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루입니다.
이전 글에서 예고했듯이, 이번에는 박성균과 김택용의 곰TV MSL S3에서의 마지막 결전을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 이번 글은 쓰면서 상당히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놓고 보니 퀄리티가 좀 마음에 안 들기도 하고... 눈시BB님이 자유게시판에 연재하는 것을 흉내내 보았는데 그게 정말 어려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이번 경기는 어디에 빗대야 하나, 다음 재료는 무엇으로 삼아야 하나... 왜 글 한 편이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건지 이제서야 조금 알겠더군요.
저는 원래 글을 한 번 쓸 때 일필휘지로 갈겨내는 스타일인데, 이번에 글을 쓰면서 너무 답답하더라구요. 진짜 어려웠습니다. 중간에 계속 막히고, 어떤 식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까...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게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보통 생각을 많이 한 글은 결과물이 별로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구요(...)
어쨌든 좁은 시야로나마 최선을 다해 분석해 보았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분석한 것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게 제 바램입니다.
그럼, 이번에는 7년 3개월 전으로 돌아가 볼까요.
이전 글 링크 :
0. 전술, 작전술 그리고 전략과 RTS 게임의 상관관계
0. 기동전과 각 종족의 특성
1. Daum 스타리그 2007 결승전 제 5경기, 김준영 vs 변형태 @ Python
곰TV MSL S3 결승전 제 4경기
김택용 VS 박성균
Loki II
들어가면서
프로토스의 숙명은 판을 쥐고 흔드는 것이다. 겉으로는 힘싸움을 가장하지만 실상은 한 번 잘못 병력이 섬멸되었다가는, 아니 일부라도 각개 격파당했다가는 순식간에 말려버리는 종족이 프로토스이다. 저그는 순식간에 병력을 찍어낼 수 있는 빠른 생산체제를 갖추고 있고, 테란은 애당초 병력이 갈라질 일도 잘 없는데다가 개개 유닛의 효율이 타 종족에 비해 월등하다. 반면에 프로토스는 병력의 충원이 상당히 늦고, 개개의 유닛들이 강력하다고는 하나 그만큼 비싸기 때문에 손실된 병력을 찍는데 자원이 더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토스의 지상과제는 병력이 최대한 많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전제가 자동으로 깔리게 되고, 대신에 일단 병력이 살아 있다면 개개의 유닛이 강력한 만큼 타 종족보다 전장에서의 평균 생존시간이 길다. 그 약간의 좀더 길어진 생존시간을 이용해서 흔들어줄 수 있는 것이 프로토스인 만큼, 결국 프로토스가 택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교리는 소련식 기동전 교리가 된다고 이전의 글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
대단히 스타일리쉬했고 또 대단히 치열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았던 Daum 스타리그 2007 결승전 제 5경기와는 달리, 이 경기는 사실 굉장히 전형적인 양상으로 흘러갔던 경기이고,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그런 경기는 아니다. 이 경기가 마패관광의 시초였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도 잘 모르겠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명해 볼 여지는 상당히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이 경기를 재료로 골라잡아 보았다.
맵 분석 - 로키
센터에 아주 좁은 길이 있어 소형유닛을 제외한 나머지 유닛들은 빙빙 돌아가야 한다는 개념의, 당시로서는 상당히 신선했던 유닛 크기별 러쉬 거리 조정이라는 개념은 이 로키라는 맵이 처음 등장했던 곰TV MSL 시즌2 이전에 이미 블리츠X라는 맵에서 한 차례 등장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 맵과 블리츠X가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다음에서 기인한다.
