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타루입니다.
요즘 빈 시간이 좀 많이 나오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요. 스타1도 어쨌든 양대리그 체제를 갖추게 되면서, 제가 그걸 챙겨보는 입장은 아닙니다만, 추억의 명경기들을 골라서 리뷰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얼마 전에 제가 기동전에 대한 글을 길게 적었던 적이 있었죠. 그 연장선상이라고 보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저는 밀리터리 중에서 전술 쪽에 관심이 큽니다. FPS는 아예 못 하고(동체시력이 나쁜 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월오탱도 저와 맞는 타입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HoI2같은 역설사의 게임이 가장 잘 맞죠. 뽑고 전술적으로 상대 병력을 잡아내고 이득을 얻거나 합병하는 세계정복류(...)가 저와 가장 잘 맞는 타입입니다.
여하간, 전술 및 전략적인 측면으로 경기를 분석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억은 추억대로 되살려 보면서, 이런 측면으로 예전 경기를 보면 더 재미있구나, 이런 정도로 느껴 주시면 만족할 것 같네요.
뭐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했는데, 기본적으로 눈시BB님이 자유게시판에 연재하는 것과 비슷한 류라고 생각하시면 뭐 적당하지 않을까요. 스타리그, 그 긴 역사의 일부를 조명해 보는 글이니까요. 제가 좀 게을러서, 그리고 스타리그를 본 기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연재까지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떠오르는 게 좀 있다 보니, 꾸준히 연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첫 재료는 최고의 결승전이라 불리는 Daum 스타리그 2007에서 가져와 봤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김준영선수의 팬이기도 하고, 지난 스타리그 VOD를 다시 보면서 가장 먼저 본 경기가 이 경기였거든요.
그럼 7년 반 전으로 돌아가보도록 하죠.
Daum 스타리그 2007 결승전 제 5경기 Match No. 1420
김준영 VS 변형태
Python
들어가면서
이전에 필자가 작성했던 글의 댓글 중에, 이런 댓글을 달은 적이 있다.
이게 변형태가 희대의 스타일리스트인 이유가, 테란의 유닛들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 버린 것이 그 이유라고 봅니다. 그 특유의 공격성이라는 것은 보통 저그의 공격과 유사한 면이 있는데, 마인과 탱크, 혹은 마린 메딕으로 상대의 정지 방어(성큰밭 등) 혹은 주력병력을 다 박살내버린다는 점이 있죠. 저는 테란의 유닛들을 그 고정적인 면(이동 불가인 시지 모드, 미사일 터렛, 스파이더 마인)에 주목하여 정지 방어에 최적화된 유닛이라고 해석했지만, 변형태는 오히려 그 유닛들의 화력에 주목해서 화력으로 적을 섬멸하는 데 최적이라고 판단한 거죠. 단순히 특정 유닛을 매우 사랑하는(심소명의 히드라, 이제동의 뮤탈 등) 스타일이 아니라 "아예 종족의 특성 자체를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 프로게이머는 아마 변형태가 유일하지 않나,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변형태의 경기가 특이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방어가 미덕이라는 테란인데 변형태는 테란의 유닛으로 방어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테란과 변형태를 다르게 만드는 점이며, 또한 변형태의 경기에 있어서, 그가 지건 이기건간에 여타 테란 프로게이머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재미를 주는 요소이다. 어렵게 이야기했는데, 변형태는 그 당시에 쓰였던 용어 중 하나인 소위 "양산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변형태의 특성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There is only attack and attack and attack some more. - George S. Patton
공격 아니면 맹공격. - 조지 S. 패튼
파이썬이라는 맵
알다시피 변형태는 2006년까지는
저막 소리를 듣던 테란이었다. 오죽하면 당시에 한때 공식전 테란 대 저그 20 : 3까지 벌어졌던 롱기누스에서 저그가 이기려면
변형태를 만나야 한다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그런데, 필자는 이 파이썬이라는 맵은 변형태의 특성을 아주 잘 드러낼 수 있는 맵이라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변형태의 이 맵에서의 승률은 통산 12승 6패, 저그전은 5승 3패로 그래도 중박 이상은 친 편이다(그 3패 중 하나가 이 경기고 나머지 둘은 각각 주영달과 이제동에게 패했다). 그 이유를 필자는 맵에서 찾고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파이썬의 테저전의 경우, 이전 글에서 필자가 정의하고 근거를 댔던 각 종족의 일반적인 기동전의 특성이 드러나기
매우 어렵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변형태의 스타일이 빛을 발한 전장이라는 것이 필자의 분석.
