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12/01/02 14:09:32
Name 눈시BBver.2
Subject 신라의 삼국통일은 거짓일까?
요새야 뭐 통일신라시대가 아니라 남북국시대라고들 하죠. 하지만 이 "통일 신라"라는 명칭도 많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 해방 후에도 통일 신라라고 했지만 "불완전 통일"이라는 것을 명시했고, 한동안, 혹은 지금까지도 "외세 힘 업어 놓고 뭔 놈의 통일이냐, 이 민족 반역자야" 소리 들었죠. -_-;; 그건 현재 분단 상황까지도 이어집니다. 태조 왕건에서 심심하면 '자주 통일'을 내세운 게 아니었죠.

현재도 이 신라 통일 전쟁을 말 그대로 "통일 전쟁"으로 볼 것인가, 단순히 "백제 병합"으로만 볼 것인가에 대해서 얘기가 뜨겁게 나오고 있습니다. 전자의 대표로는 역시 고대사 공부할 때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서울대 노태돈 교수가 있을 것이고, 반대편으로는 성균관대 김영하 교수가 있습니다.

뭐 제 이전 글에서도 뭔가 백제 병합 쪽으로 썼는데... 논문 한 편 보니 생각이 확실히 잡히네요. ( ..) 제대로 공부 안 하고 썼다는 게 들통 났겠습니다만, 어쨌든 해 봐야 될 얘긴 거 같아 써 봅니다.

이 글의 논거는 노태돈 교수의 '7세기 전쟁의 성격을 둘러싼 논의'입니다. -_-a 2차 출처는 역개루 까페 라이트온님이구요.

-----------------------------------------------------------------------------

"삼한이 삼국을 뜻하게 된 것은 692년 당과의 관계에서 불거진 외교적 갈등에 대응하는 과정에서였고, 그 이전의 삼한일통의식은 백제통합을 바탕으로 삼아 진한, 마한, 변한의 삼한을 통일하였다는 韓족 통일 의식이었다."
"신라통일론에 담긴 역사 의식은 한국사의 무대를 한반도로 국한하려는 식민사학과 만선사학의 소산이다. 그에 대응하는 논리가 남북국시대론이니, 그에 입각한 역사 이해체계 수립이 필요하다."

이것이 김영하 교수의 주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한 노태돈 교수의 반론은 이렇죠.

1. 단지 백제 병합이 아니다.
平壤以南, 百濟土地
예전 백제 신라 얘기할 때 문무왕이 설인귀에게 보낸 답서에서 나온 부분이었죠. 저도 이걸 그냥 "평양 이남의 백제 땅"으로 얘기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상하죠 -_-; 이미 신라는 한강 유역을 차지했습니다. 백제 땅만 줄 거라면 굳이 평양을 언급할 필요도 없었죠. 노태돈 교수는 이를 "고구려의 평양 이남과 백제 땅"으로 해석합니다. 이것이 양국의 고구려 분할선이었고, 실제 양군의 작전 지역도 이랬구요.

2. 삼국과 9주
문무왕은 고구려 부흥군을 이끌던 왕족 안승을 받아들여 직산으로 비정되는 금마저에 보덕국을 세우게 합니다. 백제의 옛 땅인 걸 생각하면 참 절묘한데요. 신문왕은 후에 이를 해체하고 금마군을 두죠. 다음 해인 685년에 신라의 지방 통치 체제 9주를 완성합니다. 여기서 신라는 삼국에 각기 3개 주를 배치합니다.


예전에 쓴 거 아무거나 긁어오기 -_-;

온달은 "신라가 우리의 한북(漢北) 땅을 취하여 군현으로 삼으니 ~ 우리 땅을 되찾아 오겠다"고 했고, "계립현과 죽령 이북을 되찾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뭐, 돌아오지 않았죠 - -;; 김춘추가 고구려에 갔을 때 보장왕은 "죽령 이북은 우리 땅"이라고 했구요.

