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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7/14 23:23:30
Name The xian
Subject 이윤열. 그를 단지 보고 느낀 만큼의 이야기
이윤열 선수가 들으면 대단히 저에 대해 서운할 만한 이야기이지만, 저는 헤리티지에서 이윤열 선수의 행보를 상당히 부정적으로 예측했었습니다. 특히 1, 2경기가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보통 생각하기에는 강민, 박용욱 해설위원이 이미 현직 선수가 아니기 때문에 그쯤은 쉽게 이겨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고 있고, 물론 이윤열 선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고 경기에 임했을 것이지만, 저는 지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고 이긴다 해도 쉽지 않은 경기가 될 것이라 봤습니다. 그것은 강민, 박용욱 해설위원의 게임 센스가 죽지 않았다고 느낀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윤열 선수가 경기에 이기는 것에 대해, 그리고 특히 플토전에 이기려 하는 것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짊어진 것이 많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이윤열 선수가 근래에 플토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단 3경기 - 로스트사가 8강전에서 이긴 두 경기와 송병구 선수를 안드로메다에서 꺾어낸 경기 - 를 제외하고 지는 경기이든 이기는 경기이든 이윤열답게 경기를 이끌어가는 경기는 거의 없었을 정도로 승률도 떨어졌고, 승률보다 더 떨어진 것은 마음의 여유였다고 봅니다. 물론 짊어진 게 많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진 것은 사실 이윤열 선수에게만 엿보이는 것이 아니라 위메이드 선수들에게 거의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이윤열 선수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고 봅니다.


이윤열 선수가 근래에 플토전에서 보여줬던 좋지 않은 모습들은 사실 테란이 플토에게 '안 좋게' 지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에 해당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초중반 의도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일꾼으로 스쳐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정찰까지 했음에도) 한순간의 대처 실수로 좋았던 상황을 그르치고 경기가 기운다든가, 견제가 올 것으로 예단하고 터렛 도배에 무조건 지키기 모드로 나가다가 빠르게 트리플에 쿼트러플 가져간 상대 플토의 자원력에 밀려 바꿔주기에 당하며 무너진다든가, 초반 전략을 걸었다가 그게 제풀에 막히며  경기에서 진다든가, 입구 막기 등이 늦어서 뚫려버리는 어이없는 실수 같은 것까지. 이런 실수와 판단 착오가 나아지는 듯 하다가도 반복되고 또 반복되며 이윤열 선수의 - 특히 플토전 - 침묵은 깊어 갔지요.

그렇게 상처를 입고 또 상처를 입고, 또 상처를 입어 아예 흉터가 되고 문신이 되어버립니다. 짊어지고 짊어지고 또 짊어져 이젠 자신이 뭘 짊어진 것인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저는 그렇게 되면 누구나 판단 착오를 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질 수 없다는 승부에 대한 집착이 승부에 대한 자신감과 같은 것이라고 여기게 되고, 짊어진 상처들이 전혀 낫지 않았는데도 경험이라고 여기게 되며, 경기에 이기는 것에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판단을 그르친다는 것이죠. 제가 만난 이윤열 선수는 지기 싫어하고, 패배를 잊지 않고, 승부에서 지고 나면 자기에 대한 책망을 하는 선수였습니다. 물론 그런 성격이 지난 경기에서 있었던 실수를 잊지 않고 만회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쪽으로 열매를 맺을 수도 있고, 그런 것들이 승리를 가져오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근성으로 승부를 가져올 수도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것을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지는 승부를 마음에 담아두고 집착하는 일이 거듭되거나, 근성으로만 버티는 일이 잦아지게 되면 그런 것들은 어느 사이에 자신을 옥죄게 되는 법이죠. 어떤 이들은 이윤열 선수의 부진한 경기들을 놓고 피지컬의 문제를 말하기도 하는데, 이윤열 선수의 피지컬 자체는 아직도 지금의 쌩쌩한 프로게이머들과 겨뤄도 지지 않을 만큼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 바로는 자기관리도 잘 하는 편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의 피지컬을 구속하는 것은 멘탈이지, 그의 운동능력 감퇴나 노쇠화(?)가 아니라 봅니다. (여담이지만, 그래서인지, 그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구속되어 있는 듯 했던 아발론 MSL에서 이윤열 선수가 우승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 것을 듣고 대단히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팬이니 기대하는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죠.)


