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18/10/26 01:49:06
Name GjCKetaHi
Subject [기타] 스피드런 이야기 (3) - 최초의 프로게이머
사실 이 이야기를 스피드런으로 다루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지금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어찌보면 스피드런 보다는 다른쪽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해야 할테니까요. 그렇지만, 스피드런의 역사를 얘기하는데 이 사람, 이 단체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여 결국 이 이야기를 지금 하기로 결정합니다.



초기의 오락실 게임들을 생각해 볼까요? 너구리, 동키콩, 갤러그 등 초기의 오락실 게임들의 특징은 내가 실력만 있다면 몇시간이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실 요즘 나오는 게임 중 '엔딩' 이 없는 게임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정확히 그 반대. 게임의 엔딩이 존재하는 게임을 찾기가 더 쉽지 않았죠. 그러다보니 초창기의 게임 하이엔드 플레이는 스피드런이 아닌 '하이스코어' 런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습니다. 오락실에 AAA 좌가 있듯,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그 게임을 잘 하는 사람은 당연히 그 게임으로 가장 높은 스코어를 올린 사람이였구요.

그럼 이 가장 높은 스코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당장 동네 오락실로 달려가서 갤러그를 플레이해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고 하죠. 그것을 사진으로 찍지도, 동영상으로 남기지도 않으면 그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즉, 기록은 '공식적으로 인정' 받는 과정이 꼭 필요하게 되죠. 우리가 흔히 '세계에서 제일 ~~ 한 사람.' 이라고 했을 때 참고하는게 기네스북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것이 모든 기록을 '공인' 해 주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입니다. 그럼 갤러그를 가장 잘 한 사람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게임에도 기네스북과 같은 것이 있나요? 그렇진 않습니다. 왜냐면, 게임도 기네스북에서 기록관리를 해 주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기네스 월드 레코드와 제휴를 맺은 Twin Galaxies 에서 기록 관리를 해줍니다.

대한민국에 비디오 게임이라는 것이 생경할 1981년 창립된 Walter Day가 설립한 Twin Galaxies는, 각종 아케이드 게임의 미국 기록을 만들어나감과 동시에, 주변의 아케이드 게임 고수를 모시고 토너먼트를 개최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대회가 이곳이 최초는 당연히 아니었겠지만, 중요한건 이 Twin Galaxies가 점차 성장해나가며 기네스 월드 레코드와 제휴하여 세계 기록을 공인하기 시작하였고, 이들에게 인정받은 기록만이 진정한 세계기록으로 여겨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에 멈추지 않고 1983년. 이들은 U.S. National Video Game Team 이라는 사실상 최초의 프로게임단을 설립하게 됩니다. 물론 이들의 형태는 지금의 프로게임단이 아닌 전국을 돌며 그들의 게임실력을 보여주는 게임 서커스단에 가까웠지만, 어쨌건 그들은 처음으로 '돈을 받으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Todd Rogers 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Todd Rogers는 Mr. Activision 이라는 별명답에 수많은 Activision 게임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게이머였습니다. 지금도 콜오브 듀티, 그리고 블리자드를 인수한 회사로 잘 알려져있는 그 Activision 이죠. 그 회사의 게임을 포함하여 정말 무수히 많은 업적을 가지고 있는 그는 초창기 비디오 게임의 레전드였고 그가 전술한 USNVGT 에 입단한것은 창단 후 3년이 지난 1986년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최초의 paid video gamer로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그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를 얘기하라면 저 아저씨가 사진에서 문서와 함께 들고있는 Dragster의 speedrun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게임의 역사를 아시는 분이라면 pitfall 이라는 게임을 아실거고, 그게 아니시지만 30대 이상이신 분들은 양배추 인형이라는 게임을 기억하실 겁니다. 사실상 지금의 액티비젼을 만든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게임은, Activision 이 내놓은 2번째 아타리 2600 게임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에 앞서 액티비젼이 내놓은 최초의 게임. 그것이 바로 Dragster 입니다. 게임을 한번 구경해보시죠.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게임은 자동차의 드래그 레이스를 게임화 한 것으로, 유저가 해야 할 일은 적절하고도 정확하지만 신속한 타이밍에 기어변속을 해 주는 것입니다. 뭐 아주 간단하죠. 사실 별로 재미가 있지도 않구요. 근데, 이 게임은 앞에서 설명한 Todd Rogers와 함께 게임사에 큰 족적을 남기게 됩니다.

