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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3/28 01:14:50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397626523
Subject [일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 마침표와 물음표 사이.(노스포)
'하마구치 류스케'라는 이름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드라이브 마이 카> 이후로 저에게 강하게 각인된 이름이었습니다. 약간의 판타지와 허무함, 그리고 그 미묘한 '하루키식 감성'을 끌어와 구현된, '적절히 상처받아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방식이나, 혹은 그 이후 접했던 <우연과 상상>에서의 기묘한 만남과 그 이어짐에 대한 묘사 등, 하마구치 류스케는 좋은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런 점에서 약간은 비슷하면서도 이질적입니다. 3시간에 가까웠던 <드라이브 마이 카> 보다 훨씬 느릿한 전개로, 가장 시청각적으로 기묘한 영화입니다. 음악과 함께 고조되던 화면이 어느 순간 음악이 뚝 끊기지 않나, 딱히 별 다른 대화 없이 화면 상에서 바뀌는 지점도 있습니다만, 모든 구성들이 굉장히 꽉 채워진 느낌입니다. 영화의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기묘하고, 구성되어 연결되어있지만, 의도적으로 잘려있기도 합니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감상을 끊임 없이 '방해'합니다. 가까이 오는 걸 최대한 막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요.

영화의 서사는 '이게 두 시간 가까운 시간이라고'에 가깝습니다. 이건 감탄일 수도 있고, 비꼼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느릿한 전개에 서사 자체도 굉장히 빈 공간이 많아요. 넌지시 던져주는 이야기는 많지만 드러내거나 혹은 자세히 유추할 수 있는 부분도 굉장히 적습니다.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만 남겨놓고, 별 이야기는 없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느 마을에, 글램핑장을 만드려고 합니다. 라는 한 줄짜리 이야기가 영화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영화의 주된 소재는,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방인'입니다. 영화 속 시각에서 모든 것들은 이방인입니다. 자연을 제외하고는요. 그리고 그 모든 이방인들은 기존의 것들을 밀어내고 자리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영화의 이야기는 그래서 기존의 이방인과 새로운 이방인, 그리고 다시금 등장하는 그 이방인들의 이야기이고, 그렇기에, 영화의 제목은 마침표와 물음표를 오가는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그 미묘한 선과 악의 경계선이 굉장히 충격적인 방식으로 전달되고, 관객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뒤집는 방식이기에, 어쩌면 이 제목은 절규에 가까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끝끝내 선을 믿고 싶은, 성선설을 주장하고 싶은 목소리로 내뱉는 말일 수도 있을 것이구요.

다만, 그 이야기가 앞에서의 전개, 혹은 앞에서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게, 혹은 뜬금없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선과 악이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라면, 영화가 조금은 더 그 선을 날카롭게, 마치 칼 끝 처럼 그렸더라면 그 울림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 선이 너무나도 애매하고 또 가려져 있기에, 영화의 결말과 보여주는 방식은 너무나도 뜬금없거나, 혹은 이해하기 까다로운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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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사랑
24/03/28 09:58
수정 아이콘
이번 영화는 기존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하고는 결이 많이 다릅니다.
드라이브마이카와 우연과 상상이 대화로 끌고 나가는 영화라면 이번 영화는 화면으로 끌고가는 영화입니다.
대사가 아니라 화면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것들로 영화를 보고 해석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씨네필이 아닌 이상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러한 영화들을 좋아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걸 즐겼지만, 이제는 좀 별로더군요.
aDayInTheLife
24/03/28 10:39
수정 아이콘
영상 언어로 변화하는 방식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만, 확실히 장벽은 좀 느껴지더라구요. 보여주는 것으로 말하는 것을 대체하는 거 자체는 좋으나, 방식 자체의 한계라고 해야할까요.
바보영구
24/03/28 20:0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카메라는 흘러가고 음악은 분절되는게 인상 깊었습니다. 전 이전 류스케 영화만큼 좋았던거 같습니다.
일본의 샤머니즘인데 종교가 안닿아있는 것도 새로웠습니다. 외지인의 동네라 이국적인 느낌이 있네요.
aDayInTheLife
24/03/28 21:49
수정 아이콘
배우의 행동도 분절되고, 음악도 분절되지만 카메라는 멈추지 않았던 부분이 인상적이더라구요.
어쩌면 카메라가 원 주인이고 행동도 음악도 이방인일 수도 있겠지요. 묘하게 관음적인 느낌도 들구요. 크크
우리는 모두 외지인이고, 사슴 뿐만이 원래의 것은 아니었을까 싶으면서도, 어쩌면 사슴마저도 자리를 지키는 나무의 가시에 찔리는 이방인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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