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경험기, 프리뷰, 리뷰, 기록 분석, 패치 노트 등을 올리실 수 있습니다.
Date 2004/05/13 22:18:42
Name pailan
Subject 나의 스타이야기.
누군가 제게 태어나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전 주저하지 않고 대답할 자신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조금 더 일찍 게임을 보지 않은거라고.




부모님을 따라 중학교를 마치면서 중국이란 나라로 떠난 후로, 취미생활은 거의 전무했습니다.
그저 허덕허덕 중국어를 익히는 것도 버거웠고, 별달리 할 만한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던 저에게 고등학교 기간은 정말 암흑이었죠.

어떻게 어떻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면서 전 남자친구를 사귀었고, 끝은 좋지 않았지만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가 저에게 가르쳐 줬던 많은 것 중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쳐 준 일.

지금이야 너무 감사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전 블리자드를 폭파시키고 싶다는 충동에 종종 시달리곤 했었습니다.
스타크래프트가 나온 순간부터 파릇파릇한 대학교 1학년이었던 제가 꿈꾸었던 많은 것들-특히나 남자친구와 하고 싶었던 많은 것들-은 모조리 꿈 속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전 대부분의 남는 시간을 인터넷이 되지 않던 시간당 300원짜리 겜방에서 담배연기에 콜록거리며 그와 그의 친구들의 게임을 보는 데 할애했어야 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러고 살았을까 싶을정도로 전 참을성있게 그를 찾으러 겜방에 드나들었고, 그는 제가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며, "야, 나 28시간째다. 너는?"이라는 대화를 자랑스레 그의 친구들과 나누었었습니다.
누가 봐도 절 그리 좋아해서 사귄게 아니었던 그 당시 제 남자친구는 "오빠, 내가 좋아? 스타가 좋아?"라는 저의 치기어린 질문에 단 한 번의 예외없이 "스타."라고 대답해 제 눈물샘을 자극했고, 그러면 그는 마지못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울지말고 얼른 집에 들어가라며 내 등을 떠밀었었습니다.

결국 수도없이 똑같은 상황에서 다투고, 똑같은 대화를 나누다가, 똑같이 눈물을 보이는 저를 설득시키기 위해 그가 시도한 일은 제게 스타를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테트리스나 헥사같은 퍼즐게임에는 꽤 능통했던 저였기에, 그도 저도 쉽게 배울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지만 퍼즐게임과 실시간전략시뮬레이션은 하늘과 땅 차이였죠.
기본개념조차 설명해 주지 않고 그냥 빌드오더를 가르쳐 주며 그대로만 하라는 그의 강압적인 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켜 절 스타와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고, 결국 그의 "야, 차라리 하지마. 어유, 짜증나."소리를 끝으로 전 더이상 그에게 스타를 배우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제가 완벽하게 스타에 관심을 잃지 않게 만들어 줬던건 한스타와 치트키였습니다.
그에게 배우는 걸 포기하기는 했지만, 그를 포기할 수 없었던 전 여전히 담배연기 자욱한 겜방에 자주 드나들었고, 남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심심해 한스타와 치트키의 도움을 받아 시나리오 모드를 플레이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나리오 모드를 플레이하기 시작하면서 전 조금씩 종족의 특성과 유닛의 특성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적어도 그때부터 파이어 뱃으로 뮤탈을 잡으려는 말도 안되는 짓은 하지 않게 됐습니다.



스타의 열풍이 살짝 사그러들고(그래도 역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플레이 하는 게임은 스타였습니다.) 남자친구의 게임종목이 포트리스에서 디아블로로, 디아블로에서 맞고로 바뀌는 동안에도 전 계속 스타를 했습니다.
여전히 빌드오더는 엉망이고, 컨트롤은 그냥 어택땅 하느니만 못했지만, 그래도 치트키의 도움은 받지 않아도 컴퓨터와 1:2까지는 할 정도로 스타와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어느 여름방학, 일년에 한 번 있는 한국 나들이에서 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 나른한 오후에 텔레비젼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만난 예쁜 머리색깔의 저그 유저.
프로게이머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 방송에서 해 준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그들의 경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제게 그 사람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저그대마왕 강도경.


전 그 날로 그의 팬이 되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팬'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가 불리길 원했던거죠.

그 후의 날들은 참 즐거웠습니다.
마침 부모님이 다시 한국으로 발령을 받아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무 눈치 볼 필요 없이 한달에 5~6만원의 전화비(중국의 물가 기준으로는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지금도 중국은 쌀 25Kg에 6~7000원 밖에 안된답니다.)를 감수하고 인터넷을 즐겼습니다.
강도경 선수의 팬까페에 가입하고, 한 경기를 끝까지 보기 위해서는 수십번 클릭을 하고 버퍼링을 기다려야 하는 느린 속도에도 밤을 지새가며 강도경 선수가 경기한 vod를 봤습니다.
그가 겜티비에서 우승했을 땐, 제가 우승한 것 마냥 좋아서 깡총깡총 뛰었고, 그가 이윤열 선수가 그랜드슬램을 이루는 뒷배경이 되어 버렸을 땐,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었습니다.(제게 유독 겜티비 경기가 인상이 남았던 건, 강도경 선수의 겜티비에서의 눈부신 활약과, 그나마 제일 끊기지 않고 vod를 볼 수 있었던 방송국이 겜티비였기 때문이었죠.)

