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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4/01/16 13:31:47 |
Name |
한빛짱 |
Subject |
[펌]허재 바이러스 20년째 기승, `허재불치병` 4인4색 사랑고백 |
"불혹의 사십이 되더라도 코트에서 뛰겠다."
프로농구 원주 TG삼보의 플레잉코치 허재(39)는 참 대단한 존재다. '남성성'이 점점 빛을 바래고, '부권'이 힘을 잃은 요즘 그는 대부분의 남성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힘센 수컷이다. '농구천재' '농구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우리와는 다른 사람 같았던 것이 20대의 허재라면, 마흔줄에 접어든 허재는 '오래된 친구' '늘 한자리에 있는 형' 같은 친근한 농구쟁이다.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에 이어 이태백(이십대의 태반이 백수)까지 도래한 암울한 현실, 감독 코치를 해도 괜찮을 나이에 꿋꿋이 코트에서 '조카뻘'들과 뛰고 있는 허재는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허재를 오매불망 따라다니는 팬들, '허재 마니아' 역시 허재만큼이나 오래고 질긴 수명을 자랑한다. 까까머리 용산고 시절부터 그를 좋아했던 남자팬은 물론, 중앙대-기아-나래를 거치는 동안 변함없이 그를 사랑하는 여성 팬들까지. 이들은 골수팬이라는 표현을 사양하지 않는다. 조용필의 팬들이 결혼해서 아이들 손을 잡고 콘서트장을 찾는다면, 허재의 팬들 역시 청춘을 허재에 바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결혼해서 낳은 아이를 안고 코트를 찾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그들은 도대체 허재의 무엇에 빠져 20년 가까이 '허재의 신도'임을 마다하지 않는걸까.
망나니? 천만에! 불의 못참는 반항아
천재인가, 망나니인가.
허재에 대한 반응은 두 부류다. '천재'의 모습에 반해 열광하는 사람과 너무나 뛰어난 '천재성'에 대한 질투와 그의 거만함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 난 항상 천재에 끌렸고, 그의 거만함과 도도함에 오히려 이끌렸다. 그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고 지금도 그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열광하는 나의 안목에 자부심을 느낀다.
허재에 대해 거부감을 가진 부류들은 항상 그의 성격, 거친 매너를 거론하며 딴지를 건다. '망나니 허재'란 평에 난 동의할 수 없다. 선수라면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경기장에서 그는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상대편 선수로부터 일방적으로 가해지는 고의성 짙은 파울과 심판의 불공정한 판정에 불만을 토한 것뿐이고 경기를 하는 선수로서 충실히 임한 것뿐이란 생각이다.
지금까지 그의 경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으라면 팀이 준우승에 머무른 97·98 플레이 오프를 꼽고 싶다.
실력으로 당당히 MVP를 거머쥔 98 챔피언 결정전에서의 모습도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2003년 챔피언 결정전 6차전 대구 경기에서 마지막 남은 1.3초의 그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이전엔 '천재'니까 그가 속한 팀이 우승하는 건 당연하게 여겼고 게임에서는 진다는 생각을 못했으니까. 그러나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30대가 된 지금, 띠동갑도 넘는 어린 후배들과 코트를 누비며 오히려 젊은 후배들을 압도하는 그의 모습은 단순히 '농구천재' 허재가 아닌 '인간' 허재의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가 얼마나 간절히 우승을 원했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상대 용병선수에게 깔려 큰 부상을 당해 고통을 참는 데는 이골이 난 그가 제대로 숨조차 쉬기 힘들어하면서도 트레이너에게 몸을 기대고 후배들을 독려하며 결코 코트를 떠나지 않았던 그. 정말 미련한 사람이다. 하지만 난 그때 허재의 모습에 중독되어 겨울이면 농구장을 찾을 수밖에 없다.[이진희]
팬들 끼니도 챙겨주는 따뜻한 남자
나만큼 허재를 아는 사람 있으면 나와 봐요.
오빠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알고 보면 참 따뜻한 분이라고. 예전에 불우이웃을 돕는 방송 프로그램에 오빠가 출연했는데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오빠를 생각해서 시원한 음료수와 떡을 해 가지고 갔어요.
촬영이 다 끝난 후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오빠께서 시즌 동안 따라다니느라 수고했다면서 시원한 보리음료(?)를 주시는 거예요. 까짓 몇 백원짜리 음료수에 뿅 가냐구요? 팬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알 거예요. 손이 덜덜 떨리고 왠지 얼굴이 빨개지면서 직접 대면했을 때를 위해 준비했던 말들이 한마디도 생각나지 않을 때 넌즈시 건네는 음료를 받았다고 생각해 봐요.
그 후로 초등학교 때부터 신비로운 존재였던 오빠의 경기를 따라다니다 자리를 같이하게 되면 항상 '많이 먹어', 멀리 있는 경기장에서 보면 '뭐 타고 왔어?' , 경기가 끝나면 '조심해서 내려가'라고 말할 만큼 정이 있어요.
지금의 허재 오빠를 보면서 전성기가 지났다고 외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코트에 서 있는 오빠의 영원한 카리스마를 보면 어디선가 힘들어하고 있을 우리들의 아버지, 오빠들에게는 큰 힘이 아닐까 싶어요.