블리츠 X
로키 II
블리츠 X의 경우는, 좁은 길을 통해서 유격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전투에 필요한 중형 이상의 유닛, 예컨대 테란의 경우 시지 탱크, 저그의 경우 럴커, 프로토스의 경우 드라군 등이 지나갈 수 있는 최단거리의 러쉬 루트는 한 개로 한정되어 있다. 그런데, 로키 II의 경우는, 8시 본진에서 출발하는 것을 기준으로 할 때, 9시 센터를 지나 12시로 경유하는 루트와 6시 멀티를 경유하여 3시 센터 방향으로 이동하는 루트가
시간상으로 별 차이가 없다. 이는 병력을 운용하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고민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A. 섣불리 병력을 이끌고 함부로 마구 나갔다가는 빈집털이를 대규모 병력으로 당할 가능성이 있다. 혹은 아군을 피해서 회전하여 나온 적의 대규모 병력에게 충원 병력은 충원 병력대로 차단당하고 나간 병력은 아예 포위 섬멸당할 수도 있다.
B. 그렇다고 양쪽 루트로 병력을 양분했다가는 각개격파당하기 딱 좋다.
C. 그렇다고 나가지 않고 죽치고 앉아만 있자니 멀티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서 상대방이 멀티를 다 가져가면 자원상 이길 수 없다.
A에 대해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이 맵은 마치
회전문과 같다. 가운데의 아주 좁은 점과 같은 길목을 회전문의 중심으로 했을 때, 경기 중에 병력이 어느 루트로 이동하느냐에 따라서 회전문이 돌아가는 방향이 달라질 뿐, 기본적으로 회전문이라는 특성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테란 대 프로토스의 입장에서,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 테란은 더더욱 골머리를 썩힐 수밖에 없는데, 정지 방어에 최적화된 테란의 병력이 어디 정지 방어를 할 만한 구석이 마땅치 않은 것이다. 멀티를 가져가려면 어쨌든 병력이 나와야 하는데, 대병력의 빈집털이가 용이한 특성상 프로토스 특유의 흔들기가 빛을 발할 만한 맵이 되며, 더구나 테란의 주력병력이 기갑을 위시한 지상군인 데 반해 프로토스의 병력은 최종 테크까지 올렸다고 가정했을 경우
이러한 복잡한 회전문 같은 맵의 지형적 특성을 모조리 무시할 수 있는 공중군이 된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맵의 특징은 프로토스에게 상당히 웃어 주는 편. 실제 전적은 10대 9로 5:5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해설진과 프로게이머들이 실제로 이 맵에서는 프로토스가 유리하다고 이야기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다만 그렇다고 테란이 암울하냐, 완전히 암울하다고 보기는 또 어려운 것이, 회전문의 특성상 운동장이 없는데다가,
많은 구릉지와 좁은 길목은 비록 정지 방어가 맵 전체의 특성상 까다로워진다한들 일단 교전이 일어났을 때 테란의 기갑병력에 손을 들어주기 때문에,
교전 여하에 따라서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예컨대 아예 캐리어나 아비터가 뜨기 전 타이밍에 경기가 끝나버린다던지. 그리고 실제로 의외의 교전 하나가 판세를 완전히 바꾸어 버린 경기가 이 경기다.
경기 리뷰 :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흐름
경기의 초중반은 별다른 교전이 없는, 저그 팬 입장으로서는 하품이 나올 만한 전형적인 평범한 수순이었다.
무난하게 서로 뒷마당을 가져가고 먹고 싸우겠다는 심산.
다만 김택용은 상당히 수비적으로 몸을 사리는 플레이로 나왔는데, 아무래도 2:1로 밀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입구 쪽에다가도 스팀팩 마린메딕 러쉬를 의식한 캐논을 지었고, 뒷마당에도 캐논을 짓는 모습이다. 문제는, 입구 쪽에 캐논을 지은 것을 SCV가 보았다는 것.
이 커맨드 센터가, 5마린 1팩 1탱크 상태에서 올라가는 트리플 커맨드이다. 물론 아카데미와 아머리를 짓기는 했지만, 상당히 과감한 플레이임에는 틀림없다. 일단 자원력에서는 박성균이 확실히 우위에 선 모습.
김택용도 앞마당까지 가져가긴 가져가는데, 이 가져간 시점에서 테란은 이미 앞마당 커맨드센터를 거의 완성시킨 시점이었다. 여기에 팩토리 하나와 스타포트 하나가 추가로 올라가는 상황이고, 김택용은 막 로보틱스 서포트베이가 완성된 시점.
