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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6/12 12:43:11
Name Haru
Subject 당신은 나에게
흠…. 당신에게 하지 못했던…. 결국, 하지 못할 말을 해볼까 해요.

뭔가 처음부터 이상한 시작이었어요.
전 사실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기 힘들어하는 타입이거든요. 낯도 많이 가리고, 말도 잘 못 하고 이성 친구는 아예 없는 모태 독신이거든요모태솔로거든요. 면역력이 없다고 할까나….  쉽게 마음을 주고, 혼자 가슴앓이하다가 접고는 했죠.

그런데 왜 당신을 만났을 때는 처음부터 편했던 걸까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너무 쉽게 친해져 버렸죠.

그 후로 지금까지 당신과 나는 함께 일하고, 함께 노는 것이 자연스러웠어요.
회사 사람들과 같이 영화를 보고, 피카추를피카츄를 잡으러 가고, 볼링을 치고, 하나하나씩 추억이 쌓여갔었죠.

사실 이성적인 감정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친한 회사 동생과 이루어지지 않을 만남을 가지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 후에 셋이 어울리기가 너무 싫어진 나를 보면 약간의 감정이 있었던 것 같긴 해요.
오히려 그때부터 더 감정이 복잡해진 것도 같네요.
배신감. 질투. 부러움. 안쓰러움. 온갖 잡생각들이 따라다녔고, 심란한 마음에 좋아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죠.

애써 셋이 모일 자리를 피하며 당신의 상처가 크지 않길 바랬어요. 당신이 그 동생과 만남이 끝이 나고 힘들어하는 모습에 화도 많이 낫지만났지만, 어떤 티도 낼 수 없었죠. 누구도 모르길 바랬을 테니.

시간이 지나 당신이 다시 밝은 모습을 되찾았을 때 가끔 한 전 남자친구 얘기. 소개팅한 남자 얘기. 이상형 얘기. 그 이야기들을 들을 때마다 나 스스로 초라함과 질투에 표정 관리가 힘들었던 건 아는지 모르겠네요. 적어도 나는 당신의 기준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다시 깨닫게 해주었죠.
당신은 내가 지금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아프게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었어요. 당신이 좋아했던 사람처럼 매력이 있었다면…. 아니 그 사람이 나였다면…. 당신이 그렇게 힘들어하는 걸 보고 있지만은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모른 척. 친구로. 같이 쉬러 나가고, 같이 밥 먹으러 다니고.
쉽게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내가 당신 덕분에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해올 수 있었어요.
때론 엄마처럼. 때론 연인처럼. 때론 친구처럼. 그렇게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 많이 의지하고 있었나 봐요.

당신의 이직이 결정되고 다들 축하의 인사를 건넬 때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새삼 회사가 낯설어졌고, 당신이 없는 생활을 생각해본 적 없거든요. 이직준비를 하고, 떠나는 얘기들을 할 때 피하고만 싶었어요. 하루하루가 우울함에 연속이었죠.
회사만 옮길 뿐 가끔 볼 수도 있고, 연락도 할 수 있을 텐데도, 내 일상에서 당신이 사라지는 건 그렇게 큰 의미로 다가왔어요.

마지막 떠나는 날. 당신의 눈에 맺힌 눈물에 심장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어요. 애써 태연한 척 밝게 대화하며 송별식 자리를 마치고 헤어지기 전 마지막 악수에 나는 애써 눈물을 참아냈어요.

그렇게 당신을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내다가 집에 도착해 왈칵 터져 나온 울음에 내가 당신을 좋아했다는 걸 알았어요.
어쩌면 사랑일지도 모르겠네요.

나사가 빠진 것처럼 주말 내내 멍하니 당신이 들어와 있는 게임 친구 목록을 종일 쳐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요. 뭘 하고 있을까. 밥은 먹었을까. 세 글자 이름만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냈죠. 그러다가 살짝 실없는 메시지를 보내고 돌아오는 답장에 잠시나마 웃어보기도 해요.

이제 당신 없는 일상을 살아나가 봐야겠어요.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가끔…. 어쩌면 자주 그리울 것 같긴 하지만. 애써 외면해봐야죠. 당신을 보며 느꼈던 자신의 초라한 감정들, 자괴감들을 다시 느끼고 싶진 않으니까.

어리광은 이쯤하고 진짜 열심히 살아볼게요.
그냥 가끔. 아주 가끔 위로가 필요할 때 목소리 정도는 들려주었으면 해요. 그거면 돼요.

전할 수 없겠지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그동안 고마웠고, 미안했어요. 이제는 이름 세 글자만 떠올려도 눈물 나게 하는 사람.
나에겐 너무나 아팠던 사람.