어디선가 이런 문구를 본 적이 있어요. '허재는 천년에 한번 정도 나올 만한 선수'라고. 그런 선수의 멋진 플레이를 볼 수 있고 좋아할 수 있는 저는 참 행복한 팬입니다. 오빠 오래 오래 뛰세요.
최경화
라이벌 용산고 적장에 반해 스무해 짝사랑
허재! 그를 안 지도 벌써 20년이 되어갑니다. 애석하게도 물론 그는 저를 모릅니다.
저는 서울의 전통 있는 농구명문 H고를 다녔습니다. 우리 학교 농구부가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빡빡머리로 입학한 저는 1학년 때부터 여러 대회 경기가 열리는 체육관을 찾아 목이 터져라 선배와 동료들을 응원했습니다. 물론 저희 학교는 거의 모든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했지요.
아~~ 근디 글씨, 저희보다 더 빡빡머리인 용산고 3년에 재학 중인 허재로 인하여 저희들의 응원은 매번 공허한 한줌의 재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도대체 쟤(옆에 없으니 이렇게 말들 합니다) 누구야? 혼자 날아다니는 쟤 말이야!"
"쟤? 허재래!"
나 참, 한번도 아니고 4번씩이나 결승전에서 용산고, 아니 허재로 인해서 번번이 무릎을 꿇다니! 물론 농구는 혼자하는 스포츠가 아니지만, 그 당시 코트에는 허재밖에 보이질 않았습니다. 아무리 적군(?)의 수장이었지만, 그 현란한 드리블과 오른손도 아닌 왼손으로 던지는 슛이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데, 그 일이 벌써 20년 전이라니….
농구대통령 허재!
당신의 집념은 정말 대단합니다. 불혹의 나이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당신의 정신력이 부럽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늘진 이웃 즐겨 찾는 '농구공 든 천사'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집에 아무도 없어 심심하던 차에 우연히 TV에서 중계하는 대학농구를 보게 되었다. 중앙대와 연세대의 게임에서 유독 한눈에 들어오는 선수가 있었는데 바로 중앙대 2학년의 허재였고, 그 후 허재는 유일한 우상이 되었다. 그 당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와 맞물려 연세대 농구부의 인기가 대단했지만 나에겐 허재뿐이었다.
코트에서 허재 선수의 카리스마는 알려진 대로 정말 대단하다. 그 카리스마는 곧 허재는 무섭고, 건방지고, 쌀쌀맞다는 인상으로 이어져 왔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건 잘못 알려진 편견이었다.
지난 해 우승 직후의 일이다. 원래 TG 선수단은 여러 해 동안 시즌 종료 후 전북 군산의 모 보육원을 돕고 있었다. 2003년도 어김없이 그곳을 찾았다. 아이들은 여러 해 봐 왔던 선수들이라 함께 식사하며 허물없이 담소를 나누거나 좋아하는 선수와 사진을 찍고, 농구공에 사인도 받는 등 너무 즐겁고 행복해 했다.
군산은 내가 사는 광주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에 나도 두어 번 방문한 경험이 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처음엔 봉사한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그저 허재를 가까이서 보겠다는 흑심(?)뿐이었다.
각종 우승기념 행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허재 선수도 그날만큼은 아이들과 함께 활짝 웃고, 때론 짓궂은 아이들의 장난도 다 받아주며, 하루종일 안아달라며 쫓아다니던 아이를 끝까지 안아주던 자상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코트에서 멋진 플레이를 보여주는 농구선수 허재가 코트 밖에서도 이처럼 자상하고 마음이 따뜻한데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선주(28세.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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酒마니아 허재 '연속음주' 신화
마니아는 물론 일반 농구 팬들도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 하나. 허재가 농구 못지않게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바로 술이다. 최고 스타로서 허재만큼 술과 관련한 화제를 뿌리고 다닌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 60일 연속으로 술을 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중앙대 4학년 때 농구대잔치에 출전하지 않았을 때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두 달 동안 술을 마셨다. 워낙 술을 잘 먹기도 하지만 특히 '연속 음주' 능력만큼은 어떤 선수도 허재를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허재는 "현주엽(부산 KTF)이 술은 정말 세다. 하지만 연타로는 나한테 안 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곤 한다.
1992년 첫아들 웅이가 태어나던 날의 일화도 있다. 친구들이 득남 술을 사라고 해서 기분 좋게 한턱을 낸 뒤 산모가 있는 병원으로 차를 몰고 가다 음주 단속에 걸려 100일 면허 정지를 당했다. 당시 아내 이미수 씨는 "웅이 백일 잔치하고 찾으면 되겠네"라고 어이없어했다는 후문이다.
1990년대 초반 국가대표팀 시절 충주댐으로 단합대회를 갔을 때는 선배인 이충희 김현준과 함께 세 명이 무려 소주 70병을 먹었다는 얘기도 농구판에 전설처럼 떠돌고 있다. 아버지 허준 씨로부터 술 실력을 물려받았다는 허재는 "옛날에는 정말 얼마나 먹어야 취하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나이도 있고 해서 적당히 즐기면서 먹으려 하고 있다"며 웃었다.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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