정말 이제나 저제나, 방학이 되어서 한국에 가야 하는데, 가야 하는데만 염불 외우듯이 중얼거릴 정도로 보는 스타에 빠졌고, 주위에서도 "희안하게 스타를 좋아하는 이상한 여자애"로 낙인찍혔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떠랴 싶을만큼 전 스타가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에 나왔을 땐, 정말 강도경 선수가 경기하는 날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오프에 나갔습니다.
오프에서 정말 좋은 동생들을 만나고, 방송에서만 보던 메가웹 찜질방;;에서 소리지르며 응원도 하고, 끊길 걱정없이 집에서 실컷 온게임넷과 엠비씨게임을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에게 무엇을 해주고 싶고, 응원하고 싶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에 그렇게 푹 빠질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너무나 짧은 두 달간의 한국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게 됐지만, 스타사랑은 더욱 깊어져만 갔습니다.
동생이 만들어 놓았던 통장으로 계좌이체를 해서 온게임넷과 엠비씨 게임 유료결제를 끊고,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약속도 잡지 않게 됐습니다.
점점 관심도 넓어져 여러 선수들의 경기를 모두 찾아보게 되었고, 여기 저기 관심이 생긴 팬까페에 가입해 선수들의 일기도 찾아 읽었습니다.(그리고 그제서야 이윤열 선수한테 품고 있었던 서운한 감정을 완전히 녹이고, 제가 정말 못됐었다 후회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완벽한 스타의 광팬입니다.
매주 경기가 있는 요일은 아무 약속도 못잡고 버벅버벅 끊기는 실시간 vod를 붙잡고 소리를 질러대고, 주말이면 밤새면서 못보았던 경기들은 다 봅니다.
경기가 끝나면 pgr에 와서 후기를 읽고, 나름대로 재미있게 본 경기는 혼자만의 스타일기에 정리해놓기도 합니다.

여기까지가 저와 스타의 인연입니다.
pgr여러분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어떻게 스타와 사랑에 빠지셨습니까?
오늘 한 번씩 떠올려 보시면 어떨까요?^^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공공의마사지
04/05/13 22:26
수정 아이콘
최강NADA를 온리 히드라 쌈싸먹기로 잡아버리는 저그대마왕!
for。u”
04/05/13 22:29
수정 아이콘
저는 사실 저희 어머니께서 친모가 아니십니다... 흔히들 새어머니라고 하죠... 하지만 저희 어머니꼐선 다른 부모님 못지않게 잘해주시죠.. 한동안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때 너무 새어머니가 싫어서 아예 부모님과는 담을 쌓고 살았죠.. 그떄 제가 스타를 배우게 된것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선 지금도 넉넉지 않은 형편에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키워주십니다. 어떻게보면 스타와의 인연은 저희 새 어머니때문에 시작된것일수도 있겠네요^^
The Pure
04/05/13 22:35
수정 아이콘
저도 처음 겜TV스타리그가 막 시작했을 무렵, 집에서 케이블TV를 설치해가지고 처음 스타리그에 접하게 됐습니다. ^^ 그전에 막연하게 신주영이라는, 이기석이라는, 프로게이머가 있다는 정도만 얼핏 알고 있었는데, 겜TV스타리그를 보면서 스타크래프트로 이런 플레이가 가능하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스타리그에 빠져들게 되었죠. ^^
하지만 저는 그때부터 프로게이머의 팬이 됐다기보다, 김창선씨와 전용준씨의 팬이 돼었다고 할까요? ^^;;
그러다가 온게임넷이란곳을 알고, 그곳에서 전용준캐스터가 스타리그를 진행하시길래 온게임넷을 즐겨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프로게이머 선수들을 좋아하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PGR도 알게 되고... 그렇게 저는 스타리그와의 사랑을.. ^^;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은 나왔을때부터 주욱~ 즐겨왔구요.
i_beleve
04/05/13 22:36
수정 아이콘
2탄도 나오고 업그레이드도 하고 폐치도 계속해서 스타크래프트가 정말 영원했으면 좋겠습니다. 5년동안의 스타와 함께한 시간들이 헛되지 않도록..-_-;;;
멋진벼리~
04/05/14 00:03
수정 아이콘
저는 스타를 접고 리니지를 하다가 어느날 itv에선가.. 임요환선수의
디텍팅없이 럴커잡는 플레이를 보고 바로 스타로 복귀했다는.......
그때부터 임요환선수의 플레이를 따라한답니다 ^^;
초콜렛
04/05/14 00:48
수정 아이콘
포유님은 어머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기셨네요! ^^;; 정말 보기 좋습니다.
안전제일
04/05/14 01:32
수정 아이콘
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꼴(?)이었습니다.
현실도피-였을지도 모르지만 후회는 없습니다.^_^