1. 파이썬은 센터가 광활한 정도를 떠나서
아예 뻥 뚫려 있다. 이렇게 센터가 넓어 버리면 테란의 정지 방어는
상대방의 병력을 상대방의 앞마당에 가둬놓고 패지 않는 이상 그 효율이 엄청나게 떨어진다. 정지 방어는 기본적으로 통로가 좁고, 공격의 방향이 한정되어 있을 때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한다. 반대로 통로가 넓거나 공격의 방향이 한 방향이 아니라면 전형적인 포위당하는 양상이 되기 때문에 화력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킬 수 없으며, 때문에 단위 면적당 화력이 약해지는 수순을 불러와서 결과적으로 일점 돌파를 강제하는 상황보다 훨씬 병력이 섬멸되기 쉽다. 때문에 센터에서의 정지 방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테란이 드러누울 수 없다는 말.
2.
근데 이 광활한 센터는 저그 입장에서도 난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데, 스웜 없이는 유닛의 개개 화력과 사거리에서 밀리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싸움을 해야 하는 저그로서는 상대방에게 스웜을 쳐 봐야 상대방이 넓은 센터를 이용해서 쭉 빼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센터가 너무 광활하기 때문에 뒷길을 막기도 매우 어렵다. 이래저래 정지 방어도 안 되는데 그렇다고 스웜 전투를 하기도 어려운 전장이 파이썬의 센터이다.
3. 게다가 맵의 특성상 앞마당만 나가면 바로 센터이고 다른 가스멀티의 입구도 너무나 광활하기 때문에,
테란이 센터를 쥐고 흔들게 되면 저그는 당시 공식이던 3가스 디파일러 이후 4가스 울트라를 띄우기는커녕 3가스를 먹는 자체가 힘들다. 다시 말해서 안 그래도 비효율적인 전투를 감수해야 할 판인데 그나마도 쉬운 게 아니다라는 것. 저그의 특성인 섬멸기동전을 발휘하기가 너무나 힘든 전장이라는 이야기이다.
때문에 테란이 가둬놓고 패기도 빡세지만 그렇다고 저그가 적을 섬멸하기 쉬운 맵도 아니기 때문에 서로 불리하게 5:5로 맞춰지는 전장이(...) 파이썬이 된다. 그래도 러쉬 거리상 타이밍 잡고 테란이 가둬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맵은 테란에게 약간 웃어 주는 편(실제로 TLPD 기준 전적이 181 : 147, 약 55 : 45 정도이다).
경기 리뷰 :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흐름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초반의 출발은 정석대로였다.
보다시피 전형적인 원배럭 더블 vs 3해처리, 7뮤탈 띄우고 시간 벌면서 가스멀티를 가져가는 수순이다.
이 럴커 에그를 잘 기억해 두시길.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이 두 기의 럴커가 이 경기를 숨막히는 명경기로 만들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먹기가 빡세다는 3가스라고 해도 어쨌든간에 멀티는 멀티이기 때문에, 시간을 주면 안 된다. 그래서 변형태는 김준영을 상대로 3탱크 타이밍 러쉬를 선택했지만, 5경기까지 간 탓에 집중력이 흐려진 탓이었을까. 스탑 럴커에 걸려들면서, 변형태는
저그가 디파일러는커녕 하이브도 안 간 상황에서 대전과를 올리게 하는 대실수를 저지른다. 그런데, 이 대전과로 인해서였을까? 결과적으로는 김준영의 실수가 된 중요한 장면이 등장한다. 미니맵을 잘 보면, 12시 언덕에서 삐대고 있어야 할 럴커가 버로우를 풀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목적은 적의 충원병력을 끊는 것이고, 또 그 생각대로 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 되었겠지만,
문제는 럴커가 충원병력을 끊기 위한 위치까지 가야 할 거리가 충원병력이 이동해야 할 거리보다 훨씬 멀다는 데 있었다.