Mr. Activision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는 게임이 나온 1980년, 5.51이라는 세계 신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이 기록은 앞서 설명한 인증기관들을 거쳐 (지금처럼 비디오로 찍지는 못하였고, 인증 사진과 공인 심판의 공증이 있었다고 합니다.) 기네스 월드 레코드로 지정이 됩니다. 사실 이런 게임은 어쨌건 완벽한 프레임에 몇번의 기어 조작 버튼만 누르면 되는거고, 그 시간마저도 정말 짧기 때문에 인간의 한계. 혹은 게임의 한계라는 것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즉 완벽하고도 깰 수 없는 기록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Todd Rogers는 그 완벽하고도 깰 수 없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냐구요? 그로부터 1년, 2년, 10년, 20년이 지났지만 그의 5.51은 고사하고 5.60 안쪽의 기록을 세우는 것 조차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아타리 쇼크가 발생하여 Dragster의 기기인 아타리 2600을 포함한 아타리가 멸망하고, 슈퍼마리오가 등장하여 일본 게임이 전세계를 휩쓸고, 닌텐도와 세가가 불꽃같은 경쟁을 벌이며 플레이스테이션이 등장하고 세가가 게임기 산업에서 철수하고 엑스박스가 등장하며 스타크래프트로 한국에서 e-스포츠가 등장하고 수많은 프로게이머들이 스타리그 프로리그에서 활약하다 LOL과 LCK등 전 세계의 수많은 LOL 프로리그가 발전하는 그 시간까지, 그의 5.51은 고사하고 그의 기록에 근접하는 사람도 없었으며, 2등 기록은 5.52도 아닌 5.57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사실 아타리 게임의 특성상 1프레임에 약 0.03초가 소요되기 때문에 2등 기록은 5.54여야 마땅했습니다.) 이 게임이 플레이타임이 몇시간이 걸리고, 정말 어려운 버튼의 조합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더라도 게임 기록이란게 조금씩 줄어들기 마련인데 이 단순하고도 짧은 게임이 30년이 지나가도록 경신이나 동률은 커녕 근접한 기록도 나오지 않게 되자, 사람들의 Todd Rogers에 대한 찬양은 점점 의심으로 바뀌어가게 됩니다. 사실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컴퓨터의 등장으로 고전게임의 스피드런은 TAS라는 프레임 단위로 최적의 버튼 조합을 찾아내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그렇다면 기계로라도 그의 기록이 나와야 하는데 말이죠.

그리고 이런 킹리적 갓심을 한 스피드러너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Eric Koziel, 닉네임은 "Omnigamer" 입니다. Omnigamer는 단순히 각 프레임에 최적의 버튼 조합을 찾는 것에서 벗어나, 메모리의 변수값을 바탕으로 역으로 게임 코드를 추적해 나가는 디셈블링에 들어가며, 그 결과 모두의 의심을 사실로 만들게 됩니다. 아래 영상은 시간이 남으면 보시기 바랍니다. 보는 재미가 있는 영상은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입력이 가능한 첫번째 프레임에 첫 입력 후 최적의 플레이를 할 시 가능한 기록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5.57이며 5.51은 커녕 5.54의 기록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던 결과가 모두 사실로 드러나게 되었고, 최초의 프로게이머는 그만 최초의 '조작범' 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2018년 1월, Twin galaxies는 그의 기록을 모두 삭제함과 동시에 그의 기록이 등재되는 것을 영원히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사실 그가 조작한 게임은 이 게임을 포함하여 상당히 많으나 그것은 스피드런의 영역이 아닌 하이스코어런의 영역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를 일컬어 사람들은 '80년대의 또 하나의 암울한 기록' 이라고 하였습니다. 현재의 육상 세계기록 중 상당수가 80년대 세워진 기록인데, 현대 스포츠학이 상당히 발달하였음에도 상당수 기록이 깨지지 않으니 사람들이 80년대 세계 기록 수립자에게 약물 의심을 하는 것과 비교되고 있는 것이죠.



현재 5.57의 기록을 세운 사람은 16명이며, 위는 그 중 한명인 darbian의 5.57 기록 수립 영상입니다. 굳이 이 친구걸 가져온 건, 이 친구는 향후 다시 한번 꼭 언급이 될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뭐 덕분에 액티비젼의 첫번째 비디오 게임이라는 상징적 의미말고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았던 이 게임이 40년 가까이 게임사에서 꼭 한번은 언급될만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으니, 이 또한 다른 시각으로 보면 참 재밌는 일 아닐까요?