이렇게 죽령 이북 한주, 삭주, 명주를 고구려 땅으로 여겼다는 것이죠. 이건 계속 이어져서 조선까지도 경기도, 강원도를 고구려의 옛 땅으로 여기게 됩니다. 뭐 한성 백제는 뭔가 안습이고 가야는 이렇게 원래 신라 땅이 되며 명주 쪽도 의외긴 하지만, 신라의 9주는 신라 3, 백제 3, 고구려 3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삼한의 의미도 바뀌어서 고구려 부분이 마한, 백제가 변한, 신라가 진한으로 바뀌게 되구요.

3. 당위가 아니라 실제
김영하 교수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강조하면 할수록 한국사에서 발해사가 위치할 논리적 공간은 더욱 좁아진다" -> "신라의 삼국 통일을 부정해야 발해를 한국사로 인식할 근거가 마련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해 노태돈 교수는 "역사학은 당위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의 세계"라고 반론했죠. 통일 신라에서 고구려가 차지하는 비중과 고려에서 발해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게 차이난다는 것입니다.

-------------------------------------------------

약간 보충설명 섞었지만, 이 정도로 줄이고 여기 제 의견을 넣자면... 이거 참 재밌는 문제긴 해요. (...) 고구려가 우리 역사냐 발해가 우리 역사냐 이런 문제까지 들어간다면요. 고구려보다 신라가 더 정통에 가깝다는 것은 현재 거의 동의하다시피 합니다만, 서강대 이종욱 교수같은 경우는 지나치게 신라 정통만을 내세우며 고구려를 무시해서 욕을 좀 먹죠; 그 외에도 이렇게 통일 신라다, 그냥 백제 병합일 뿐이다 이렇게 말이 계속 갈립니다. 뜨거운 감자죠. -_-;

여기서 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할 텐데요. 옛 나라를 "계승"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왕조 국가들이니 그 왕실? 인구? 영토? 대한민국 임시 정부는 대한제국을 잇는다고 했지만 거기에 왕족은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현재 남북한은 조선의 영토를 둘로 나누고 있지만 어느 쪽도 딱히 왕실을 배려하진 않았죠. 프린스 리야 -_-; 뭐 그렇다 치구요.

남한은 "대한"이라는 국호와 수도 서울을 가지고 있고, 북한은 "조선'이라는 국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가 적통"이다고 할 형편은 못 되죠. 뭐 -_-; 여기도 이런 저런 문제가 들어가겠죠. 임시 정부라는 면에서 아무래도 남한 쪽이 더 우월하긴 하겠습니다만.

옛날에도 마찬가지였죠. 고구려 멸망시 집계된 인구는 69만호였습니다. 많은 인구가 중국에 끌려갔고, 왕실의 적통이라 할 만한 보장왕은 중국에 흡수됐습니다.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이 고구려의 왕족이 아닌 이상 이 쪽의 정통성은 오히려 안승이 정착한 신라가 더 우월하죠. 이런 고구려의 왕족들은 진골이 됩니다.

한편, 발해의 인구는 10만호 정도라고 합니다. 거기다 이들은 말갈과의 이중 계급을 이루었죠. 일본에 사신을 보낼 때도 말갈이 자기들만의 대표를 따로 보낼 정도로 이들의 구분은 확연했다고 합니다. 뭐 그 덕에 고구려는 별로 가지 않았던 연해주를 중심으로 둘 수 있었겠지만요. 이 점을 생각하고 다시 고구려의 옛 땅으로 분류된 한주, 삭주, 명주를 봅시다. 영역 면에서야 비교가 안 될 지 몰라도 통일 신라 내에서의 인구나 영토 비율을 보면 오히려 고구려의 옛 땅이 가장 넓고, 인구도 삼국이 1:1:1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발해 내에서의 고구려인과 통일 신라 내에서의 고구려인의 수가 얼마나 차이났을지도 의문이구요.

후에 발해에서 고려로 넘어 온 인구는 일이만 호 정도. 발해 인구가 저게 맞다면 그래도 제법 많은 수치긴 했지만, 신라에서 고구려 유민이 차지했을 비율을 생각하면, 고려에서 발해 인구가 차지했을 비율은 크게 떨어지죠.