스타포트 하나에서 레이스 찍고 애드온 달고 팩토리를 4팩까지 늘리면서, 박성균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전형적인 수순으로 차근차근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김택용의 셔틀 리버도 뭐 딱히 한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
경기 리뷰 : 중반전
결국 여기서 김택용은 빠르게 캐리어를 가는 모험수를 던진다. 김택용의 캐리어가 왜 모험수인가? 이는 캐리어에 관련된 자원의 문제가 가장 크다.
A. 캐리어는 일단 자체 생산만으로도 미네랄 350, 가스 250을 먹는 괴물인데다가, 공격을 위해서 뽑아야 할 인터셉터 8기가 또 합이 미네랄 200이므로 총합 미네랄 550에 가스 250이라는 어마어마한 자원을 소비하는 유닛이다. 같은 자원이면 골리앗이 5기가 나오는데, 이는
테란과 같은 자원을 먹고서는 절대로 제대로 싸울 수 없다는 말.
B. 게다가 인터셉터가 실드 40 체력 40인데, 골리앗 하나의 데미지가 24에 폭발형이므로 골리앗이 대충 인터셉터에 미사일 5~6발만 갈기면 인터셉터는 그냥 녹아내린다.
C. 여기까지만 해도 미칠 노릇인데 심지어 보통 업그레이드는
테란이 프로토스보다 빠르다.
D. 결론적으로, 같은 자원을 먹는다는 전제 하에 순수 교전비로만 따지게 된다면, 캐리어 한 대가 골리앗을
못 해도 7대 정도는 잡아 줘야 한다는, 무슨 2차대전 당시의 티거가 T-34 잡아내듯 하는 교전비를 성립시켜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이 나와버린다.
하지만 캐리어를 가는 데는 그만한 이점이 있기 때문에 가는 것이기도 하다. 캐리어를 다수 확보했을 때의 이점은 다음과 같다.
A.
지형을 무시할 수 있다. 특히나 로키같이 여기 쳤다 저기 쳤다 하기 쉬우며, 테란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센터 측의 멀티와 뒷마당 사이의 지상 거리가 정신나갈 정도로 길어서(공중거리는 가까움) 캐리어가 치고 빠지기 쉬울수록 이러한 특성은 극대화된다.
B. 캐리어 자체의 맷집.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골리앗의 캐리어 포위 섬멸 시도만 잘 피할 수 있다면, 상당히 장기간 동안 프로토스는 공세를 지속할 수 있다. 캐리어를 통해 공세를 지속하면서 멀티를 먹고 조합을 갖춰나가는 것이다.
C. 일단 골리앗을 강제하게 되면, 그만큼 지상군에 취약해진다. 골리앗의 대공 화력은 어마어마하지만, 지상 공격력은 공격력 자체도 별 볼 일 없고 그나마도 연사력이 상당히 느리다. 게다가 템플러라도 조합되었다가는...
D. 때문에 캐리어가 시간을 벌면서 지상군이 완전히 갖춰지게 되는 시점이 되면, 공중에서 캐리어가 전차를 솎아내는 동안 지상군은 골리앗을 밀어버림으로써 경기를 끝내거나,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캐리어를 이용한 상당한 전술/전략적 우위에 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결론적으로는
캐리어를 얼마나 잘 지켜서, 공세를 유지하느냐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둘 중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캐리어를 잃어버릴 경우에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고, 공세를 유지하지 못하면 결국 자신의 자원줄이나 병력에 타격을 줄 만한 상황을, 아니 하다못해 병력이 나올 시간이라도 상대에게 벌어 주게 됨으로써 차후의 경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다만 기가 막힌 스캔 활용으로 김택용의 의도는 박성균이 파악한 상황.