p.s) 이 아저씨와 함께 기록이 ban 된 아저씨가 하나 더 있는데 그 아저씨의 이름은 Billy mitchell 입니다. 이 아저씨도 마찬가지로 장문의 글을 하나 쓸 정도로 유명한 분이지만 아쉽게도 스피드런과 관계없으니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p.s) 다음 주제는 미리 정했습니다. 간단하게 주제만 말하자면, "버그가 아니고 스킬인가?" 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세인트루이스
18/10/26 02:22
수정 아이콘
darbian 이 요즘 슈퍼마리오1 스피드런 현자타임이 제대로 온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ㅠ
18/10/26 02:38
수정 아이콘
대체 어떻게 그 시절에 조작을 할 수 있었던 걸까요? 참관인도 있었다는데..
애패는 엄마
18/10/26 03:25
수정 아이콘
흠 제 아는 분이 기네스 등재하면서 이런저런거 알게 되었는데 저기가 참관인 있어도 지금도 생각보다 그리 투명하지....
애패는 엄마
18/10/26 03:23
수정 아이콘
항상 꿀잼입니다 자주 올려주세요 빌리 미첼 아저씨도 겅금하네요
18/10/26 06:54
수정 아이콘
버그가.아니라 스킬인가 하니 왜...
뮤짤이 떠오를까여 ...
작별의온도
18/10/26 07:29
수정 아이콘
원래는 김창희 아입니까? 크크
18/10/26 08:59
수정 아이콘
조작범은...
윤보미
18/10/26 08:37
수정 아이콘
버그인가 스킬인가 에서 바로 떠오른건 아웃라스트 포탈이네요 크크
스피드런이라고 해야할지, 핵고인물의 스킬이라고 해야할지...
18/10/26 08:55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세종머앟괴꺼솟
18/10/26 09:19
수정 아이콘
다음 주제는 glitch인가요..?
즐겁게삽시다
18/10/26 09:25
수정 아이콘
와우 엄청 재밌게 읽었습니다
18/10/26 09:34
수정 아이콘
아... 이런 글 올려주시는 분들 정말 좋아요.
RedDragon
18/10/26 12:59
수정 아이콘
선추천 후 감상
18/10/26 13:49
수정 아이콘
근데 저런 게임에서 어떻게 조작이 가능해요? 프로그램을 수정할 수도 없을텐데.
GjCKetaHi
18/10/26 14:21
수정 아이콘
현재 가장 유력한 썰은 이미지는 조작 + 심판도 한패다 라는 겁니다.
及時雨
18/10/26 14:15
수정 아이콘
이야 이런 분야 역사 한국어로 정리하는게 진짜 만만치 않은 일인데 고생 많으십니다.
빌리 미첼... 은 AVGN 열심히 보신 분이면 이름 정도는 들어보셨을 듯 크크크
及時雨
18/10/26 14:17
수정 아이콘
믓믓호와이가 나올 때까지 열심히 기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당
18/10/26 16:53
수정 아이콘
좋은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몇년 전 DeepMind 의 AI가 학습 후 각종 아타리 게임에서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었는데 문제가 됐던 게임에서 기록을 테스트 했는지, 했다면 저 이론적 최고 기록에 얼마나 가까이 갔을 지 궁금하네요. 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4493 [LOL] 롤드컵 4강 2일차 후기 [88] TAEYEON11761 18/10/28 11761 3
64492 [스타1] ASL 시즌6 결승전 결과.JPG [44] 아라가키유이13849 18/10/28 13849 6
64491 [LOL] 삼촌들을 위한 세기말 꿀챔 가이드 [45] 빛돌v13089 18/10/28 13089 21
64490 [LOL] 살면서 처음으로 해본 E 스포츠 직관 [31] 신불해10374 18/10/28 10374 36
64489 [LOL] 롤드컵 4강 1일차 G2 vs IG 경기포인트 [16] pony8295 18/10/27 8295 4
64488 [LOL] 롤드컵 4강 1일차 후기 [135] TAEYEON11024 18/10/27 11024 2
64487 [스타2] 스투 블컨 한국어중계 관련얘기. [67] Yureka15282 18/10/27 15282 7
64486 [LOL] 롤드컵 4강 스텟 분석) C9 vs Fnatic [3] AlVin5865 18/10/27 5865 1
64485 [LOL] 롤드컵 4강 스텟 분석) IG vs G2 [22] AlVin7196 18/10/27 7196 3
64484 [기타] [스포 없음] 레드 데드 리뎀션2 첫인상 후기 [77] 부처12841 18/10/26 12841 0
64482 [LOL] 클템, 강퀴, 킹냐(장민철), 단군, 빛돌 토론 전문 [88] 내일은해가뜬다20681 18/10/26 20681 3
64481 [기타] [워크래프트3] 1.30패치 이후 현상황 [44] TAEYEON10804 18/10/26 10804 0
64480 [오버워치] 둠피, 솜브라 워치때문에 탱커 미치겠네요. [21] 교강용9810 18/10/26 9810 0
64479 [기타] 스피드런 이야기 (3) - 최초의 프로게이머 [18] GjCKetaHi10050 18/10/26 10050 28
64478 [스타2] WCS Signature Series [5] MiracleKid8746 18/10/26 8746 2
64477 [LOL] 북미 유럽 롤스타전 최종 득표 결과.jpg [40] MystericWonder11186 18/10/25 11186 0
64474 [기타] 게임 창세기전과 나의 십대 [54] 봄바람은살랑살랑8833 18/10/25 8833 2
64473 [LOL] 롤드컵에 대한 여러가지 잡담들과 이야기들.. (LCK 포함) [105] Leeka12188 18/10/24 12188 4
64472 [기타] 모바일 판 slay the spire, 'Night of the Full moon' [5] cluefake12918 18/10/24 12918 2
64471 [LOL] LCK와 이니시에이팅에 대한 진지한 고찰 (KT 경기들 분석) [49] 랜슬롯12084 18/10/24 12084 3
64470 [LOL] 롤드컵 4강팀 분석 [44] 니시노 나나세8848 18/10/24 8848 0
64469 [기타] 영웅전설 섬의 궤적 4 리뷰 : 드디어 지긋지긋한 섬궤가 끝나다.(스포 없음) [64] 잠이온다13714 18/10/23 13714 3
64467 [LOL] C9 아프리카 3경기 바루스 아이템에 대해서 [130] 와!17561 18/10/23 17561 1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