뭐 이런 점에서, 발해가 우리의 역사냐는 것과는 별개로 이 때의 신라가 "삼국통일"을 주장했다고 할 만한 근거는 된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신라 내에서 "후고구려"와 "고려"가 일어날 수 있었겠죠.

신라+백제 => 통일신라 , 고구려 => 발해

이런 도식이 보기 쉽긴 하지만, 고구려의 적통을 완전히 이었다고 할 수 있는 국가는 없습니다. 그 영토, 그 국민, 그 왕실을 다 잇는 게 아닌 이상에는요. 그래서 왕건은 신라 왕실의 항복을 받음과 동시에 신라가 못 한 평양 등 고구려의 중심지를 재개발하면서 삼국 계승을 확고히 했습니다. 조선 역시 일단은 공양왕에게 넘겨 받는 형식이었죠. 고구려는 이럴 수 없었습니다. 중국에 끌려간 무리는 거기에 동화됐고, 신라에 흡수되거나 따로 발해를 세운 이들 역시 각기 계승을 외칠 순 있겠습니다만, 적통이라 하기에는 어렵죠. 반대로, 그들 둘 다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할 수 있는 거구요. 지금 남북한이 서로 조선을 이었다고 하는 것처럼요. 현대에야 서로 자존심 내지 정통성 문제가 겹치지만, 과거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 그것도 우리 역사의 범위 내에서 거기에 메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이상입니다. '-')/

... 슬슬 기획한 거 1탄을 시작할 때가 됐네요. 오늘 밤까지 예고편 올라갑니다.
그나저나 발해도 언젠가 얘기 한 번 해야 될 텐데 말이죠 ( - -)a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1-09 06:07)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jjohny=Kuma
12/01/02 14:29
수정 아이콘
이 글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훗날 북한 정권이 무너지고 후속 외교에서 중국이 크게 꼬장을 부려서 평양 이남은 남한이, 평양 이북은 중국이 먹게 되었다고 상상해보면(가능성은 차치하고 일단 상상만 해보면요.^^;) 그 이후의 한국은 '통일한국'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아귀가 딱 맞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이 글과 논점을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요? [m]
사케행열차
12/01/02 15:16
수정 아이콘
지금이야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 우리민족'이라고 말하는데 그 시대 사람들도 서로를 같은 민족으로 인식했나요?
그랬다면 '신라의 통일전쟁'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백제병합'이겠죠.
근데 제 생각에는 신라가 '백제는 우리랑 같은 민족임. 그러니 통일을 해야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것 같고(고구려랑 백제라면 모를까요) 고로 백제병합쪽으로 기웁니다. 물론 눈시님이 더 잘아시겠지만요.
루크레티아
12/01/02 15:23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는 통일신라라는 입장에 대해서는 후자의 논점대로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적인 비중이 역사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이념과 슬로건의 난무'라고 볼 때, 정통성을 주장하는 이들의 비중을 무시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 왕정국가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배 계급이 내세우는 이념과 슬로건이기 때문입니다.

한 왕조의 역사를 두고서 정통성을 논하는 기준은 핏줄에 둘 수도 있지만, 그 나라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두고도 이야기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안승이 비록 왕족이었지만 그는 고구려의 정통성을 포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라에 귀의한 것이니까요. 보장왕은 당으로 끌려가서 그대로 조용히 죽었죠. 하지만 대조영은 당시에 주장하는 이가 거의 없던 고구려 계승을 주장하고 나섰고, 실제로도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해냈습니다. 발해의 국가 체제가 이분법적인 것은 차처하더라도, 고구려계를 그만큼 규합시킨 국가는 유일했습니다. 이는 이후에 비록 신라인이지만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식을 드러낸 궁예, 왕건의 고려를 통해서 발해의 고구려계가 대규모로 흡수되는 것으로 더욱 공고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는 신라에 귀부한 안승과는 다른 것이, 고구려 계승의 강한 의지를 드러낸 고려에 귀부했다는 것입니다.) 이후로도 정사로 인정받는 삼국사기 등의 사서를 통해서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했다는 의식을 더욱 강화했습니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이었고요. 즉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가진 고려에게는 고구려와 고려 사이의 공백기를 이어주는 정통왕조인 셈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통일신라라는 명칭은 발해사를 역사의 사생아에 가깝게 만드는 명칭이라고 봅니다. 특히 발해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자는 측에서 말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지금이야 물론 나라를 구성하는 절대 다수의 국민이 나라의 정체성을 결정 짓는 요소이지만, 과거의 국가는 왕실의 정통성이 가장 중요한 국가 정체성의 표준이었습니다. 발해가 이분법적인 구조를 가지고 말갈인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가였다고 해서 '우리의 역사가 맞는가?'라는 의심을 가지는 것은 지극히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는 지엽적 사고입니다. 애초에 그러면 고구려사는 왜 연구할까요.