박성균은 일단 벌쳐를 약 9기 정도 출동을 시켰는데, 몰래 멀티 같은 게 있었나 하고 파악하고자 했던 의도로 보인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같은 자원을 먹고 캐리어를 쓰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캐리어를 가는 것을 보고 박성균은 아마 의아했을 것이다. 속된 말로,
대체 무슨 깡으로? 내가 모르는 멀티가 있나 하고 정찰해 보는 것이 그 목적이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는 근거는 이후의 미니맵을 주시하면 알 수 있는데, 박성균이 본진에서 또다른 벌쳐를 보내면서 11시의 미니맵상의 검은 부분까지 싹 지우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제서야 김택용은 5시를 가져가는 모습이었다.
스타게이트에 불이 들어오고 업그레이드까지 해 주고 있는 김택용. 박성균이 5시 멀티가 지금 돌아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미지수지만, 아마 5시 멀티가 돌아가고 있는 상황까지는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단 스캔도 있거니와, 박성균이 벌쳐를 돌리면서 멀티를 체크할 때 그때서야 김택용은 5시로 벌쳐 난입을 막기 위해서 파일런으로 입구를 막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래서 박성균은 자신이 프로브 피해를 크게 주기로 마음을 먹고, 벌쳐를 한 부대 정도 본진에 난입시켜 보기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김택용의 순간적인 반응이 빛을 발했는데,
벌쳐를 프로브로 막아버린 것. 이것은 자원적인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는 것도 크지만
그만큼 캐리어가 나올 시점 및 그 이후의 전투력을 보장받았다는 사실이 더 크다. 프로브 피해가 막심했다면, 설령 테란과 프로토스의 병력이 서로 교전을 벌여서 프로토스가 잡았다 한들 이후의 공격이 힘있게 지속되기가 어렵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기 때문.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캐리어 자체가 또 미네랄 먹는 괴물 아니던가.
일단 이 시점에서 박성균의 선택은 2업 타이밍에 진출하면서 3시 멀티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해설진이 지적했듯이, 캐리어가 나와서 막을 준비가 완료되어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 가면서 타이밍을 조금 늦춰서 진출하는 것. 그리고 개인화면상으로 보았을 때의 병력 구성은 벌쳐 14기, 탱크 10기, 골리앗+베슬 10기, 그리고 본진에서 찍히고 있는 벌쳐와 탱크였다.
골리앗이 아니라 벌쳐와 탱크를 계속해서 찍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캐리어는 나온 골리앗으로 어떻게든 막고 지상을 확실하게 밀어버리겠다는 심산이었으리라. 그리고 박성균은 3시 멀티를 가져가려고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쪽에서 교전을 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보급선에서 되도록 멀리 교전하는 것은 병법의 기초이다) "회전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밀기 시작한다.
김택용은 일단 캐리어가 나올 시간을 벌기 위해서 병력을 이용하는 모습이다. 시지 모드가 올라가면 빼고, 시지 모드를 풀면 한 기의 벌쳐라도 더 잡아내고, 그런 식으로 상대방의 발을 자꾸 묶으면서 캐리어가 준비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는 전형적인 프로토스와 테란의 전투 양식이다.
이 과정에서 달랑 하나 있었던 김택용의 셔틀이 잡혀버리는데, 이 때문에 테란은 조금 더 마음놓고 상대방을 향해 진군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아무리 질럿과 드라군이 많다고 한들 뒤쪽에 시지 탱크가 한 부대가 지원사격을 해 주는 와중에 그 시지 탱크를 효율적으로 잡을 수 있을 만한 수단인 셔틀을 잃은 것은 큰 낭패. 때문에 프로토스는 그 순간 교전을 포기하고, 여기에서 김택용의 판단이 빛을 발한다.
3시 멀티 공략. 일단 이 시점에서 김택용의 판단은 이랬을 것이다.
A. 나는 5시 멀티를 포함 도합 4개의 멀티를 굴리고 있다. 상대방 역시 4개의 멀티를 굴리고 있다.
B. 내가 설령 앞마당을 내준다 한들, 박성균의 3시 멀티를 공략하면 멀티 수에서는 아직 여전히 동등하다.
C. 앞마당은 복구가 쉽지만, 9시 멀티를 한 번 잃으면 복구하기 쉽지 않다.
D. 여기에 저 병력이 충원병력을 끊어내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고, 본진으로 들어오는 병력을 막기만 하면 이후에 캐리어를 통한 공세까지도 충분히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 된다.