헤리티지 두 경기가 끝나고 이윤열 선수의 인터뷰를 보고 들었을 때, 그것이 일시적인 것인지 아니면 이제 바닥을 찍고 올라오려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윤열 선수는 - 적어도 지금 헤리티지에 임하는 그 순간에는 - 자신이 이겨야 하는 경기의, 특히 플토전의 무게가 어느 정도 무거운 것이었는지를 차츰 깨달아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를테면 헤리티지가 스타리그 또는 MSL보다 더욱 어렵다고 느낀다는 대목 같은 것 말이죠. 어쨌거나 뭔가 약 1% 정도씩 바뀌어가는 느낌이 듭니다. 저만의 착각일지도 모르나 그 1%의 변화가 여기에서 끝나지 말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이제 하나씩 좀 내려놓았으면 좋겠습니다. '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이윤열 선수의 부진을 놓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 MSL 탈락 때 보니 이윤열 선수가 펄펄 날아다닐 때에도 이윤열 선수의 시대라고 글 한 줄 써주지도 않던 이가 이제 와서 이윤열 선수의 시대가 갔다는 식으로 말하는 헛웃음 나오는 광경도 보게 되고, 이윤열 선수에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말하거나 여린 마음을 강하게 고쳐야 한다 등의 말을 쓰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마추어이고 그 분들은 전문가이니, 전문가들의 말이 더 일리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전문가들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윤열 선수가 그의 최근 일기에서 썼던 것처럼 자신을 "한때 사자무리에서 왕이였던, 그러나 누구도 돌봐주지 않는 늙은 사자"라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에게 무엇을 고쳐야 한다. 무엇을 그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은 제가 이윤열 선수를 어떻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이윤열 선수를 '고칠' 권한도 권리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 데에도 있지만. 원인은 이윤열 선수 자신의 마음이라는 것에 있기에 제가 개입할 부분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단지 제가 보고 느낀 바를 말할 뿐입니다.

물론 마음에 품고 있는 짊어진 것들이 모두 회복된다고 해도, 저는 이윤열 선수가 이전에 그랜드슬램을 하던 것처럼 연전연승을 하며 이기기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기대를 하기 싫어서? 아닙니다. 그러면 기대치가 낮아서냐고요? 그것도 아닙니다. 제가 어떤 것을 바란다면 이윤열 선수에게 또 무언가를 짊어지게 만드는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저는 '프로게이머 이윤열'뿐만 아니라 '인간 이윤열'에게 그런 짐을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이든, 그리고 제가 앞으로 이 판을 바라보고 이 세상을 바라볼 시간이 얼마이든, 저는 팬이니 이윤열 선수가 바라는 만큼만 바라고 기대하는 만큼만 기대할 것입니다.(사실, '그럴 것입니다'라는 것보다는 '그러려고 합니다.'가 더 맞는, 그리고 더 솔직한 말이겠죠.)