덕분에 이 두 기의 럴커는 아무런 소득도 올리지 못한 채 격파당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저그의 상황이 뭐 완전히 암울한 것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었던 것이, 디파일러가 뜨기도 전에 3탱크 러쉬를 너무나 깔끔하게 막아버렸기 때문에 일단 이 때의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저그에게 손을 들어주는 상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테란이 딱히 한 게 없으니까. 여기서 변형태는 선택의 기로에 돌입한다. 수비적으로 나갈 것이냐, 아니면 공격적으로 나갈 것이냐. 여기까지는 나름대로 전형적인, 원하는 시점에서 원하는 전투를 하고자 했던 테란과 섬멸을 노리는 저그의 전형적인 경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변형태는 여기서부터 소련식 기동전 테크를 타기 시작한다.
경기 리뷰 : 중반전 ~ 후반전
저그 입장에서 드랍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게 조금 의문이 되기는 하지만, 실상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 3탱크 러쉬를 막아야 하는 입장이고 뮤탈이다 럴커다 이래저래 가스를 많이 쓴 데다가 3가스 제대로 돌려서 디파일러를 띄우기에도 가스가 빡빡한 게 저그니까. 그 말인즉슨, 이 상황에서는 저그가 소련식 기동전 테크를 타기는 좀 애매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저그가 정지 방어를 할 수는 없잖은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시점에서 저그의 선택지는 단 하나, 상대방의 병력을 괴멸시키고 상대방의 본진에 깃발을 꽂는
독일식 기동전이 경기의 승리를 위한 길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맵의 특성상, 앞마당이 막 뻥 뚫려서 아예 방어가 불가능한 것도 아닌 맵이고, 센터는 광활한 정도를 넘어서 아예 뻐~엉 뚫려 있는 맵이다 보니까, 테란 입장에서는 수비적으로 나가도 좋고, 공격적으로 나가도 앞서 이야기했듯이 어느 정도 저그의 섬멸 시도를 저지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시점에서 테란은 어쨌든 한 가지 기동전으로 강제되는 상황은 아니다. 이건 순전히 이 경기가 벌어진 전장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아무튼, 앉아서 방어하는 건 성미에 맞지 않았는지, 변형태는 여기서부터 소련식 기동전을 택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이후의 경기 양상으로 증명되었다.
게다가 앞서 지적했듯이 김준영의 대실수가 여기서 드러나는데, 만일 여기에 럴커 두 기가 삐대고 있었으면 무난하게 디파일러가 뜨고 4가스도 좀더 손쉽게 가져가는, 저그 입장에서 일방적인 경기가 펼쳐졌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이 두 기의 럴커는 어설프게 상대방의 충원병력을 끊으려고 시도했다가 각개 격파당했고, 덕분에 테란의 게릴라 병력에게 무혈입성을 허용한다.
덕분에 원래대로였으면 완전히 끝장나거나 극도로 불리한 입장이 되었어야 할 변형태의 선택은 졸지에 괜찮은 선택으로 돌변해버렸다. 앞서 그 두 기의 럴커가 이 경기를 피터지는 혈전이자 명경기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혈입성해버린 테란의 병력. 해처리를 날려버리는 게 최선이긴 했겠지만, 집중을 못 했거나, 아니면 이 병력으로 해처리 일점사해도 파괴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모양. 그러나 어쨌든 이 병력이 준 타격은 의외로 컸다. 드론이 상당수 잡혀나간 것. 그리고 그 틈에 테란은 본진에서 공세를 지속할 병력을 생산할 시간을 벌었다.
공세를 지속하는 테란의 병력.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지만, 소련식 기동전의 특성은
지속되는 공세 그 자체에 있다. 마치 나는 1시 공격할 거야 1시 공격할 거야 위협하면서, 그리고 공격을 할 수 있으면 하면서 앞서 초반에 스탑 럴커로 인해 한번 빼앗겼던 주도권을 변형태가 서서히 가져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 럴커의 수는 한 부대가 넘어갈 정도로 많기는 했고, 따라서 전투 여하에 따라서 공세가 차단되거나 아예 포위 섬멸될 수도 있는 상황이긴 했는데, 변형태가 또 다른 준비한 카드를 꺼내든다.