E. 골리앗의 수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으므로 현재의 캐리어 수를 보았을 때 본진은 어떻게든 막을 만하다.
즉, 필자가 보기에는, 김택용이 앞마당을 내준다는 것은 이미 머릿속에 계산된 일이었다. 바로 그렇기에 앞마당을 필사적으로 방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저러한 판단이 가능했다고 보며, 이후의 경기 양상으로 볼 때 3시 멀티 공략은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3시 멀티를 정리했다 싶으니까 바로 상대방의 앞마당 방향으로 들이닥치는 공격.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꼴아박는 듯한 움직임지만 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은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군사용어 중에 파쇄공격(破碎攻擊)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적이 공격을 준비하기 위해 집결 중이거나 대형을 갖출 때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취하는 공세를 말한다. 3시를 정리하고 남은 병력이 앞마당으로 들이닥치는 것이 바로 상대의 충원병력을 끊고 상대를 흐트러놓기 위한 파쇄공격의 표본이다.
이 와중에 실제로 골리앗의 수가 많이 줄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캐리어가 쌓이기 시작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의 상대의 본진에 대한 공격은 여의치가 않은 상황.
그러니까 박성균은 5시 공격을 위해서 물밑 작업을 시도하는데,
이게 아까의 파쇄공격 때문에 탱크로 문을 열어도 여기에 벌쳐가 투입되어 프로브를 싹 말릴 만한 상황이 못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결국 그 파쇄공격으로 김택용이 얻어낸 전과는
자신의 본진을 치러 온 병력을 퇴각하게 만들면서 입히는 손실과 - 나폴레옹이었나, 손자였나, 여하간 고래로부터 유명한 전술가들은 죄다 퇴각이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퇴각은 병력을 잃기만 할 뿐이기 때문에 -
5시도 효과적으로 지켜내면서 덤으로 3시 멀티를 밀어버리기까지. 한 번의 파쇄공격과 정확한 판단이 김택용에게 안겨준 것은 엄청난 것이었다.
잠시의 소강상태 후
상대의 보급선을 말려버리기 위해 출동하는 캐리어 대부대의 위용. 박성균이 모아놓은 벌쳐를 출동시켜서 상대의 앞마당을 견제하는 성과를 얻어내기는 했지만, 3시와 뒷마당 그리고 5시간의 공중간의 거리가 엄청나게 짧다는 맵의 특성 때문에 박성균은 눈뜨고 뒷마당과 3시 멀티를 동시에 날려먹게 된다.
뒷마당 깨지고 3시 깨지고 5시까지 막히는 박성균의 병력. 이 시점에서 박성균은 자원난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까진 좋았다.
경기 리뷰 : 후반전
이걸 김택용의 치명적인 실책이라고 해야 할지, 박성균의 나이스 판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후자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박성균은 여기에서 클로킹 레이스를 준비하는데,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좋은 판단이었지만 실은 잡히면 캐리어로 본진 밀리고 경기 끝날 걸 각오해야 하는 상당히 위험한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레이스를 선택한 것이 아주 좋은 판단이라는 것은 이런 이유를 들 수가 있다.
A. 5시 - 3시 멀티 - 상대방 뒷마당의 공중간의 거리는 짧지만, 5시와 8시 본진의 거리는 멀다.
B. 어차피 옵저버가 있으면 클로킹 레이스는 안 먹힐 것이고, 그러면 경기는 지는 것인데, 사실 그건 본진에 골리앗이 있어도 지형 때문에 지는 건 매한가지다. 그렇다면 옵저버가 없을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고 지상군은 본진방어와 공격으로 화력을 나눌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쪽에 완전히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C.
어차피 상대방은 이미 5시를 펑펑 돌리고 앞마당까지 재건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는 내가 죽는다.