다시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만나겠지만, 속에 있는 어떤 얘기도 하지 않겠지만…. 잘 지내요. 좋은 사람 만나고, 다시 아픈 사랑은 하지 않길 바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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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누군가에게는 말하고 싶었던, 하지만 말할 곳이 없어서 혼자서 써내려간 이야기를 pgr밖에 쓸 곳이 없네요... 하나둘씩 지나가는 인연이 아쉽게 느껴지는걸 보면 나이를 먹긴 했나봅니다.. 여러 의미를 지녔던 사람과 떨어지게 되면서 답답한 마음에 주절주절 써내봤습니다. 단순한 이성적인 감정이라기에는 참 미묘하단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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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2 12:52
수정 아이콘
그렇게 좋아하시는 분이시라면 붙잡으세요 본인이 모자르다고 생각되시면 그녀에게 걸맞은 남성이되도록 노력하세요 그녀가 이직한 이상 더이상 차이더라도 불편해질일도 없자나요 지금 그녀를 놓아버리면 Haru님은 또 다음에 이런상황이 오더라도 잡을용기내기가 어려울거에요 혹시 결과가 안좋을수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버틸만합니다 본인감정에 충실하세요 도망가지마세요
17/06/12 13:13
수정 아이콘
중반부쯤에 나오는 친한 동생이라는 사람과 제가 아직도 꽤나 친하게 지내고 있는 상황이라...
셋이 같이 만날일은 없지만 각각 친하게 지내는 상황이랄까나...
둘이 얼마나 가까웠는지, 얼마나 마음 고생했는지를 지켜보고 나니 좀 어렵네요..

그런데 도망치지 말라는 말은 좀 쎄게 와닿네요... 그나마도 멀어질까봐 겁쟁이가 되버렸어요. ㅠ
17/06/12 13:24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지라 감정이입해서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한것 같습니다 남의 기분 남의 감정 다 받아주다보니 제가 없어지더라구요 그래서 불법이아니라면 제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려고 하는데 저도 아직 쉽지않네요 흐흐흐
17/06/12 13:38
수정 아이콘
쎄게 와닿는다는 말은 뭔가 가슴을 울리는 좋은 조언이었다는 뜻이었습니다. 앞으로 조금은 더 용기가 생길지 모르겠습니다만 도망치지 말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살고 싶네요. 어쩌면 저는 이런 조언을 바랬나봅니다. ^^
17/06/12 12:54
수정 아이콘
글 잘 봤습니다..
어려우시더라도 용기를 좀 내보시지 그랬어요..
내 감정을 진지하게 전달했다면 조금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는 평생 남더라구요..
17/06/12 13:42
수정 아이콘
짝사랑일 뿐이라면 어떻게 용기를 낼수도 있겠는데, 여러 인간관계가 얽히면 꽤나 복잡해지더라구요. ㅠㅠ
그리고 뭐랄까... 흠.... 어쩌면 이성적인 감정보다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던 것 같기도해요.
옆에 있는 사람의 정이 그리웠달까요? 짧은 시간 정이 많이 들어버린 걸지도 모르겠어요.
딱 떨어지게 되었을때 좋아하는 사람이 떠난다라는 느낌보다, 내 보호자가 나를 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eternity..
17/06/12 14:58
수정 아이콘
하... 저랑 비슷한 경험중이시군요.
공무원 준비하는 공시생입니다. 그런데 같은 스터디 모임에서 만난 누나가 점점 여자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밥시간마다 같이 붙어다니고, 가끔씩 상대 도시락도 싸오고 (덕분에 요즘 요리실력이 는것같은..쿨럭)
짧게나마 맥주한캔씩 하면서 수험기간의 스트레스 풀고 있습니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그 누나는 이미 시험에 합격하셔서 요즘 면접준비에 바쁘시고, 저는 다음 시험을 기약하고 있다는 점일까요?

당장 프로포즈 해봐야 아무런 소용 없을것이란걸 알기에 더욱 힘들어지네요.

하루님의 상황이 저랑 너무 비슷한듯 하여, 저도 하소연 하고 갑니다.
Multivitamin
17/06/13 01:02
수정 아이콘
저도 요즘 10살 정도 누나가 좋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네요. 3년넘게 알았지만 그냥 여럿이 모일때만 농담따먹기 하던 사이였는데, 최근 갑자기 술도 잘 같이 잘 마시고 자주 봐요. 거의 2주동안 10번은 본 거 같네요.

현실적으로 따지면 제가 제정신이 아니지요. 제가 연애경험이 처음도 아닌데 왜 이럶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좋네요.

물론 저도 별말없이 떠나갈거 같습니다. 한 4-5살 연상만 되었어도 뭘 해봤을텐데 거진 띠동갑...을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드네요. 게다가 제가 젊은 20대초반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도 보면 좋아요. 쓸데없는 핑계로 자주 보네요. 짝사랑이 그러한 거겠죠. 그러합니다. 힘내라는 말 처럼 쓸모없는말이 없지만, 그래도 같이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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