드랍쉽. 이 드랍쉽 플레이로 센터에 진출해 있던 병력이 포위 기동을 피해 무사 귀환하게 되고, 그 와중에 이 드랍쉽 병력이 상당수의 저글링과 드론일부까지 잡아 주는 망외의 성과까지 거두면서 이 순간부터 경기의 주도권은 김준영에게서 변형태로 서서히 넘어가게 된다. 물론, 소련식 기동전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공세만 지속해서는 이길 수 없고 전과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가시적으로 가져온 "전과"까지는 없는 상황.
드랍쉽을 한 번 더 이용하면서, 어쨌든 7시 미네랄 멀티는 가져오게 된다. 이 멀티는 다른 가스멀티를 위한 발판이자 배럭에서 머린을 계속해서 생산하기 위함임은 물론. 일단 이것이 지속되는 공세를 통한 "전과"이다. 드랍쉽을 계속해서 쓴 것에 비해서는 조금 초라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작은 전과는 아니다.
여기에 박자를 맞춰 주는 김준영의 실착이 나오는데, 빈집털이를 시도했는데 이 병력이 너무나 허무하게 막혀 버리면서 테란이 더욱 탄탄한 공세를 퍼부을 기반을 스스로 제공해 준 꼴이 되었다.
만일 김준영이 이 경기를 패배했다면 이 병력의 손실은 중차대한 패착으로 지적되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저그의 병력 일부가 공백기를 맞게 되었고, 변형태는 12시를 공격할 만한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언덕의 럴커를 이레디에이트로 제압하고 나이더스 커널만 쏙 깨서 병력을 고립시킨 후에 다크 스웜은 그대로 통과해 버리는 변형태식 기동전은, 특히나 스웜을 치면
그걸 그대로 지나가 버리면서 공세를 유지하는 것은 아주 전형적인 소련식 기동전의 특성이기도 하다. 게다가 베슬의 양도 장난이 아니었고. 스웜을 지나가다가 럴커의 촉수에 걸려서 병력의 절반이 손실되는 큰 실수가 있기는 했지만, 공세는 여전히 변형태의 손에서 지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지역에서의 공세가 끝이 아니었으니...
"몽환의 악몽이 시작되고 있어요. 예, 이 경기는 김준영선수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 김태형 해설위원
미니맵을 보면, 이 공격을 바탕으로 8시까지 가져가고 있다. 소련식 기동전에서의 전과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지속되는 공세를 통한 전략적인 우위. 공세를 지속하면, 상대방은 어쨌든 그 공세에 대응해야 하고, 그러면서 그 틈에 자신은 몸집을 불려나가면서 상대방은 막다 막다 막다 지쳐서 나가떨어지게 만드는(문자 그대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바로 그것이 소련식 기동전에서 바라는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이전 글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변형태의 생각대로 경기가 풀렸다. 1시 멀티 견제하고 12시 앞마당 못 펴게 견제하고 8시 가져가고. 뒷담화에서 이야기한 바로는, 김준영은 8시 멀티의 존재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다만 여력이 부족해서 8시 멀티를 칠 엄두를 못 내고 있었을 뿐.
소련식 기동전의 강점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알고도 상대방이 치지 못하게 하는 것.
그런데 여기서 변형태의 약간의 의문수 및 큰 실수가 나오는데, 먼저 탱크의 비율이 높았다는 점이다. 맵의 특성상, 앞서 말했듯이 이 맵은 센터가 광활하기 때문에
센터에서 정지 방어를 하는 효율이 크게 떨어진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기동력이 떨어지는 유닛이 활약할 여지가 크게 줄어든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고, 따라서 탱크의 비율이 높은 것은 의문수. 기왕에 탱크의 비율을 높였으면 센터에서 시즈모드를 할 것이 아니라 가둬놓고 팰 수 있는 지형까지는 밀고 올라갔어야 했다. 그래도 탱크의 비중이 생각보다 많이 높았다는 것이 완전한 패착은 아니었으나, 진정한 패착은
베슬이 계속해서 터져나간 것에 있었다.
사이언스 베슬은, 저그전에서 상대방에게 비효율적인 전투를 강요하며, 이레디에이트를 뿅뿅 쏘면서 상대방 유닛들의 손실을 강요한다. 베슬이 디파일러 한 기를 잡고 스커지 2기에 격추당한다 해도 고작 미네랄 25 차이이며, 베슬이 디파일러를 잡기 전과 디파일러를 잡은 후에 테란이 저그를 밀어붙이는 힘은 차원이 다르다. 소련식 기동전을 통해서 변형태는 이러한 중요 유닛인 베슬을 차곡차곡 모으면서 계속해서 기동해서 가스멀티를 저지했어야 했다. 그런데 12시에서 베슬을 대거 잃고, 이후로도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베슬이 끊긴 것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패착이 되었다.