발해사가 연구하기 어려운 현실은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가벼이 버릴 만큼 우리나라 역사에서 적은 부분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고구려를 계승한다며 200여년을 존속한 국가입니다. 남북국 시대라는 명칭이 현대 역사 연구가들이 고구려부심에 쩔어서 새로 만들어 낸 명칭도 아닐진데 굳이 통일신라라는 명칭으로 발해사를 밀어낼 이유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애초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서 고구려사와 발해사 연구가 제대로 되었다면 나올 이유가 없는 논의일진데, 굴곡진 현대사가 고대사에 상흔을 남기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에서 후손들과 후대 사가들이 그 상흔을 고치기는 커녕 더욱 후벼파는 느낌입니다.
노비츠키
12/01/02 15:26
수정 아이콘
재미있으면서 참 애매한 문제네요..
일단 통일(?)되는 그 시점에서 고구려는 뿔뿔이 흩어져서 없어진 나라인것 같은데
이후에 통일신라내에서 후고구려 ---> 고려가 되었다는 점에서 애초에 신라가 통일할때 고구려의 상당세력을 흡수했다고 볼 수도 있으니깐요
윗글에서처럼 고구려의 후손중에 발해->고려 보다 통일신라->고려가 많다면 백제병합보다는 부족하지만 통일이 좀 더 가까운 이론이 아닌지 싶네요.
발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PoeticWolf
12/01/02 15:39
수정 아이콘
어렵구만요;; 근데 되게 흥미로운 문제 같아요. 김유신을 매국노라고 가르쳐준 체육 선생님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제가 배운' 신라의 통일 방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감정적으로 통일로 쳐주기 싫긴 해요 흐흐..
몽키.D.루피
12/01/02 16:08
수정 아이콘
"통일(統一)이란 사전적인 의미로 분할되어 있던 것들을 합쳐서 하나의 조직 또는 체제나 체계 아래로 결집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위키발췌
위키에서 나오듯이 통일이라는 용어 자체가 문제 아닌가요...? 애초에 하나의 나라였던 적이 없는데 정확히 말하면 통일이 아니라 정복이죠. 신라는 한반도 정복을 완성한 것이고(평양 이남) 통일은 다시 후삼국으로 분열된 한반도를 고려로 통일한 왕건이 진정한 통일이 아닐까요..
통일이라는 용어가 애초에 하나의 나라를 가정하고 만들어진 용어라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진나라가 최초의 중국 통일이라고 하는데 그건 현재 중국 대륙이 애초에 하나라고 가정하고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만약 하나가 아니라 그 가운데 독립성을 유지한 다른 민족이나 집단이 있으면 통일이라는 용어자체가 상당히 폭력적이게 변합니다. 예를 들어 티벳을 병합한 중국이 중국이 드디어 티벳까지 통일했다! 라고 표현한다면 티벳인 입장에서는 티벳의 자주적인 역사와 민족성이 무시되는 거죠.
통일이라는 용어는 애초에 그런 의도가 있다고 봐요. 당시 고구려 부흥운동을 주도하는 세력들, 백제의 잔당들이 과연 신라의 통일을 통일이라고 여겼을까요, 정복이라고 여겼을까요... 중간에 눈시님이 답글 다신 것처럼 한민족이 고려 때부터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형성되었듯이 지나친 역사성의 강조에 의해 고대사회를 지나치게 한민족 전체로 묶으려고 하는 건 일종의 민족주의 같습니다. 한민족 역사가 천년이면 어떻고 백년이면 어떻고 오천년이면 어떻나요? 현재가 중요한 거죠.
통일된 한민족의 역사는 고려부터라고 생각하면 맘 편할 거 같아요. 그전에는 단지 각각 한민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여러 나라의 역사가 공존하다가 신라의 한반도 정복, 그후의 왕건의 분열된 신라 통일로 인해 한민족의 (하나의)역사가 시작된 거죠.
오늘도데자뷰
12/01/02 17:2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던거친새퀴
12/01/02 18:17
수정 아이콘
가장 말많고 골머리아픈 주제가 이부분같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통일신라인가? 남북국시대인가?
그이전에 삼국시대라는 말은 맞는말인가? 사국시대, 열국시대, 전국시대 이런말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발해도 정말 안습인데 그보다 더 안습이 가야고 그보다 더 안습은 부여같습니다)