배운것은 오리지날이 나와서 열풍이 불고있었을 때였던것 같습니다.(생각해보면 배웠을 때에는 매딕이 없었습니다.--;;;)
원체 게임에는 재능이 없어서 그냥 상식선-에서 배워뒀던게 멍하니 케이블을 틀었을때 하고있다니...컬쳐쇼크였죠.^^;
굉장히 정신없는 시기를 겪으면서 어쩌면 도피처로 삼았던것이 게임-이었던것 같습니다.
스타라기보다는 여러 게임이었죠. 누가 구해다준 고전 RPG와 디아블로 시리즈...마리오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생각하는 제가 게임의 엔딩을 보게될줄은....이러면서 감격했던 시기였습니다.
사실 그 후에도 특별히 하는-스타에 열광해본적은 없습니다.
본래 게임 자체에 열광하는 타입은 아니어서요. 차라리 도박-이면 모를까..먼산-
하는 스타와는 사실 안친합니다.^^; 지금도 보는걸 더 즐기지요.
가끔 새맵이 나올때 몇가지 실험만 종종 하는 정도지요.

지금도 정일훈씨가 하는 스타 중계가 그립습니다.^^ 으하하하

그리고..강저그가..저도 참 좋습니다.^_^
아케미
04/05/14 14:31
수정 아이콘
99년 PKO 시절. 동생과 사촌오라버니를 따라 잘하지도 못하는 게임에 재미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잘하고 싶어도 못하니까 안하게 됐죠. 그렇게 몇 년을 잊었습니다.
그러나 2003년 여름. 이름만 들어보았던 임요환 홍진호 박정석, 그들의 경기를 보고 나서 저는 잊었던 게임에 다시 흥미를 갖게 됐습니다. 그리고, 아마 재방송이었을 마이큐브 OSL 16강 B조 2경기 강민vs홍진호를 보고 "강민, 8강 올라가라"고 저도 모르게 생각한 후… 이리 됐네요^^;
왜 그들이 제게 다시 매력적으로 보였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입니다. 하지만 아무튼 잘 된 것 같아요.
모든 선수+관계자+팬 여러분께 그리고 저 자신에게 파이팅을 외칩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1624 [인터뷰]엄재경님과의 인터뷰 [27] 어쭈14720 05/03/10 14720 0
11393 [펌] 와우 시작 100일, 만렙은 지루하다 [20] modifyy4913 05/03/01 4913 0
11193 김철민 캐스터 인터뷰 입니다 [17] 핸드레이크6823 05/02/21 6823 0
10734 게임큐 시절의 회상..(임요환) [11] CooL4525 05/02/03 4525 0
10667 그냥 이런저런 글들 적어봅니다... [2] CooL3215 05/01/30 3215 0
10299 디아블로, 파괴의 군주 [11] Violet3331 05/01/13 3331 0
10250 wow..전 재능이 없나 봅니다.... [19] 덜덜덜...3044 05/01/11 3044 0
9999 [단편] 배신 [6] 공룡3975 04/12/31 3975 0
9129 WOW 초보 유저의 감상기 [31] Pisong_Free3699 04/11/20 3699 0
9030 [잡담]wow 플레이 해본 소감 [25] 강은희3863 04/11/15 3863 0
8746 wow성공과 실패 그 의미에 대한 견해입니다. [68] kdmwin4405 04/11/03 4405 0
7736 WOW는 국내시장에서 참패할 것! [72] [shue]5720 04/09/21 5720 0
6662 귀신 경험해 보신분~~ [27] 해골4887 04/08/04 4887 0
6270 7월 22일~23일 아시아 배틀넷 서비스 중지 [7] 세진이-_-V3569 04/07/22 3569 0
5247 형태 없는 아름다운 그 이름! [지적재산권] [13] wildfire4086 04/06/16 4086 0
4895 스타크래프트...그리고 나 [8] Lunatic Love4319 04/06/01 4319 0
4587 스타크래프트2? [14] Tail3135 04/05/18 3135 0
4478 나의 스타이야기. [8] pailan3445 04/05/13 3445 0
4470 저그유저로서 저그의 마법유닛 불평!.. [39] 패닉4501 04/05/13 4501 0
4309 [잡담]Into the Diablo~ [14] 밀레이유부케3026 04/05/06 3026 0
3209 [결과발표] 각 분야별, 최고의 맵 [26] 저그맨3127 04/03/28 3127 0
3030 [초절정잡담]스타크래프트와 나 .. [3] Juventus2429 04/03/21 2429 0
2907 다양함이 좋을까...한분야의 전문가가 좋을까.. [29] Ace of Base4113 04/03/15 4113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