베슬 관리에 실패함으로써 아군의 병력이 공세를 지속할 힘을 지속적으로 잃은 것이다.
거기다가 드랍쉽이 중간에 잡혀버리는 사고가 생기면서 판세가 이상해졌다. 미니맵상에서 보듯이 이제 저그는 12시 앞마당을 펴고 있는 상황인데, 적어도 둘 중 하나는 깨야지, 둘 다 가져가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은 저그에게 4가스를 허용한다는 말과 동치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울트리가 나온다는 이야기고, 울트라가 나온다는 것은 광활한 센터에서 테란의 병력이 섬멸당할 위험이 엄청나게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변형태의 치명적인 오판이 나오는데, 섣불리 지우개를 시도했다가 베슬 두 기가 잡혀버린 것이다. 이러면서 12시 앞마당을 박살냈다면 베슬을 잃은 손실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12시 앞마당 이 스웜과 럴커에 막히면서 드디어 저그는 그 죽을 고생을 했지만 어쨌든 4가스를 확보할 기반을 마련하는 데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지속적인 7시 미네랄 멀티 견제는 덤.
이 경기 내내 김준영의 베슬 사냥은 엄청난 것이었는데, 일단 대충 꼽아봐도 12시 무혈입성했던 베슬 6기가 다 터졌고, 중간에 두세 대씩 터져나간 게 두 번, 그리고 여기서 또 세 대가 터졌다. 계속해서 이렇게 베슬이 떨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디파일러와 저글링 그리고 럴커의 평균적인 생존 시간 -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투입된 병력이 평균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생존 시간이 3일이랬던가 - 이 길어진다는 이야기가 되고, 그렇게 생존 시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4가스 멀티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시간을 더 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가 바로...
울트라.
이 순간, 변형태는 공세종말점에 도달했다.
경기 리뷰 : 종막
분명히 변형태의 소련식 기동전은 큰 효과를 발휘했고, 실제로 김준영은 이 경기를 내줄 뻔했다. 하지만 테란이 저그를 상대하기 위한 최종병기인 베슬이 아무것도 못 하고 몇 기씩 계속해서 떨어지는 사고가, 결국에는 패착이 되었다.
울트라가 나오고 탱크가 센터 교전 및 12시 공략 과정에서 잡혀버리면서, 이 울트라를 막을 병력은 베슬이 아니면 없는데, 그 베슬도 계속해서 잡힌 통이라 변형태 입장에서는 식은땀이 나는 상황. 그렇기에 이미 나온 울트라는 어쩔 수 없다치고 더 이상의 생산을 막기 위해서 12시를 어떻게든 공략해야 하는데, 베슬 가지고도 공략하지 못한 12시인데 생 바이오닉으로 공략이 될 리가. 그리고 플레이그 한 방에 변형태의 공격은 멈추었다.
급기야 변형태의 보급선의 목줄인 8시 멀티가 밀려버렸고, 변형태의 공세는 완벽하게 이 시점에서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변형태는 이 시점에서 더는 싸울 여력이 없었다. 마치 공성을 위해서 해자를 메우고 성문을 두들긴 후에 공격을 하듯이, 김준영은 울트라가 떴다고 섣불리 본진을 공격하지 않고 차근차근 외부의 해자부터 메우기 시작했다.
도쿠가와의 오사카 성 공략이 눈앞에 있었다.
그리고 센터의 병력까지 정리되면서 경기는 완전히 종막을 맞았다.
"에, 스타리그, 햇수로 9년, 햇수로 9년 동안, 결승전에서 2:0에서 3:2 역전 한 번도 안 나왔거든요! 왜! 왜! 선수들 결승에 오면 다들 강심장이죠! 그러나! 진짜 강철! 그것도 엄청난 강심장이 아니면! 2:0에서는 역전 못 하는 거거든요!"