D. 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보았을 때,
본진 방어는 소수의 클로킹 레이스로 끝내고 가용 병력은 죄다 상대방의 본진을 공격해서 상대방의 캐리어가 먼 길을 오게 만들어 시간을 벌거나, 막대한 피해를 입게 강요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다.
E. 여기에 한 가지 이점이 더 있는데, 어차피 클로킹 레이스로 방어를 선택했다면 이 시점에서 굳이 골리앗을 뽑을 이유가 없다. 그렇다는 것은
적의 지상군을 섬멸할 화력의 기반인 벌쳐와 탱크를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병력이 집중된다는 것은
화력이 그만큼 세진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의 지상군을 잡아먹기 위해 나올 상대방의 지상군에게 큰 피해를 강요하거나, 잘하면
역으로 상대방의 지상군을 섬멸해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걸 가리켜서 신의 한 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박성균 입장에서 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었던 것이, 마침 룬의 아이들 데모닉편에 이런 글귀가 있다.
앉아서 죽기만 기다리는 것을 누가 전략이라고 부르겠는가?
이 시점에서 김택용의 지상군은 이것이 전부였는데, 한 눈에 봐도 빈약해 보인다. 만일 상대방이 클로킹 레이스가 아니라 본진에서 계속 골리앗을 뽑는 것을 방어하고자 했다면 이 정도의 병력으로도 무리가 없었겠지만, 상대는 그럴 심산이 아니었고,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 비해서 화력에서 밀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옵저버가 없었다는 단 하나의 실수 때문에 캐리어는 이렇게 캐리어대로 클로킹 레이스에 두세 기가 요격당하면서...
본진의 병력마저 괴멸당해서 앞마당이 위험해지는 결과까지 초래하게 된다.
고래(古來)로부터 이어져 왔던 아주 전형적인 전술 중에 망치와 모루 전술이라는 것이 있는데, 보통 이 전술은 상대방의 병력을 포위 섬멸할 때 쓰는 전술이기는 하다. 상대방의 병력을 몸으로 받아내면서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망치"들이 상대방을 포위 섬멸하는 이 망치와 모루 전술은 전술의 고전이자 기본인데, 어떻게 보면 이것도 망치와 모루 전술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모루, 즉 자신의 지상군이 상대방의 공격을 받아내는 동안 망치인 캐리어가 상대방의 전략적 기반을 싹 정리하는, 일종의 전략적 단계에서의 망치와 모루 전술이라고 할 수 있는 건데,
옵저버가 없었다는 단 하나의 실수 덕분에 망치가 약화되었고 뒤이어 모루가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결국 앞마당이 박살나면서 상황이 이상해졌다. 캐리어는 그 자체로 미네랄을 계속 소비하는 유닛인데다가, 이런 식으로 제대로 돌아가는 멀티가 줄어들게 되면 공세가 효과적으로 이어질 수 없고, 상대의 지상 병력을 정리해야 하는 압박까지 덤으로 작용하게 된다. 앞서도 말했지만
같은 멀티를 먹고서는 절대로 싸움이 성립이 안 되는 게 캐리어다. 그래서 이 자체로 이미 김택용의 상황은 매우 위험한 것이나 진배없게 되었다.
본진에서 충분한 피해를 줄 때까지 포격하고 있는 지상군. 이 와중에 박성균은 12시 멀티까지 시도하고 있다.
게다가 클로킹 레이스와 김택용 본인의 컨트롤 미스로 인해서 그 많은 캐리어가 고작 3대로 줄어들어버렸다. 어떻게 보면, 캐리어로 경기를 끝내야 했던 상황에서 끝내지 못했고 지상군까지 궤멸당한 이 시점에서 김택용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단 한 번의 전투에서 모루가 박살난 것, 그리고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망치가 크게 약화된 것, 둘 중 하나만이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렵지만 그래도 경기를 가져오는 것이 불가능까지는 아닐 상황이, 둘 다 일어나버리면서 완전히 김택용을 향한 헤드샷을 선사한 것이다.
탱크와 골리앗은 빼서 5시 공략의 화력을 극대화하고, 별 거 없는 본진은 벌쳐로 정리하겠다는 심산.
