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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6/12/28 00:21:52
Name RookieKid
출처 서강대숲 #12426번째날갯짓:
Subject [텍스트] 크리스마스 이야기
2016. 12. 25. 오후
<#연애>
"입 대"
너는 불쑥 그런 말을 꺼냈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

크리스마스 이브 밤, 나는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계획이라고 해봤자 집에 틀어박혀 맥주를 마시며 영화 몇 편을 연달아 보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 때, 갑작스레 네게 연락이 왔다. 너는 나에게 그냥 뭐 아는 후배 정도였다. 워낙 털털한 성격이라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너였고, 그렇기 때문에 나한테 건네는 친근한 말이나 행동들을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키도 작은게 당차게 행동하는 게 귀엽다, 정도? 그래서인지 네게 온 카톡은 내게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오빠 내일 뭐함?"
나는 무심하게 툭툭 메시지를 쳤다.
"난 집에서 걍 쉬어야지. 집에서 영화나 몇 편 볼라고."
"왘크크크 진짜 솔크가 여깄넼크크크"
"지도 솔크면서 무슨 ㅡㅡ"

그렇게 영양가 없는 이야기가 오가다가

"할 거 없으면 내일 나랑 놀아줘라."

네 그 한 마디에 나는 잘못봤나 하고 다시 한 번 글을 읽어봤다. 이게 무슨 의미지? 정말 놀아달라는 건가? 평소 눈치가 없다고 여사친들로부터 어지간히 얘기를 들었던 나였다. 글쎄, 다른 사람이었다면 단박에 크리스마스의 데이트 신청임을 알고 척척 일을 진행해 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태솔로에 흔남인 나는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날리 없다는 생각이 늘 머릿속에 있어서 그런지 아무렇지 않은 척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뭔 개솔크크크 놀 사람도 없냐 쯧"
"싫음 말고... 그냥 크리스마스고 한데 혼자 있긴 쫌 뭐해서"
"근데 왜 나한테 놀자고 하는데 크크"
"오빠가 제일 한가할 거 같아서 인정?"

카톡창 너머 네 표정이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무표정일까, 선배를 놀리며 재밌다는 표정일까, 혹은 부끄러움에 볼이 빨개진 줄도 모르고 톡 내용이 이상해 보이면 어쩌나 걱정하는 표정일까.

"그래서 나 만나줄거야?"

모르겠다. 너랑 몇 마디를 나누는 사이에 내 마음 속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방금까지 넌 그냥. 털털한 성격에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키 작고 당찬... 후배였을 뿐인데. 뭔가 뒤에 수식어가 더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지금 만나서 얘기 하자."

막 뛰면서 너한테 전화를 걸었다. 자취방이라고 했다.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네가 술 먹고 정신을 못차릴 때마다 너를 데려다 줬던 곳이니까. 술에 취해 비틀비틀 걸으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웃고 있던 너를,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이유없이 웃었던 것 같다. 뒤로 질끈 묶은 검은 중단발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코트를 입은 너를 보며, 나는 괜히 웃음이 나왔다.

너는 문 밖에 나와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나왔는지 얇은 가디건만 걸치고 있었다. 빨간 볼은 추워서 빨개진걸까. 나는 겉옷을 벗어 너의 어깨에 얹어주었다. 처음 만져본 너의 어깨는 생각보다 더 여리고, 부드럽고, 그래서 안으면 부서질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네 입에서 나오는 입김이 어떤 모양인지 보일 정도로, 너를 오랫동안 바라봤다. 겨울에 고백할 땐 드라마나 영화처럼 눈이 펑펑 내릴 줄 알았는데 역시 현실은 달랐다. 하지만 하늘이 너무 맑아서 달이 가로등 불빛처럼 빛났고, 그 아래의 넌. 물 위에 비친 달처럼 반짝거렸다.

“나 오빠한테 뽀뽀할래”

내가 당황한게 티가 많이 났는지 너는 살짝 웃었다.

"오빤 뽀뽀도 안해봤어?"
"나 모쏠이라고 했잖아, 바보야."
"입 대.”

너는 불쑥 그런 말을 꺼냈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 말을 들으니 네 입술밖에 보이지 않았다.

"뭐?"
"입 대라니까?"

"입대라고!"

2017년 2월, 국방의 의무를 다하러 군대로 떠납니다. 복무 잘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전국의 국군장병들을 응원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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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파괴왕
16/12/28 02:26
수정 아이콘
훈훈~
블루레인코트
16/12/28 09:07
수정 아이콘
아이 훈훈해~
16/12/28 09:51
수정 아이콘
반전 글이긴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글이 정말 좋네요...
李昇玗
16/12/28 11:08
수정 아이콘
아아....
달달하네요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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