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21일 So1배 스타리그 A조 테란 임요환 대 프로토스 박지호 경기
프롤로그 가장 훌륭했던 스타리그 에버 -2004-(
https://pgr21.co.kr/free2/30308)
1세트 815,.. "근성“
2세트 네오포르테... “해법”
3세트 라이드오브발키리 “무리수”
4세트 알포인트 “타이밍”
5세트 다시 815 “무아지경”
4세트 알포인트 “타이밍”
임요환 테란 7시 VS 박지호 프로토스 1시
임요환 승
임요환은 최적화 연구에선 선구자일 것이다. 해당 맵 최적화된 노림수를 고안해내는 전략가이자 ‘선기도’의 탐험가였다. 그를 주축삼아 팀 단위로 사고하고 연구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개별 맵을 넘어서 테란 종족과 전략 자체의 최적수를 찾아내는 것으로 나아간다. 그러니까 그가 집착한 것은 승리의 절대공식이었다. 수없이 많은 게임이 치러진 지금에 이르러선 어떠한 경우에도 승리를 담보하는 절대수란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저 물고 물리는 상성관계가 있을 뿐이라고.
그러나 당시엔 패러다임적 전략이 유효성을 증명하며, 또 다른 패러다임으로 건너가기 전까지 한 시기를 장악하곤 했다. 더욱이 전략별 상성이 제대로 확립되기 이전 시대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임요환은 절대성을 가진 패러다임을 기어이 찾아냈다. 대표적으로 에버2004에서 벙커링 치즈러쉬는 패러다임을 장악하는 최적 전략과 절대 공식에 그 자신이 얼마나 골몰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한동안 이는 ‘무적의 초식’이나 다름없었다. 그가 에버2004 4강에서 홍진호에게 3번 연속으로 같은 전략을 쓴 것은 그만큼 최적화된 절대 공식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데다가, 그 최적화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을 막아낸다고 해도, 심대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수. 그게 바로 절대 공식이다. 물론 이는 훗날 어떤 식으로든 극복될 테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의 고안자이자 설계자들은 한 시대의 패권을 쥘 수 있다. 이윤열과 최연성이 원배럭 더블의 최적화를 통해서 2000년대 중반에도 자신의 시대임을 웅변했고, 이를 극복한 것은 3해처리 운영이라는 새로운 절대 공식을 들고나온 마재윤이었다. 그것을 넘어선 것은 비수류로 불리는 신 경향성을 이끈 김택용으로 맞물리는 식(또 그것은 이제동식 6해처리 운영으로 극복된다)이다.
박지호도 물량 힘싸움 형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아비터를 통한 패러다임의 전환으로 증명해냈다. 박지호는 훗날 자신의 아프리카 개인방송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패러다임적인 전환을 이끌어내는 전략을 처음 고안한 선수가 우승을 차지해왔다고. 박지호가 같은 팀 선수였던 서경종이 뮤탈뭉치기 전략을 발견했을 때, 이건 우승도 할 수 있는 전략이라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너만 쓰라고 했다는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다. (박지호는 그러한 당부에도 서경종이 이를 박성준에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허탈했다고 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 그 자신 또한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가치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지호는 절대 공식에 집착하기 보다는 자신에게서 발원하는 어떤 근원적인 충동에 이끌리면서, 스타일리스트의 면모를 보이기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공식적인 판단 보다는 자신 안에서 긴박해지는 목소리를 따랐고, 질럿들이 한줄로 사지를 향해 뛰어나갔다. 그것은 최적화와 공식이 정립되는 시대엔 미욱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는 승부를 넘어서 그 이상의 절대 가치에 매달리는 어떠한 인간상을 드러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그는 자신 안에서 떠오르는 느낌을 그대로 따랐을 뿐이라고 한다. 그말은 사실이면서 또한 사실이 아닐 것이다. 한때 그와 신이 공유하며 서로 알던 것들을, 이제는 신만이 아는 것이리라 나는 생각한다.