그 와중에 캐리어 한 대가 또 줄어들고...
드디어 박성균의 병력이 5시로 들이닥치기 시작한다.
지상군의 보조가 없는 캐리어가 하나둘씩 떨어지고...
12시가 돌아가면서 완전히 게임은 박성균의 손으로 넘어갔다.
마지막으로 5시를 밀어붙이기 위해 병력이 자리를 잡아버렸고, 이걸 캐리어 셋과 드라군 셋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김택용 진짜 힘든데요! 자신이 혁명을 만들어냈었던 바로 그 공간에서! 이제는 못 이깁니다!" - 이승원 해설위원
"근 3년 동안 MSL에서 테란, 기를 못 폈습니다! 박성균이! 박성균이 내가 주인공이다! 내가 주인공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 김동준 해설위원
"GG!!!!"
총평
분명히 중반까지는 암울해 보였고, 어려운 경기였던 것을 뒤집었던 것은 박성균의 날카로운 판단과 김택용의 치명적인 실책이 어울린 결과였다. 캐리어가 오래 살아 있었으면 엘리전으로 나갈 가능성은 어려웠을 것이고 오히려 박성균의 본진이 점거당했을 터이며, 모루 역할을 할 병력이 시간을 오래 끌고 살아 있었으면 앞마당은 날려먹을지라도 그 병력으로 5시를 지키면서 어떻게든 시간이라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겠지만 결국 김택용의 비극은 캐리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데 있었다. 무모한 공격은 아니었다. 그렇게 볼 수 없는 병력이었고 그렇게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상대방의 정확한 예비대 투입과 시기적절한 공격이 김택용의 모든 것을 망가뜨려버렸다.
필자가 이 경기를 몇 번이고 돌려보면서 밤낮으로 고민했던 것이, 동서고금을 통해 고래로 이러한 전투양상이 있었느냐는 것이었다. 지난 글에서는 적의 공세를 막아내고 막아내다가 적이 공세종말점에 달한 시점에 반격작전을 펴서 상대방의 병력을 섬멸하고 하리코프까지 탈환하면서 전선을 뒤로 밀어버린 제3차 하리코프 전투와 비교할 수 있었지만, 이번 경기는 그러한 양상이 대체 있었기는 했던 것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상당히 특이한 양상이었다. 상대방의 망치가 약화되고 모루는 아예 박살나버린 그런 전투. 굳이 공통점이 있는 전투를 찾자면, 아마도 정확한 예비대의 투입과 공세적인 방어로 본진을 사수해 냈던 발터 모델(Walter Model, 일명 방어의 사자, 또는 총통의 소방수)의
르제프 전투가 아마 이 경기와 비슷한 양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단 한 번의 전술적인 판단. 그것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졌고, 그 한 번의 전술적인 판단으로 전략적으로 완전히 밀리고 있었던 것을 뒤집어버렸다는 측면에서는 에리히 폰 만슈타인의
지헬슈니트의 그것과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당시 독일군이 영국군과 프랑스군에 비해서 전차의 성능이나 공군력은 크게 뒤지고 있었지만, 정확한 단 한 번의 공격, 특히 정확한 위치에의 화력의 집중으로 벨기에 일대에 프랑스군을 가둬버렸고, 그 동안에 마지노선 방면의 본진방어는 불과 몇 사단으로 각종 기만술을 써 가면서 버티는... 마침 또 맵이 거대한 회전문과 같은 점이 또 비슷한 점을 연상케 한다.
예전에 필자가 썼던 글에,
"단 한 번의 작전술적 움직임으로 전략적 열세를 극복했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번 경기에서 박성균이 보여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단 한 번의 작전술적 움직임 - 클로킹 레이스와 지상군의 양동작전 - 으로 모든 것을 뒤집어엎고, 결국 박성균이 우승컵을 들어올릴 수 있었다. 그러한 전술, 불리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 전술적 판단의 표본이 바로 이 경기라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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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구 vs 도재욱, Incruit 스타리그 2008, Plas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