제 글이 제가 이윤열 선수에게 받은, 돈으로 갚을 수 없는 즐거움의 보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The x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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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
09/07/14 23:2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네...그렇죠...
그는 마음의 여유를 잃어 보인듯 싶었습니다...
항상 무게감에 이끌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지켜온
이 자리의 무게감을 본인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입니다..
저흰 그저 지켜보면서 묵묵히 응원해야 할 뿐이죠...
그래도 믿습니다
그가 돌아올때까지를요..
서현우
09/07/14 23:34
수정 아이콘
아 ,, 토스전은 스타일리쉬한 올드 테란게이머들이 정말 극복하기 힘든 거 같습니다.
토스전만큼은 트렌드를 따르는게 중요한것 처럼 ,,, ,,, 카멜레온 같은 스타일이 좋을 것 같네요..
이윤열의 묻지마 토네이도 러쉬가 최강인 시절이 있었고 ,,
전상욱식 200채우기가 최강인 시절이 있었고 ,, 변형태,박지수의 타이밍 공격적 스타일이 최강인 시절이 있었듯 ,,
변화를 주지 않으면 ,, 힘들겠죠 ,, 이윤열 선수나 임요환 선수도
09/07/14 23:41
수정 아이콘
그닥 좋아하는 선수며 관심갖고 지켜보지 않습니다, 경기 하나도 안 봅니다. 저에겐 존재감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다 또 어느샌가 결승내지 4강쯤은 가며 명승부 보일꺼라는 생각은 '이윤열'이라는 이름을 듣거나 봤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입니다. 그 어느 선수보다 이 생각에 대한 믿음은 틀릴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팬들이 있는 한은 말이죠. 흐흐

저의 이런 생각이 xian님에겐 1%씩의 변화라는 식으로 보시는 것 같아요.

itunes cd가져오기 하면서 익스플로어밖에 못하는데 그 와중에 참 좋은 글 많이 보네요 오늘따라 흐흐
09/07/15 00:06
수정 아이콘
DeMiaN님// 님도 cd가져오기 하시나요? ^^
저도 지금 문득 생각이 나서 예전에 한참 버닝했던 cd들을 지금에서야 새삼 mp3로 만들기 위해서 easy cd-da extractor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09/07/15 00:10
수정 아이콘
오늘 2ne1이랑 장기하와얼굴들 블랙아이드피스 앨범 산거 아이팟에 넣느라고 흐흐흐
엡실론델타
09/07/15 00:14
수정 아이콘
돌아올꺼예요 Red[NaDa] ..
갑자기 이 아이디로 경기했던. 아니 경기하는 윤열선수가 보고 싶네요.
대표이사
09/07/15 00:20
수정 아이콘
이윤열선수 플토전은 항상보면 원팩 에드온에서 꾸준히탱크 나머지 노에드온 팩토리에서 벌쳐만 쭉 뽑아서 탱크쌓일때까지 견제..

탱크수 어느정도 모이면 진출하나 싸먹히기라도 하면 뒤가 없는..

참 아쉽습니다.. 스타일을 버리지 못하는 걸까요? 습관이 되서일까요? 제가 잘못 본것일까요?

마음을 비우고 다시한번 비상했으면 좋겠습니다.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

7회 우승 Go Go
09/07/15 00:21
수정 아이콘
이윤열 선수는 늙은 사자라기보다는 늙은 독수리죠.
발톱을 뽑아버리고 부리를 깨뜨려서
다시 한번 힘차게 도약할 하늘의 제왕.

그래서 그는 천왕이라고도 불리고
불사조라고도 불리우는 것일지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METALLICA
09/07/15 00:47
수정 아이콘
이윤열 선수의 마음도 플레이도 너무 무거워 보입니다.
게임에 대한 집중도가 많이 떨어져보여요. 그럴수록 두려움만 커지고..
09/07/15 06:55
수정 아이콘
다시 게임을 즐길 여유가 생기는거 같던데 힘좀 내길...
헤리티지가 여러모로 올드들에게 좋게 작용하길 빕니다.
나두미키
09/07/15 10:59
수정 아이콘
Nada에 대한 Xian님의 변치 않은 애정이 느껴집니다..
Nada의 변함없는 천재성을 희망합니다..Nada 화이팅!!
우왕이
09/07/16 01:53
수정 아이콘
나다의 오랜팬으로 윤열선수가 매너리즘에
빠진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가끔합니다.
종족을 저그나 플토로 한번 바꿔보는건 어떨까하는 뻘생각도 가끔합니다.

다른 종족으로도 우승할 것 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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