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복과 불안정성
올해의 매드 라이언스는 '이 팀은 이런 스타일의 팀입니다' 라고 설명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팀입니다. 정규 시즌에 보여줬던 모습과 플레이오프 다전제에서 보여줬던 모습은 완전히 달랐고, 또 플레이오프에서 보였던 모습과 현재 MSI 그룹 스테이지에서의 모습도 완전히 딴판이죠. 단순히 폼이 좋다, 나쁘다의 문제를 떠나서 게임의 양상도 완전히 다릅니다.
정규시즌의 매드 라이언스는 초반에 점수를 따내고도 중반에 쉽게 헌납하는 팀이었고, 플레이오프의 매드 라이언스는 초반에 뒤처지다가도 불굴의 집중력으로 역전을 이뤄내는 팀으로 바뀌었죠. 그리고 또 반대로 MSI에 와서는 초반 이득을 굴리다가도 깔끔하게 날려버리는 모습으로 다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물론 아직 표본도 적고, 전력이 약한 팀들만 상대했으니 단정짓기는 이른 단계입니다. 담원이나 RNG를 상대로 게임을 했을때는 초반에 이득을 보기도 훨씬 어렵겠고, 한편으론 중후반에 쉽게 정줄놓고 소위 즐겜을 할 가능성도 더 적긴 할테니까요.
아무튼 팀의 밸런스가 계속해서 흔들리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럼블 스테이지와 토너먼트에서 만나게 될 상대들은 훨씬 강력하고 잘 준비되어 있는 팀들일테니까, 게임 초반 단계에서 중반 운영, 그리고 마무리까지 확신을 줄 수 있는 퍼포먼스가 필요하죠.
인터뷰 내용을 보면 본인들도 뭐가 문제였고, 얼마나 경기 내용이 별로였는지는 잘 인지하고 있는듯 하니 피드백은 될 듯 합니다. 그렇지만 한 번 리드를 잡았다가 쉽게 놓쳐버리는게 MSI에 와서만 이러는게 아니라, 정규시즌에도 겪어봤던 문제라 조금 더 철저하게 분석하고 개선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싶네요.
다행스럽게도(?) 팀 전체적으로는 나사가 좀 빠지긴 했지만 선수 개개인의 폼이 널을 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엘요야의 이번 대회 퍼포먼스가 기대치에 비해 지금까지는 살짝 애매하긴 한데, 번뜩이는 장면들도 보여주기는 했었죠. 이번 대회에서 어떤 성적을 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확실히 작년같은 수준의 대참사가 다시 반복되지는 않을것 같네요.
카르찌의 활약
정규 시즌 폼이 흔들린 시기도 있었고, 결승전에서 한스사마에게 압도당한 임팩트가 워낙 강했어서 그렇지, 카르찌가 무슨 함량미달의 원딜이었던 것은 애초에 아니기는 합니다. 좀 오락가락 해서 그렇지, 재능있는 선수고 팀의 캐리가 될 역량이 있는 선수였죠.
현재까지 대회 활약은 분명 기대 이상입니다. 카르찌가 라인전에서 한타까지 지금같은 역량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매드 라이언스의 그룹 스테이지는 C9 수준으로 험난했을수도 있죠. 아쉬운 실수도 나오긴 했습니다만, IW전 깔끔한 카이사 컨트롤 같은 장면들에서 볼 수 있듯이 선수 개인의 컨디션 자체가 상당히 좋아 보입니다.
지금의 폼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매드 라이언스의 이번 대회는 훨씬 수월해질 듯 합니다. 중후반 게임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초반 라인전에서의 활약은 정말 중요하죠. 플레이메이커인 카이저의 발이 풀리는 것, 그리고 향후 만날 우수한 서포터들 (베릴, 밍, 벌칸) 의 플레이를 억제하는 것 양면적으로 걸려있는 게 많으니까요.
지금까지 매드 라이언스의 봇듀오는 충분히 잘 해오긴 했습니다만, 일단 그룹 스테이지 상대 봇듀오들이 좀 무난한 상대들로 보여져서, 상위 단계에서 재차 시험대에 오르긴 할 것 같습니다. PSG의 봇듀오가 원래 상당한 실력의 봇듀오긴 합니다만, 원딜이 대타로 들어왔으니 그걸 감안해야겠죠..
