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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11/18 00:38:50
Name 雜龍登天
Subject <왔다> (노신의 글 그 다섯번째)

<과격주의>가 왔다고들 한다. 신문에도 자주 등장한다. <과격주의가 왔다>

돈 좀 있는 사람들은 꽤나 불쾌하다.
관리들도 허둥대며, 유럽에서 일하다가 돌아온 중국인 노동자들을 경계하고, 러시아인들을 경계한다.
경찰에서도 <과격당의 기관 설립 유무>를 엄중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허둥대는 것도, 엄중 조사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
"과격주의란 무엇인가?"
그들은 설명이 없다. 나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과격주의는 올 리가 없고, 과격주의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다만 그 <왔다>가 올 것이며, 이것이 두려운 일이다."

우리 중국인은 외래의 어떤 주의(ism)에도 동요되지 않으며 그것을 박멸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군국민주의(軍國民主義:교육에 군대식 교련을 채용하는 등 전투적 국민교육을 하자는 주장)는 어떤가?
우리가 언제 남과 싸워 본 적이 있는가.
무저항주의는 어떤가?
그러나 우리는 1차 대전에 참전했지 않는가.
자유주의는?
우리는 사상을 표현하느 것만으로도 죄가 되고, 입만 뻥긋해도 경을 치지 않는가.
인도주의는?
우리는 아직도 몸을 사고 팔고 하지 않는가.
이러하기에 어떤 주의도 중국을 혼란에 빠뜨릴 수 없다.
고금의 혼란을 통틀어 봐도 무슨 주의가 그 원인이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눈앞의 예를 들어보자.
섬서 학계의 포고나 호남지방의 수해 이재민들의 포고를 보더라도 두려워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벨기에가 폭로한 독일군의 잔학 행위나 러시아의 반대당이 퍼뜨리는 레닌정부의 난폭함에 비교해 볼 때, 이런 것들은 그야말로 천하태평이다.
독일은 군국주의이고, 레닌은 말할 것도 없이 그야말로 과격주의 아닌가!

<왔다>가 온 것이다.
온 것이 주의라면 주의가 달성되면 그만이다.
그러나 단순히 <왔다>가 온 것이라면, 그것이 다 왔는지 덜 왔는지, 와서 어떨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중화민국 성립 때(1911년) 내가 살던 조그만 도시에서는 재빨리 백기(白旗)를 내걸었었다.
어느날 많은 남녀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도망하기 시작했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로 도망하고, 시골 사람들은 도시로 도망쳐 왔다.
그들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그들이 대답했다.
"사람들이 그러는데 과격주의가 온데요."

사람들은 그저 <왔다>를 두려워 하고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그 때는 다수주의만 있었을 뿐 과격주의니 하는 것은 아직 있지도 않았을 때인데도.   (1919년)





노신 선생님의 글을 또 한편 올려봐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 게시판에서 오가는 논쟁들을 보며 이 글이 생각났습니다.
물론 이 글을 직접적으로 떠 올리게 했던 글은 이미 게시판에서 사라지고 없지만...
(존경하는 리영희 선생님에 관련된 내용도 함께 사라져서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습니다.)
우리도 "무엇이 왔는가" 보다는 그 "왔다"에만 집착해서 너무 일희일비하고 사는 건 아닌지 자주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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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영
05/11/18 00:41
수정 아이콘
아.. 노신의 글을 이렇게 곱씹어보니 좋네요 ^^
밀가리
05/11/18 00:52
수정 아이콘
실제 중국에서 루쉰의 글은 그 어느 누구도 본문 내용을 재편집에서 책을 낼 수 없답니다. 중국사람들이 매우 존경하는 사람들 중에 한분이죠.
DayWalker
05/11/18 01:08
수정 아이콘
雜龍登天님. // 저는 개인적으로 그 글이 아까워서 따로 저장해 두었습니다. 퍼가도 되냐고 글쓴 분께 물어봤었는데 대답이 없으셔서 어디다 올리지는 못했지만요.^^ 원하신다면 메일로 보내드릴까요? 하하
05/11/18 12:07
수정 아이콘
하하.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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