"스타리그 결승! 강심장 아닌 선수가 어딨습니까! 그러나 결승에서 2:0 상태에서 3:2 역전하려면 강심장 갖고는 안 됩니다! 2:0에서 3:2 역전은 강심장 정도론 안 되고 대인이 되어야 해요. 대인급이 아니면 그거 못 하는 거에요!" - 엄재경 해설위원
"GG!!!!"
총평
제2차 세계대전의 전투 중에서 무리하게 공세를 지속하다가 엄청나게 큰 카운터펀치를 얻어맞은 전투가 있는데, 제3차 하리코프(하르코프라고도 한다) 공방전이 그것이다. 에리히 폰 만슈타인과 파울 하우서, 그리고 헤르만 호트의 합작품인 이 카운터펀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청색 작전이 돈좌되고 바쿠 유전을 먹으러 갔던 클라이스트 예하 제1기갑군이 간신히 로스토프를 탈출했지만(주코프 :
"아오, 깝!") 독일 6군 25만 병력이 스탈린그라드에서 괴멸당하면서 서기장 동무는 얼씨구나 이제 우리가 이겼다 하고 상황을 낙관했다. 그리고 서기장 동무와 그 예하 장성들까지 "야, 독일군 별 거 없네. 얼른 밀고 전쟁 끝내죠." 마인드로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도 그렇고 그때까지 입은 엄청난 손실도 그렇고 기실 소련군의 상태는 기진맥진 그 자체였지만 뭐 어쩌겠나.
서기장 동무가 까라면 까야지.
이에 맞서는 독일군의 파울 하우서 SS중장과 에리히 폰 만슈타인 원수는 히틀러의 후퇴불가 현지사수 명령을 씹고(...) 후퇴하기 시작했다. 하리코프는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이자
현재로서도 우크라이나 내전의 주요 핵심 거점인데 그 때도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동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도시였다. 그런 도시를 내준다고 하는 꼴이니 히틀러의 후퇴불가 현지사수도 아주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었긴 한데, 만슈타인과 하우서 중장이 병력을 뺀다니까 빡쳐서 조인트를 까러 비행기 타고 날아간 히틀러가 현지 상황을 브리핑받아 보니 히틀러도 납득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아무튼 소련군은 신나게 공격해댔고 실제로 그게 먹히는 모양새기도 했다(스탈린 40km 앞에 독일군이 당도했듯이 조인트 까러 날아간 히틀러의 45km 앞에 소련군이 당도해 있었을 정도). 그런데, 독일군에게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렸다.
소련군의 연료와 보급이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감청이 날아온 것이다.
아무리 활이 강력해도 멀리서 쏜 화살은 종이를 뚫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강노지말(强弩之末)의 고사). 만슈타인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계속해서 공세를 받아내면서 보급은 보급대로 고갈되게 만들고 측면이 위험하게 만드는 전법. 권투로 치면 마치 "펀치를 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충분히 상대방의 체력을 뺐다 싶으니까 바로 그 순간 독일군 특유의 잘라내기가 시전되었다. 깊숙히 들어온 적의 측면을 공략해서 적을 잘라내 섬멸해 버리고 뻥 뚫린 구멍으로(이때 뚫린 구멍의 길이가 거진 200km였다. 대충 서울에서 충북 영동까지의 거리) 즉시 병력이 들이닥쳐 전과확대를 통해 하리코프가 재점령당하면서 소련의 천왕성 작전 직후의 대공세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병력의 교환비는 8대 1이었고(독일군 한 명이 죽을 때 소련군 8명이 죽었다는 말. 실제로 사상자 수는 독일 약 1만여 명, 소련군 약 8만 5천 명)
서류상으로 날아간 소련의 사단 수는 50개가 넘어갔다.
이 결승전이 바로 그러한 느낌이다. 계속해서 테란의 공세를 받아내고 받아내고 또 받아내면서 마침내 적의 공세가 멈춘 그 순간에 울트라가 뜨면서 이 경기의 승자는 김준영이 되었다. 마치 제3차 하리코프 전투의 재현, 지속되었던 공세였지만 공세종말점에 달한 순간 급격하게 바뀌어버린 판세, 그리고 GG.
이 경기가 특별한 명경기로 기억되는 것은 아마도 제3차 하리코프 전투가 전술상의 명전투로 기억되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과거 글 링크
전술, 작전술 그리고 전략과 RTS 게임의 상관관계
기동전과 각 종족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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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균 VS 김택용, 곰TV MSL S3, Loki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