메타 해석
매드 라이언스의 밴픽과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는건 대체로 "11.9 패치와 11.6 패치 사이의 변화가 그렇게 크진 않다" 라는 인식입니다.
리신, 럼블, 모르가나 등 주류로 떠오른 픽들, 그리고 헤카림과 같이 힘을 잃은 픽들 사이의 티어 정리는 필요하지만, 조합을 꾸리고 인게임 플레이를 펼치는 방향성은 플레이오프 때와 큰 차이는 없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해 왔죠. 변칙적인 픽들 (이를테면 원거리 서포터) 의 경우에도 '와 진짜 성능 좋다' 하고 검토는 해 봤지만 결국 대회에서 쓰기엔 기존 방식이 정답이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하고.
IW전에서 선보인 밴픽은 그냥 대놓고 LEC 플레이오프때 꺼냈던 조합이라고 봐도 아무런 위화감이 들지 않을 조합이었습니다. 물론 이게 정말 맞는 방향인가는 조금 더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매드 라이언스의 PSG전 밴픽은 캐드럴을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에게 칭찬을 받았지만, IW전 밴픽에 대해서는 갸우뚱하는 반응들이 있었죠.
아르무트가 인터뷰에서 '정글 포지션을 제외하면 지금 메타에서 꺼낼 수 있는 챔피언의 가짓수는 정말 많다' 는 이야기도 했고, 향후 대회가 진행되면서 여러 카드들을 꺼낼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치만 플레이 방향은 LEC 플레이오프 때의 추세를 당분간은 이어나갈 것 같습니다. 탑에서 나르/오공, 정글에서 우디르/볼베, 서폿에서 레오나/알리/노틸 류 챔피언을 꺼내들어 중후반 잠재력 있는 캐리들과 조합해 한타 밸런스를 우선시하는 식으로. 여기에 리신, 모르가나와 같은 몇몇 메타픽들이 추가되고 빠지고 하는 정도..
그만큼 익숙한 옷을 계속 입게 되는 장점도 있겠지만, 상대 입장에서는 쉽게 예측 가능한 팀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미드 코그모의 경우는 게임 이후 나온 인터뷰들을 보면, 스크림에서 팀적인 연습도 딱히 없이, 휴머노이드 본인이 조이 카운터로서 강력하게 주장해서 꺼냈다가 조합이 말려 실패한 느낌이라.. 이건 말 그대로 다시는 나오지 않을 사고에 가깝다고 봐야 할 듯 싶네요.
한타 의존도
유럽에서는 이번 플옵 한정 매드 라이언스보다 한타를 잘 하는 팀이 없었고, 지금 그룹 스테이지 단계까지도 크게 문제될 일은 아닙니다만, 럼블 스테이지에서 강팀들을 만났을 때는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측면입니다.
한타에 대한 자신감이 뿜뿜하는 팀이고, 실제로 늘 한타 시너지를 고려한 조합을 꾸리는 팀이긴 합니다. 또한 꽝 한타를 워낙 많이 해본 경험이 쌓여서인지 시야부터 탑/서폿 포지셔닝까지 싸움을 설계하는 역량이 국제적으로 봐도 꽤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기는 하죠.
좋긴 한데,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 혹은 '어떻게든 싸워야한다' 라는 생각에 너무 사로잡혀서 밟아나가야 할 기본기들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종종 들기는 합니다. 사이드 라인 관리에 허점이 생기는 장면들은 이미 이번 대회에서도 꽤 자주 나왔죠.
이순신 장군마냥 싸우는 족족 다 이기면 문제될게 아니지만, 럼블 스테이지와 다전제에서 강팀들 상대로는 또 딱히 그런 보장도 없죠. 게다가 기본적인 한타력에 더해 상대적으로 더 능구렁이같은 운영까지 능숙하게 할 줄 아는 담원, RNG를 상대로 이리저리 농락당하다 쓰러지는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지금의 메타에서 한타를 잘 하고 한타에 자신감이 있는 팀이라는것 자체는 중요한 강점이기는 하지만요. 클러치 한타에서 아르무트의 번뜩이는 감각은 정상급 탑라이너들과 비교했을때 꿀리지 않는다고는 생각하는데, 이것도 결국 한 번 맞대결을 붙어봐야 정말 그런지 가늠이 되겠네요.
