퍼 진짜 오랜만이네요
저도 홍대씬이 거의 소멸직전인가 했었지만 싱어게인 1 재주소년 나오는거 보고 더 느꼈는데 2에 이지형까지
오랜만에 추억 되살리는 글 잘봤습니다. 한때 저도 기타들고 홍대를 헤매서
인민 프로듀서
23/10/28 23:45
수정 아이콘
동지였군요 반갑습니다! 제 추억나눔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수원
23/10/28 21:23
수정 아이콘
뭔가 이 형님도 음악적인 행보가 좀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결과랑은 별개로... 뭔가 길을 이리저리 헤매는 듯한 느낌이 많았어요.

갠적으로 솔로3집의 '아름다웠네' 좋아합니다.
인민 프로듀서
23/10/28 23:46
수정 아이콘
이번 방송에서도 결과적으로는 탈락하는 바람에....ㅠㅠ
23/10/28 23:12
수정 아이콘
이지형도 김형중도 꽤 오래 음악활동을 해왔는데, 대중들이 본인들을 떠올릴 때 가장 대표적인 곡은 본인들이 평소에 추구하던 음악이 아닌 토이의 객원으로 부른 노래들이네요. 둘 다 유희열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지만 뒷맛은 좀 씁쓸할 것 같아요.
인민 프로듀서
23/10/28 23:47
수정 아이콘
저는 여전히 아워네이션 2집의 망령에서 못벗어나고 있는데 이지형 본인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싶어할지...
노피어
23/10/29 01:41
수정 아이콘
드럭이나 위퍼 시절은 잘 모르지만 대학교 새내기 때 [coffee & tea] 라는 소품집을 내내 끼고 들었어요. 가끔 다시 들으면 스무살의 나즈막한 공기들이 생각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싱어게인에서의 모습은 왠지 안타깝더라구요.
인민 프로듀서
23/10/29 10:54
수정 아이콘
출연하신 분 중에 사연없는 분 없겠지만, 어렸을 때 봤던 분이라 더 반갑고 더 안타까웠습니다ㅠㅠ
불대가리
23/10/29 03:17
수정 아이콘
헉 방금보고왔는데 위퍼 보컬이셨다구요!?
인민 프로듀서
23/10/29 11:12
수정 아이콘
네 위퍼에서 노래하고 기타치던 이지형입니다. 방송에서도 위퍼 얘기는 전혀 없더라구요 당연하게도 ㅠㅠ
23/10/29 23:03
수정 아이콘
위퍼하면 박학기의 향기로운 추억 커버가 생각나는데 그 팀이 맞나요? 그때의 보컬이 맞는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네요 ㅠㅠ
인민 프로듀서
23/10/29 23:06
수정 아이콘
인디파워 1999 앨범이었죠 그 팀에 그 보컬 맞습니다!
23/10/29 23:07
수정 아이콘
지금도 종종 듣는 곡인데 전혀 생각을 못하고 있었네요. 다시 각잡고 들어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0172 [일반] (노스포) 넷플릭스 플루토 감상문 - 생각보다 별로??? [22] 롯데리아9409 23/10/31 9409 2
100170 [일반] 백악관에서 ai행정명령 발표 [27] 문문문무10482 23/10/30 10482 0
100168 [일반] 피와 살점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 (7) 피흘리는 백향목 [3] 후추통7240 23/10/30 7240 18
100166 [일반]  방통위의 'SNI 차단 방식 적용 불법 인터넷 사이트 접속 차단' 시정 요구… "합헌" [44] 스무스 초콜릿10571 23/10/30 10571 6
100165 [일반] 세계 최강자급 바둑 기사들의 "국제 메이저 바둑 대회" 커리어를 정리해봤습니다. [26] 물맛이좋아요9358 23/10/30 9358 9
100163 [일반] 좋아하던 웹툰인 [히어로 메이커] 현 상황 [36] 겨울삼각형10297 23/10/30 10297 0
100162 [일반]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할까? [20] realwealth11299 23/10/30 11299 11
100160 [일반] 가을산행 다녀왔습니다. [16] 흰긴수염돌고래8444 23/10/29 8444 9
100159 [일반] 어떤 과일가게 [4] 칭찬합시다.7754 23/10/29 7754 17
100158 [일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정제되지 않은. [14] aDayInTheLife9610 23/10/29 9610 3
100157 [일반] [팝송] 카일리 미노그 새 앨범 "Tension" [6] 김치찌개6715 23/10/29 6715 4
100154 [일반] 홍대 원빈 [16] 인민 프로듀서13174 23/10/28 13174 4
100153 [일반] 올해 고시엔 우승팀 게이오 고교에 다녀왔습니다. [12] 간옹손건미축10805 23/10/28 10805 17
100152 [일반] <더 킬러> - 번뜩이지만 반짝이지 않는다. [4] aDayInTheLife6619 23/10/28 6619 2
100151 [일반] 간만에 돌아와본 자브라. 자브라 엘리트 10 단평 [15] SAS Tony Parker 9376 23/10/27 9376 3
100150 [일반] 최근 들어 폭락하고 있는 한국 주식시장 [57] 렌야17488 23/10/27 17488 5
100148 [일반] 피와 살점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 (6) [4] 후추통7515 23/10/27 7515 13
100146 [일반] 나만 없어 고양이,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요. _ 고양이 사육의 단점 [40] realwealth8500 23/10/27 8500 9
100142 [일반] 아반떼 N 12000km 주행기 [43] Purple12191 23/10/26 12191 34
100140 [일반] 피와 살점이 흐르는 땅 팔레스타인 (5) [12] 후추통7409 23/10/26 7409 16
100138 [일반] nba 판타지 같이 하실분을 찾습니다!! [2] 능숙한문제해결사7214 23/10/26 7214 1
100134 [일반] 범죄자의 인권 [178] 우사고12337 23/10/26 12337 2
100133 [일반] 120시간 단식 후 변화 (종료 3일 후 인바디) [16] realwealth8860 23/10/26 8860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