사족인데 고고학계에서는 통일신라도 남북국시대도 아니고 그냥 편하게 통일기라고 부르죠.
12/01/03 01:01
수정 아이콘
저는요 무식하면 용감합니다. ㅜㅜ

고구려 중국에 바치고 백제만 먹은거자나요
자기힘도 아니고 외세를 등에 업고 숟가락만 얹어서 콩고물 조금만 주세요~~ 한거라고 생각합니다.
온니테란
12/01/03 01:10
수정 아이콘
예전 고등학교때는 국사에 빠져서 대학가면 사학과로 가야겠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분야에 흥미를 잃어버리더라고요..
역사 잘하는 사람들은 정말 년도랑 빠삭빠삭하게 머리속에 다들어있던데 저는 그정도까지는 안되더라고요 후훗;;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도움되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1309 결혼 용어집 : PGR 1%에 도전합니다. [51] PoeticWolf10949 12/01/20 10949
1308 서울에서 하는 '걷는 데이트' 가이드 -1- [28] 凡人11818 12/01/19 11818
1307 환상과 환장, 양치질과 양치기질. [38] PoeticWolf10160 12/01/16 10160
1305 연애상담. [15] Love&Hate10468 12/01/10 10468
1304 허위사실공표죄의 법리 파헤쳐보기 [21] 슬라이더8511 12/01/09 8511
1303 왜 멀티를 먹어야 하는가 [6] Raight8956 12/01/10 8956
1302 [연애학개론] 이별 대처법 [44] Eternity11580 12/01/07 11580
1301 멀티를 먹자 [18] Raight9945 12/01/06 9945
1300 어떤 적과의 화해 [51] PoeticWolf10310 12/01/06 10310
1299 민족사관과 실증사관. 어느 것이 중요할까? [55] 눈시BBver.211023 12/01/05 11023
1298 낡은 기억의 상자 [9] nickyo7896 12/01/03 7896
1297 본격 저탕형 보일러 찬양 포스팅 [14] PoeticWolf8695 12/01/02 8695
1296 신라의 삼국통일은 거짓일까? [35] 눈시BBver.212973 12/01/02 12973
1295 [복습해 봅시다] 세종대왕, 훈민정음 [5] 눈시BBver.29768 11/12/30 9768
1294 [복습해 봅시다] 忠武公 이순신 [16] 눈시BBver.29409 11/12/29 9409
1293 헌법재판관들은 어떤 단계를 거쳐 위헌여부를 판단하는가 - 간통죄를 예로 들어. [10] 슬라이더8309 11/12/28 8309
1292 농구와 LOL [16] 바보소년11031 11/12/30 11031
1291 중국 경제에 대한 잡다한 지식 모음. [42] OrBef10707 11/12/28 10707
1290 삼가 조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23] PoeticWolf11325 11/12/28 11325
1289 민사와 형사 구별하기 [46] 슬라이더10426 11/12/24 10426
1288 [예능] 1vs5vs5 대결의 승자 1, <무한도전> 통계 겸한 나름 정리 [46] 슬러거14286 11/12/23 14286
1287 감히 게임을 하다. [145] PoeticWolf14728 11/12/20 14728
1286 김치찌개 만들기 [37] PoeticWolf9863 11/12/19 986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