4경기에서 임요환은 당시 프로토스를 상대하는 절대 공식이었던 FD(‘페이크 더블’ 혹은 ‘페이크 앤드 더블’)을 어김없이 꺼내든다. FD는 당대의 프로토스들을 압살하던 당시의 절대 공식이었다. 임요환은 알포인트에 대해서 만큼은 FD에 대한 가장 최적화 이해가 강한 선수였다. FD에 유리한 동선을 깨우치고, 최적화된 타이밍을 연마한 임요환을 이기기란 쉽지 않다.
그는 6마린과 1탱크를 착실히 쌓아 진출한다. 벌처 한 대가 본대를 향해 멀리서부터 달려와 합류한다. 그리고 어김없는 커맨드센터 확장. 철저한 공식을 따른다. 박지호는 초반 리버로 두텁게 수비진을 치면서 임요환의 초반 창 끝을 밀어낸다. 그러나 이미 손해를 본 뒤다. 임요환의 멀티가 완성돼있는 타이밍에 박지호의 확장은 3분의 2 정도다.
이후 이어진 박지호의 리버 기습은 꽤나 날카로웠지만 거기까지다. 임요환은 이미 프로토스가 3번째 멀티를 하는 타이밍을 귀신같이 잡아낸다. 그리고 정해진 타이밍엔 아무런 지체없이 진출한다. 본진을 지키던 탱크마저 합류한 전 병력을 휘몰아 금세 적의 확장을 깨부순다. 절대공식 그대로다. 임요환은 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박지호이 병력은 언덕 위에서 전재산이나 다름없던 멀티들이 깨지는 것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다. 기세에서 밀렸다는 직감과 불안감이 이제 슬몃 그의 뒷목을 타고 오른다. 도대체 어쩌다가 5경기까지. 그의 얼굴에 낭패감이 또 한번 스쳐 지나갔다. 패배를 인정하는 순간 역전의 분위기가 감돌고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터진다. 5경기를 앞두고 공기가 다시 팽팽해진다.
그러나 무적의 초식, 절대 공식은 임요환의 것만은 아니다. POS 박용운 코치는 이날 5경기를 위해 준비해놓은 전략이 있었다. 바로 본진 투 로보틱스 전략이었다. 빠르게 리버와 셔틀을 다수 확보한 뒤에 테란의 생산 기지를 장악하는 전략이었다. 박지호의 전략 파트너였던 박용운은 수없이 많은 경기를 통해서 이 전술을 막아낼 방법은 없다고, 이는 무조건 써야 할 전략이라고 그에게 조언을 건넸다.
전략가 박용운을 의심할 수 없음에도, 박지호는 고민에 빠진다. 내안의 직감을 따라서 물량 중심의 과감한 힘싸움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정해진 공식을 제대로 밟기만 하면지지 않을 전략을 택할 것인가.
박용운 코치가 4경기가 끝난 뒤 혼미한 표정으로 지쳐있는 박지호를 찾아가 어깨를 다독인다. 그때 박지호는 전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대신 그에 대한 미안함을 먼저 꺼내놓았다. “고생했으니까, 코치님께는 우승상금까지도 나눠주고 싶어요.” 꼭 우승하겠다는 다짐. 어쩌면 침착하게 판을 짜기 보다는 아직도 의욕과 자신의 충동과 감각이 앞질러 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박용운 코치는 불안감을 느낀다. 그리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5경기 박지호는 자신의 감각을 믿기로, 박용운이 고안한 전략을 쓰지 않기로 한다. 훗날 그 전략은 박지호가 한때 자신의 제자였던 오영종에게 넘기면서 추천했다. 절대지지 않을 전략이라는 설명과 함께. 실제로 그 리그 4강전에서 오영종이 괴물 최연성을 똑같은 전장에서 마지막에 쓰러트린 전략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박지호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그때 남의 말 좀 들을 걸 그랬죠” 그가 헛헛히 웃는다. 그러나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자신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감각을 좇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 장면을 몇 번을 되돌린대도, 박지호처럼 자기 확신과 자신 안에 있는 어떤 에너지를 좇는 사람이라면 똑같은 결정을 내렸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떠한 경우엔 그것은 절대가치에 몰입하는 예술가이기도 하고, 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지호는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승부사의 영역에 놓여있었다. 그점이 그에겐 필연적으로 큰 상처를 주게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