순조로운 준비 과정
'이번 대회 스크림 성적이 괜찮다, 나쁘진 않다' 는 반응은 매드 라이언스의 모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의 입에서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스크림 성적이라는게 말하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니 구체적으로 어땠을거라 추측하긴 어렵지만, (예를 들어 담원이나 RNG 상대로 30% 정도 승률이더라도 본인들은 '이 정도면 괜찮다'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대회 준비 자체는 작년보다 훨씬 순조로운 듯 합니다.
카이저나 아르무트의 인터뷰를 보면 실제로 스크림 결과를 바탕으로 우승 도전에 대한 자신감을 얻어 갔다는게 느껴지죠. 선수들의 반응이 아이슬란드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담원 너무 세다' '이번 대회 통해서 많이 배워가겠다' 정도 느낌이었던 것에 비하면, 대회 준비 과정은 확실히 긍정적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경험은 이번 대회에서도 중요하지만 향후 서머 스플릿과 롤드컵까지 바라봤을 때도 매드 라이언스에게 큰 자산이 될 듯 싶습니다. 어쩌면 라이벌 관계(?)인 로그와의 격차도 MSI 경험 이후에는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드네요.
향후 대회 전망?
대회를 앞두고 매드 라이언스에 대한 국제적인 기대치가 워낙 낮았죠. C9보다 못하다는 평가는 굉장히 많았고, PSG보다도 밀린다는 의견이 상당히 나왔었으니까. (국내, 해외를 막론하고)
매드 라이언스가 담원이나 RNG만큼, 혹은 과거의 G2만큼 완성된 팀은 물론 아닙니다. 그렇지만 4강 진출도 어렵다는 예상이 쏟아지던 애초의 평가는 너무 작년 플레이인의 잔상이 강하게 남은 저평가였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그런 기대치는 좀 더 상회할만한 퍼포먼스를 보일 팀이라고 생각은 합니다.
플옵 우승을 안겨주었던 클러치에서의 집중력은 살아있고 봇듀오의 경기력이 결승전 때보다 많이 나아졌다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국제적인 미드 정글들을 상대로는 엘요야-휴머노이드가 우위를 보장하기 쉽지 않고, 긴장한 탓인지 흥분을 한 건지 침착한 게임 마무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분명 불안요소 입니다.
정말 재밌고 매력적인 팀인데 작년 플레이인 탈락으로 너무 안 좋은 이미지가 강하게 씌워져서, 이번 대회 성적과 무관하게 경기 내용 면에서 그런 편견을 좀 반전시킬 수 있었으면 싶네요. 내용이 삐걱거리긴 했지만 전승으로 1주차를 마무리 한 것은 좋은 스타트였고, 실수들을 잘 피드백 해서 나오면 그래도 대회의 강팀들을 상대로 좋은 승부를 펼쳐볼 저력은 보이는 듯 합니다.
유럽 내의 플레이오프에서는 미드정글 듀오의 존재감이 아주 뛰어났지만, 현재 담원/RNG와 비교했을때는 정글러를 중심으로 설계되는 초반 플레이가 상대적으로 단조롭고 덜 조직적이라는 느낌이 들긴 합니다. IW전 엘요야의 볼리베어 다이브 운영 같은것도 사실 플레이오프를 거치면서 너무 많이 보여줬던 플레이였죠. 이번엔 결과가 긍정적이지도 않았고..
엘요야는 분명 유럽의 미래를 짊어질 재능이기는 합니다만, 캐니언과 웨이라는 강한 정글러들, 그리고 강한 팀들을 상대로 어떤 퍼포먼스를 보일지는 기대 반 걱정 반이네요. 퍽즈나 캡스의 국제대회 도전도 첫 술에 배부르진 않았습니다만, 그래도 이번 대회 엘요야가 강렬한 임팩트를 남기며 유럽의 새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